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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황교안 거품과 슈스케 검증

입력
2019.01.17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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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오디션 선발로 ‘인적 쇄신’ 길 열어

‘공정에 무너지는 특권’에 놀라 무산 위기

‘무임승차’ 대신 책임ㆍ소신 리더십 보여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난 15일 오전 국회 자유한국당 회의실에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입당원서을 제출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난 15일 오전 국회 자유한국당 회의실에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입당원서을 제출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문재인 정부를 대표하는 레토릭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다. 이 레토릭은 집권 1기의 적폐청산과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한 토대이자 집권 2기의 혁신적 포용국가 비전을 관통하는 이념이다. 남북 대표팀 파동 등 이 레토릭이 의심받을 때마다 국정지지율이 어김없이 급락한 것은 이 말의 힘을 반증한다. 문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아 당정청 주요 인사들에게 성과와 속도를 강조하고 노동계 등 우군에게 열린 마음을 주문하는 것 역시 결과로 나타난 국정 지표가 이 레토릭을 충족시키지 못한 탓이다.

촛불을 앞세운 이 레토릭은 자유한국당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홍준표 전 대표가 “통째로 나라를 내줄 거냐”며 ‘기업에겐 자유를, 서민에겐 기회를’ 슬로건을 앞세운 이유다. 문 정부의 레토릭을 보다 설득력있게, 또 논리적으로 반박한 사람은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다. 일부 진보 진영의 시험적 정책 제안을 나라 경제의 새 패러다임으로 내세운 정부의 무모함을 꼬집은 그는 이 레토릭을 전체주의 구호라고 몰아붙이며 ‘기회는 다양하고 과정은 자유로우며, 결과는 책임지는 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자유주의자를 표방한 그의 말에 한국당은 출구를 찾은 양 반겼다.

그런데 정작 한국당을 오랜만에 높이 띄운 것은 문 정부의 레토릭이다. 최근 공개 오디션으로 치러진 조직위원장 공모 얘기다. 비록 서울 강남 등 관심 지역 15곳에 한해 시범적으로 치러진 정치이벤트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경력과 인지도를 자랑하던 전ㆍ현직 의원이 대거 탈락하고 열정과 패기로 무장한 30ㆍ40대 신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차별없는 기회와 과정이 빚어낸 유쾌한 드라마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 지도부와 평의원 가릴 것 없이 모두 놀라고 긴장했을 것이다. 대선 완패와 지방선거 참패에도 끄떡없던 낡고 늙은 기득권과 특권에 금이 가고 세대교체 신호음이 울렸으니 말이다. 지도부가 “희망을 봤다”며 환호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반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정ㆍ정의 따위의 위험한 레토릭은 한국당에 겉멋으로도 도입하면 안되는 폭탄이기 때문이다. ‘슈스케(슈퍼스타K)식 선발’에 위협을 느낀 많은 의원들은 엊그제 의원 연찬회에서 “신인들로 어떻게 선거를 치를 셈이냐”며 당 지도부를 공개적으로 성토했다. 대승적 수용을 요청하던 지도부가 급기야 오디션 공모와 공천은 별개라고 달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국당 개혁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인적 쇄신의 성과를 자랑하려던 자리가 ‘좋았던 옛 시절’을 노래하는 ‘반동의 공연장’으로 전락하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된 셈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치 행보를 저울질하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이 시기에 한국당에 입당하며 ‘활기’ 운운하니 뜻을 알기 어렵다. 그는 “문 정부가 국민적 합의 없이 성급한 정책을 밀어붙여 나라가 총체적 난국에 직면했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왜 지금 나서는지 선뜻 와닿지 않는다. “개인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만을 생각해야 한다고 판단해 입당했다”며 전후 맥락없이 통합ㆍ화합ㆍ단합 등 3합을 거론하니 더 그렇다. 그는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정부의 충성스런 2인자였고, 리더십 공백에 허덕이는 보수의 대안으로 줄곧 주목받았다. 현실정치에 뛰어들겠다고 마음 먹었으면 자신의 행적과 책임을 먼저 해명하고 분명한 역할과 메시지를 제시하는 게 예의이자 준비된 자세다. 그런데도 그는 누구나 짐작하는 거취엔 입닫고 고장난 녹음기처럼 법치와 통합만 반복했다.

그가 ‘반기문 시즌2’라는 비아냥을 무릅쓰며 야심을 흐리는 것은 당권 혹은 대권이 언급되는 순간 검증이 시작돼 상처를 입는다는 무임승차 발상에서다. 평생 꽃가마를 타고다닌 그를 맹종하는 ‘친황 그룹’의 신비주의 전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임을 외면한 이런 식의 정치공학적 데뷔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한국당이 시작한 오디션 무대에 올라 부끄러운 침묵의 시기에 형성된 ‘황교안 거품’을 뺄 자신이 없으면 섣부른 꿈을 접는 게 옳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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