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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ㆍ3’ 71년 恨 풀렸다… 수형인 18명 사실상 무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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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ㆍ3’ 71년 恨 풀렸다… 수형인 18명 사실상 무죄 판결

입력
2019.01.17 17:15
수정
2019.01.17 20:3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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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법원, 절차 하자로 공소기각… ‘당시 군사재판 무효’ 첫 사법판단

“이젠 편히 잠들 수 있다” 백발이 된 수형인들 회한의 눈물

4ㆍ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수형생활을 한 수형 피해자들이 제기한 군사재판 재심 청구 최종선고가 17일 내려졌다. 이날 오후 공소기각 판결로 사실상의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4ㆍ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수형생활을 한 수형 피해자들이 제기한 군사재판 재심 청구 최종선고가 17일 내려졌다. 이날 오후 공소기각 판결로 사실상의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를 모두 기각한다. 수고들 많으셨다.”

17일 오후 제주법원 201호 법정. 제주 4ㆍ3 생존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불법 군사재판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판장인 제갈창 부장판사가 공소기각 판결을 내리자 법정 곳곳에서 환호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70여년전 군경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옥살이를 하고, 범죄자로 낙인 찍혀 살아온 4ㆍ3 생존 수형인들에게는 평생의 한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공소기각이란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공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인정해 사건의 실체를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것을 말한다. 4ㆍ3 당시 이뤄진 군사재판이 별다른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이뤄져 재판 자체가 ‘무효’임을 뜻하는 것으로,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들에 대한 군법회의는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흥분된 표정으로 법정에서 나와 법원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갖은 생존수형인 오계춘(94) 할머니는 “큰 짐을 가지고 있다가 놓았다. 눈물이 난다. 이제야 죄를 벗었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며 “서러운 것들을 오늘 다 풀었다”고 크게 기뻐했다.

양일화(91) 할아버지도 “오늘부터는 두 눈을 감고, 두발을 피고 편히 잠을 들 수 있겠다”며 “죽어서도 억울할 것 같았는데 행복하다. 수고해준 분들에게 모두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4ㆍ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수형생활을 한 수형 피해자들이 제기한 군사재판 재심 청구 최종선고가 17일 내려졌다. 이날 오후 공소기각 판결로 사실상의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4ㆍ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수형생활을 한 수형 피해자들이 제기한 군사재판 재심 청구 최종선고가 17일 내려졌다. 이날 오후 공소기각 판결로 사실상의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4ㆍ3생존 수형인들은 4ㆍ3사건 당시 구속영장 없이 임의로 체포됐고, 재판절차 없이 전국 각지 형무소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4ㆍ3 당시 군사재판을 받은 사람은 2,530명으로, 이들은 형무소로 이송된 이후에야 자신의 죄명과 형량을 통보 받고 형을 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상당수가 불순불자라는 이유로 사형되거나 행방불명됐다. 이번 재심을 청구한 4ㆍ3생존 수형인 18명도 1948~1949년에 내란죄 또는 국방경비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에서 최대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명예회복을 위해 2017년 4월 19일 제주지법에 4ㆍ3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9월 3일 법원은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1년6개월 만이다. 재심 개시 결정으로 군법회의에서의 유죄 판결은 무효가 됐고, 이유도 모른 채 옥살이를 했던 수형인들은 같은해 10월 29일 처음으로 ‘정식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판결은 71년 전 4ㆍ3사건 당시 계엄령하에 이뤄진 군사재판이 불법임을 인정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으로 의미가 크다. 또한 이번 재심을 청구한 18명의 생존 수형인은 물론 4ㆍ3 당시 불법군사재판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수형인들도 사실상 무죄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어서, 향후 제주4ㆍ3특별법 개정안 처리 등 4ㆍ3의 완전한 해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4ㆍ3생존 수형인 재심을 주도했던 양동균 4ㆍ3도민연대 대표는 “오늘은 왜곡된 4ㆍ3역사가 바로 잡힌 날이다. 오늘 판결로 (생존 수형인들은) 이제 죄 없는 사람이 됐다”며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이 불법군사재판에 대한 원천무효 선언 등이 담긴 제주 4ㆍ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법원의 선고로 생존 수형인들에게 낙인처럼 평생을 뒤따라 다닌 전과기록에 대한 말소 절차와 함께 70여년 동안 이뤄진 피해에 대한 배ㆍ보상 작업도 뒤따를 전망이다.

이번 재심 사건을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수형인들의) 전과기록을 조회한 결과 8명 정도가 내란죄 위반과 간첩죄로 여전히 확인됨에 따라 공소기각이 확정되면 전과에 대한 말소절차를 진행할 것”이라며 “또 배ㆍ보상과 관련해서는 먼저 수형생존인들이 불법적으로 구금됐던 시간을 보상하는 형사보상 청구를 진행하고, 이후에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국가보상청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지검은 이날 판결 직후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판결문 신속히 검토해 항소 포기 여부 등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이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과거 잘못된 군법회의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공소기각 판결’을 구형했던 점을 감안할 때, 항소 포기 가능성이 높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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