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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니 말 삼가라” “더러운 사건”… 판사 막말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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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니 말 삼가라” “더러운 사건”… 판사 막말은 여전했다

입력
2019.01.16 11:35
수정
2019.01.16 19:0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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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변호사 A씨는 지난해 재판 도중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재판부가 변론이 무르익기도 전에 사건을 예단하고 소송 당사자들에게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느냐” “이대로 가면 패소다” 등의 논쟁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해당 판사는 다른 재판에서도 소송 당사자를 향해 “그게 자랑이냐” “지금 웃기냐”는 등의 말로 비아냥거려 방청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변호사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재판부에 증인을 신청했더니 판사가 “(증인신문 때) 5분을 초과하면 녹음기를 꺼버리겠다”며 엄포를 놓은 데 이어, 소송당사자와 변호사에게 “어젯밤 한숨도 못 자 너무 피곤하니 불필요한 말은 삼가라”며 모욕적인 말을 퍼부은 것이다.

사법부가 사법농단 사태를 겪으며 법관들에게 낮고 겸손한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일부 판사들은 사건 관계인에게 고압적 태도를 보이거나 막말을 일삼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한 해 동안 맡았던 소송사건의 담당 판사를 상대로 평가한 결과에서다. 2,132명의 변호사가 참여한 조사에서 5명 이상의 변호사에게 호평을 받은 21명의 법관들은 대개 사건을 충실히 심리하고, 사건 당사자들과 변호인에게 충분한 입증기회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10명 이상의 변호사에게서 낮은 점수를 받은 하위법관 5명은 고압적인 발언은 기본, 사건을 예단하고 한쪽 편을 드는 듯한 재판 진행 등을 일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위법관으로 꼽힌 한 법관의 경우, 사건 당사자와 변호사들이 그 앞에서 왕을 대하는 신하처럼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는 사례가 제출되기도 했다. 또 다른 하위법관은 소송당사자들과 대리인들에게 “‘네, 아니오’로만 답하라”고 하거나,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에게 “내가 오늘 구속영장을 써왔는데, 한 번 더 기회를 줄 테니 잘 생각해보라”며 구속을 빌미로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재판 도중 “왜 이렇게 더러운 사건들만 오냐”며 사건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 사례도 있다.

변호사들이 해마다 실시하는 평가에서 상습적으로 리스트에 오른 ‘문제 법관’도 있었다. 올해 하위법관 5명 가운데 3명이 과거에도 하위법관에 올랐던 것으로 드러났고 그 가운데 2명은 11차례에 걸친 법관 평가에서 각각 6차례, 7차례 하위법관으로 꼽혔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하위법관으로 선정되면 각 법원을 통해 본인에게 통지가 가는데, 지적받은 사항을 고치지 않아 재선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변호사들 사이에선 법원이 지나치게 무책임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최소한 두 번, 세 번 지적받은 사람에 대해선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게 주의를 주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이런 것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법부 신뢰를 회복한다고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변호사도 “사람들이 법관을 존중해주는 건 그들 스스로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재판) 때문인데, 일부 법관들은 엘리트 의식에 젖어 자신을 왕처럼 떠받들어 주길 원하는 것 같다”며 견제 장치의 마련을 촉구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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