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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언어번역기] 황교안 출사표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입력
2019.01.16 13:55
수정
2019.01.1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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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15일 국회 본청 자유한국당 회의실에서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15일 국회 본청 자유한국당 회의실에서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던 황교안 전 총리가 자유한국당에 들어갔다.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지낸 황 전 총리의 입당은 정치의 시작이다. 짧게 보면 다음 달 있을 전당대회, 길게 보면 차기 대선 출마까지 염두에 둔 행보다.

그래서 15일 그가 밝힌 기자회견문은 사실상 정치에 몸을 던지겠다는 출사표다. 자신도 “정치에 첫발을 내딛는 정치 신인으로 출발하는 자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출사표는 정치 언어의 정수다. 한 정치인의 신념, 철학, 지향점이 응축돼있기 마련이다. 그가 출마하는 선거가 당 대표 경선이든, 총선이든, 대선이든 정치인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참모가 초안을 써줄지언정 막판에는 직접 손을 봐서 유권자 앞에 서는 이유다. 그렇기에 출사표는 그 정치인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치인 황교안’을 가늠 할 수 있는 출사표를 뜯어보는 일 역시 중요하겠다.

 ◇난세에 영웅 

출사표에서 나라는 늘 난세(亂世)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 때문일까, 태평성대엔 영웅이 필요 없기 때문일까. 모두 나라가 어렵고 어지럽기 때문에 출마를 한다고 말한다. 황 전 총리가 기자회견문에서 밝힌 정세 분석도 마찬가지다.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입니다.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경제, 안보 위기가 빠지지 않는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일자리를 얻으려고 하는 구직자, 청년들까지. 누구 하나 살 만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경제가 어렵습니다. 평화가 왔다는데 오히려 안보를 걱정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사회적 갈등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고 국민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계십니다.”

 ◇통합의 정치 

그 같은 정국 진단은 자신이 정치를 시작하는 이유이자 의미가 된다. 이런 난국에 한국당을 대안 정당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국민들에게 더 많은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보태겠습니다.” “이제 국민에게 시원한 답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답은 통합이다. 당 대표가 된다면 아마도 이것에 주력하겠다는 의지일 테다. “한국당은 통합과 화합의 정신으로 정말 한마음으로 단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합과 화합, 그리고 단합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당 개혁이나 혁신은 빠졌다. 일단 뭉치고 보자는 거다.

 ◇누구에게 쓴 출사표인가 

황교안(오른쪽) 전 국무총리가 15일 국회 본청 자유한국당 회의실에서 김병준(가운데)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입당원서을 제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오대근 기자
황교안(오른쪽) 전 국무총리가 15일 국회 본청 자유한국당 회의실에서 김병준(가운데)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입당원서을 제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오대근 기자

이 같은 출사표에서 알 수 있는 건 뭘까. 황 전 총리는 국민을 강조했지만, 그의 회견문은 철저하게 전당대회에서 표를 무더기로 움직일 수 있는 의원들을 향하고 있다. 특히 친박계에 과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테니 믿고 힘을 실어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황 전 총리가 차기 전대에 출마한다면 당선 가능성은 적지 않다. 아직도 ‘박근혜 지지층’이 엄존하는 대구ㆍ경북(TK)권은 황 전 총리에게 표를 몰아줄 거라는 게 당내 분석이다. 반면, 수도권을 주된 기반으로 하는 비박계는 구심을 잃고 모래알 수준이 됐다. 차기 당 대표는 의원들의 생명줄인 차기 총선의 공천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으니, 고민이 될 것이다.

 ◇그의 출사표에서 빠진 것 

그런데 황 전 총리의 출사표에는 빠진 게 하나 있다.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다.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 지향점을 제시하는 방향타가 그것이다. 그래야 같은 생각을 하는 정치인들이 그를 따르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그런데 그의 출사표에는 그게 없다. 그저 현 정부를 향한 비판만 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반대하는 게 자신이 정치를 하려는 이유일까.

이런 수준으로는 ‘정치인 황교안’을 경험해보지 않은 ‘정치 유단자’ 의원들의 의문을 해소할 수 없다.

자신의 언어가 없으니, 사실상 대선을 향한 출사표나 다름없는 회견문이 남의 말처럼 들리는 게 당연하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전문] 황 전 총리의 입당 기자회견문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입니다.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일자리를 얻으려고 하는 구직자, 청년들까지. 누구 하나 살 만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경제가 어렵습니다.

평화가 왔다는데 오히려 안보를 걱정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이 정부가 소통을 앞세우고 있는데 정책 불통이 심각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갈등들, 사회적 갈등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국민적 합의 없이 밀어붙이는 선거판 정책들이 경제도 안보도 사회도 모두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고 국민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계십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미래를 바라보며 변화와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과거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과거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이제 우리 자유한국당이 국민들에게 시원한 답을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통합입니다. 통합의 정신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누구나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찬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동안 김병준 위원장님 그리고 나경원 원내대표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당이 점차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이 더 이상 분열하지 않도록 힘써 오셨고 새로운 방식으로 젊은 인재들을 영입하는 노력을 통해서 젊은이들이 우리 자유한국당을 찾고 또 지지하는, 이제는 젊은 정당, 건강한 정당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지켜나가고 계신 우리 자유한국당 당원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 또한 우리 자유한국당이 국민들에게 더 많은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보태겠습니다. 우리 자유한국당은 통합과 화합의 정신으로 정말 한마음으로 단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통합과 화합, 그리고 단합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우리 자유한국당 당원 여러분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과 민생 파탄을 저지하고 잘 사는 나라, 정말 국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매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지켜봐 주시고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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