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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귀 닫은 한국사회... 약자 목소리 경청을”

입력
2019.01.17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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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사회’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6>사회학자 엄기호

사회학자 엄기호씨는 “고통을 겪는 이에게 곁이 있을 때, 이 곁을 주변에서 다시 든든하게 받쳐줄 때, 즉 더 많은 이가 고통의 곁에서 다시 곁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희망을 기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사회학자 엄기호씨는 “고통을 겪는 이에게 곁이 있을 때, 이 곁을 주변에서 다시 든든하게 받쳐줄 때, 즉 더 많은 이가 고통의 곁에서 다시 곁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희망을 기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뒷목을 잡고 나오는 사회는 근대 사회가 아니에요. 보험사든, 변호사든, 수사기관이든 제도가 나를 매개하고 대행해주는 게 근대 사회잖아요. 누구나 원하는 시민적 우아함과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한 사회. 내가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직접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제도가 나를 매개해주고 대변해주는 삶.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게 이거죠. 매개되는 삶에 대한 신뢰.”

최근 한국일보에서 만난 사회학자 엄기호씨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고통의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라며 주요 원인으로 “제도와 절차에 대한 신뢰 상실”을 지목했다. “제도가 대신해주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고통에 대해 직접 소리를 지르고, 모두가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점점 더 세게 지를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인권활동가이자 한국사회의 민낯을 촘촘히 성찰해온 학자다. 화제작 '단속사회'(창비),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창비) 등을 썼다. 최근 저서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나무연필)에서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나, 동시에 고통을 겪는 이에 대한 신중한 언어도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통의 당사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 신호죠.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고통을 말하는 게 금기시됐잖아요. 약자로 자기를 드러내면, 그 순간 보호를 받는 게 아니라 완전히 짓밟히는 사회였기 때문에. 육체적 질병이건, 사회적 탄압이건, 범법행위에 대한 피해이건. 입을 다물었죠. 그런데 이제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니까요. 이 사회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의사나 역량이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부터. 이중적이죠.”

국회부터 시작해 법원, 언론, 병원, 학교 등 어떤 제도에 대해서도 믿음이 없다는 게 “가장 후퇴한 부분”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법부 파동’이야 말로 제도에 대한 신뢰 상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

고통의 올림픽이 가장 처참하게 벌어지는 분야는 세대 및 계층이다. “어느 세대가 가장 힘드냐를 가지고 비교와 경쟁이 벌어지는데 보편 인식에는 도달하지 못하잖아요. 20대가 더 힘드니, 40대가 더 힘드니 하는 와중에 빠져나간 승자들은 따로 있거든요. 가용할 자원이 많은 계층, 제도와 절차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가족과 네트워크가 동원해 낼 수 있는 자원이 많은 이들, 이들을 빼고 나머지 사람끼리 고통의 올림픽을 벌이는 거죠.”

만원 지하철을 생각하면 쉽다. 그는 “어떤 사람은 자가용을 타고 빠져나갔는데, 도저히 지하철을 타지 않을 수 없는 사람만 남아 서로를 혐오한다”고 비유했다. 이어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 자리를 차지하려 몸을 날리는 사람,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을 견뎌야 하는데 중요한 건 고통의 소리를 안 내도 되는 사람들은 다 빠져 나간 상태, 즉 영화 ‘설국열차’의 마지막 칸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 고통에서 빠져 나간 사람들은 그러죠. ‘저 봐라, 저 아우성치는 것들 좀 봐라. 얼마나 품위 없고 우아하지 못하냐’고. 고통의 목소리를 혐오해요. 이 비명 전체를 혐오하며 자기들끼리 있고 싶은 거죠. 아파트 단지 담을 높이고, 출입을 통제하고, 학교 반 편성을 따로 해달라고 요구하고. 너희들하고 같은 공기 마시기 싫다는 거예요. 오염된다는 생각. 이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는 이미 신분제 사회, 아니 골품제 사회가 됐어요.”

그는 한국사회의 빈곤에 대한 인식이 “거의 인종화됐다”고 잘라 말했다. “가난한 사람을 그냥 혐오스러운 대상, 접촉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 불가촉 천민으로 생각하는 거죠. 인간이 이익과 이해를 위해 움직인다고들 말하지만 정말 지키고 싶은 건 품위와 존엄이라고 봐요. 문제는 지금 한국 사회는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거죠. 이 모든 악다구니에서 빠져나간 한 줌의 사람들만 ‘아 너희는 천박해, 시끄럽고, 혐오스러워’라고 말할 수 있어요.”

또 사법부가 이 기득권 사회에 면책특권을 부여하면서 사법불신을 자초했다고 꼬집었다. “의대생 성범죄 사건 판결에서 ‘미래가 유망한’, ‘장래가 창창한’ 등을 운운하며 형을 정하는 것만 봐도 그렇죠. 우리 성골은 면책특권 받아야겠다는 거잖아요. 그게 지금까지 이 사회의 제도가 보여온 태도, 아주 심각한 문제에요.”

그가 보는 더 큰 문제는 모든 이들이 신분제의 존재를 알면서도, 이를 타파하기보다는 “내가 빨리 성골이 돼야지”라는 결론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는 “내가 빨리 성골이 되면 그냥 다 무시하고 살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게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사람은 그냥 세상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상태”로 현 세태를 진단하며 “망한 사회에서 망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더 격렬하게 하는 이 모든 목소리에는 사실 자기혐오가 녹아 있다”고 진단했다.

이럴수록 공론장은 황폐해지고, 반지성주의가 횡행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경고했다. “더 크게 소리치는 것, 선명하고 세게 이야기하는 것만 점점 주목받아요. 해상도 높은 의견, 세밀하게 꼼꼼히 하는 말은 들리지 않고, 명도와 채도가 높은 말만 들리는 거죠. 조금만 선명성이 덜하면 ‘어디서 안락한 소리 하고 앉아 있냐’ 욕먹기도 쉬워요. 공론장에 누구만 남겠어요. 이 검증과 비난과 위험을 무릅쓸 만큼 정말 절박하거나, 정말 용감하거나, 정말 단순한 사람들뿐이죠.”

이 사태의 타개를 위해선 무엇보다 “정의(justice)를 재정의(redefine)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간 정의(justice)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했던 여성, 성 소수자 등의 입장에선 아우성을 칠 수밖에 없잖아요. 반드시 필요한 목소리에요. 그런데 이 목소리가 ‘정의를 재정의하는’ 결과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게 막혀 있는 거죠. 과거의 정의관념에 머무른, 심지어는 후퇴한 각종 성범죄 법원 판결이 대표적이죠. 사람들은 이제 확장된, 심화된 정의를 원하는데 사법부는 ‘옛 정의’에 머물러 있는다면, 불신과 아우성만 반복되는 악순환은 깰 수 없어요. 정의부터 제대로 세워야죠.”

그는 또 이런 ‘정의의 재정의’를 위해 절실한 것이 고통의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을 온 사회가 지지하고 보호하는 일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를테면,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 등 어떤 고통의 당사자, 공익제보자, 사태의 피해자의 ‘곁’에서 증언, 지지, 연대 등 더 많은 이야기가 형성돼야 하고, 온 사회가 이 ‘곁’을 보호하고 지지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의 당사자의 자리는 소리 지르는 자리에요. 직접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늘 신중하게 말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그 옆을 지키는 2인칭, 반려의 역할이 중요한 거예요. 증언, 목격담, 심리적 지지 등. 좋은 사회라고 한다면 이 2인칭 자리도 든든하게 지켜줘야죠. 그런데 현실은 반대잖아요. ‘너만 조용히 하면 된다’고 하고 ‘분란 일으키지 말라’고 하죠.”

‘반려’에 대한 더 많은 고민도 절실하다고 보탰다. 누구나 약자이고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것을 대전제로 놓고, 고통받는 많은 사람 옆에 다양한 ‘곁’을 든든하게 구축해 줄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 동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한다거나, 저소득층 노인들의 반려동물을 위한 건강검진 센터를 설치하는 등의 방식 등이다. 고통에 노출될 수 있는 많은 사람이 홀로 있지 않도록, 그 곁을 지키는 사람이 다시 외롭고 힘들지 않도록 지지하자는 취지다. 그래야 다 같이 이 설국열차의 마지막 칸을 해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제가 볼 땐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아우성끼리 싸우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우리 사회의 문제를 들추고 해결해가며 ‘정의를 재정의’할 수 있느냐. 시작점에라도 설 수 있다면 한국은 살만한 나라가 되는 거고, 그게 안 되면 정말 가망 없는 상태에 놓이겠죠.”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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