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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산전수전, 이젠 스피루리나 전문가 다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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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산전수전, 이젠 스피루리나 전문가 다 됐죠!”

입력
2019.01.1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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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10여년 만에 스피루리나 전문가로 명성 얻은 ‘처녀농군’ 박수진씨

박수진씨가 스피루리나로 만든 제품을 손에 들고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박수진씨가 스피루리나로 만든 제품을 손에 들고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이슬람 57개국 참여한 '월드할랄데이 2018 서울'에 참가해 스피루리나 제품을 소개했다.
이슬람 57개국 참여한 '월드할랄데이 2018 서울'에 참가해 스피루리나 제품을 소개했다.

“하미과 반품이 줄을 이었죠. 또 실패했구나 싶었습니다.”

성주에서 ‘처녀농군’으로 통하는 박수진(40)씨의 야심찬 도전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미과는 2011년에 도전했다. 4년 만에 재배에 성공해 주변 참외농가에 보급하고 대형마트와 납품 계약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문제는 하미과가 참외와 비슷한 넝쿨 식물이지만 수확 요령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었다. 열매마다 당이 제대로 올라왔을 때 따야하는데 참외처럼 일괄적으로 수확해 납품하다보니 밍밍한 하미과가 다수 섞여들었던 것이었다. 저온 창고에 보관해서 겨울을 노렸지만 2016년 겨울엔 멜론 가격 자체가 하락했다. 하미과도 기를 펴지 못했다. ‘완전한’ 실패였다.

돌이켜보면 좌절의 연속이었다. 97학번으로 자동차학과에 진학해 졸업 후 곧장 정비사로 취직했지만 월급이 너무 박했다. 목돈을 만들어 직접 정비소를 운영해보자는 생각에 고향에서 국밥집을 열었지만 이마저도 1년 못하고 문을 닫았다. 아버지가 갑자기 암으로 쓰러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농대에 다니고 있는 동생이 졸업할 때까지만 농사를 맡기로 했다. 그렇게 ‘처녀 농군’이 되었다.

어쩌다 뿌리내리게 된 시골이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고분고분하게 농사만 짓기엔 그릇이 너무 컸다.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어 참외 농한기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작물을 찾았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하미과였다.

“완전한 실패는 아닙니다. 2017년에 고령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고령은 멜론을 제배하는 농가가 많기 때문에 같은 품종인 하미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요. 고령군 시범 사업으로 선정돼 한창 하미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더 큰 성과도 있었다. 2015년에 배양에 성공한 스피루리나가 바로 그것이다. 하미과보다 일찍 시작했지만, 성과는 뒤에 나오기 시작했다.

스피루리나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조류(藻類 · algae)로 5대 영양소를 비롯해 50여 가지 필수영양소가 함유돼 있다. 항산화 작용을 해 노화를 방지하고 피부건강과 혈당 조절, 면역력 증강, 콜레스테롤 저하, 암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건강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는 스피루리나를 ‘미래식량’으로 지목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하고 이상적인 식품으로 꼽기도 했다. 배양에 도전한 지 3년 만에 150평 규모의 농장에서 100톤 가량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배양엔 성공했지만 유통이라는 숙제가 남았다. 2016년에 각설탕처럼 건조하는 연구에 들어갔다. 상하지 않게 유통하고 소비자가 쉽게 섭취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었다.

그 사이 가외의 성과들이 올라왔다. 김천시에서 스피루리나 배양액을 이용해 농약과 비료 없는 친환경 농법을 제안해왔다. 이 기술은 현재 고령군 하미과 재배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올해엔 더 큰 성과를 얻었다. 셀레늄을 먹인 스피루리나 배양에 성공한 것이다. 녹강천연물연구소와 손잡고 탄생시킨 제품이다. 셀레늄은 세계보건기구가 필수영양소로 인정한 성분으로 항산화작용과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 일본에서 시판되는 스피루리나 제품 중에서도 셀레늄을 먹인 것은 없다. 일본에서 수입한 발효 스피루리나의 경우 100g에 12만 원에 판매될 정도로 고가다.

2018년 6월 한국고분자시험연구소에서 박씨가 생산한 셀레늄 스피루리나를 분석한 결과 셀레늄 함양을 검사한 후성이 없고 셀레늄이 1kg에 1.23mg다는 결론을 내렸다. 셀레늄 스피루리나 환 10알에 하루 필요한 셀레늄 40마이크로그램이 함유되어 있다. 현재까지는 가장 우수한 스피루리나 제품이다. 원광대 한방병원에서 임상실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실험 결과가 나오면 국내는 물론 일본 수출까지 도전할 계획이다.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쌍둥이 형제 같아요. 정비사 일과 국밥집, 참외농사와 하미과 재배, 스피루리나까지 무수한 목표를 가지고 투쟁하듯 살아왔는데, 어떤 땐 성공하고 어떤 땐 실패했어요. 돌이켜보니까 성공과 실패가 씨실과 날실처럼 잘 짜여서 삶의 무늬를 만들고 있더군요. 제가 이루지 못했던 것, 혹은 실수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엔 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다 감사합니다. 어떤 일이든 저에게 앞으로 나아갈 저력이 되어줄 테니까요.”

박씨는 “전문가들 사이에 셀레늄 스피루리나가 알려지면서 다양한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면서 “가장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서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 건강식품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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