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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무덤 넘치는 룩소르, 왕궁은 어디 가고 신전만…

입력
2019.01.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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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40>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 입구에 양머리 스핑크스가 줄 지어 세워져 있다. 뒤로 탑문이 보인다.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 입구에 양머리 스핑크스가 줄 지어 세워져 있다. 뒤로 탑문이 보인다.

살아 있는 신, 파라오의 나라 이집트에서는 도무지 왕궁을 구경할 수 없었다. 권세로 따지자면 중국의 황제나 러시아 짜르, 이슬람의 술탄에 뒤지지 않을 파라오건만 자금성도, 크레믈린궁도, 돌마바흐체 궁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라미드는 하늘을 찌르는데 허접한 궁전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며칠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신왕국의 수도 룩소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왕가의 계곡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파라오의 무덤이 수두룩한 룩소르에도 궁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파라오는 살아서 자신의 왕궁을 건설하는 것보다 사후세계를 보장받는 신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궁은 세월을 견디지 못하는 흙벽돌로 짓고, 신전은 화강암으로 올렸다.

이집트 최고의 신전으로 꼽히는 카르나크 신전은 매표소를 지나 한참이나 걸어야 입구가 나올 정도로 넓었다. 룩소르 중심에서 북쪽으로 3㎞ 떨어진 이 신전은 파라오 시대에는 ‘이페트수트’로 불렸다. 가장 완벽한 곳이라는 뜻이다.

양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길 양편에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입구에 도착한 모양이다. 룩소르 4개의 신전 중 가장 오래된 카르나크 신전은 BC 2,000년 이전에 건설을 시작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이르기까지 2,000여 년간 공사가 계속됐다.

머리가 붙어있기도 하고 떨어져 나가기도 한 스핑크스 무리를 지나면 카르나크 신전의 완성자로 꼽히는 람세스2세의 석상이 우뚝 서 있다. 누비아 지역의 아부심벨신전부터 지중해까지, 아니 정복전쟁을 벌였던 시리아까지 그의 흔적은 없는 곳이 없었다.

카르나크 신전 안에는 높이 23m의 원주 134개가 하늘을 찌를듯 서 있다.
카르나크 신전 안에는 높이 23m의 원주 134개가 하늘을 찌를듯 서 있다.

여기가 성속이 갈리는 경계지점 같았다. 높이 15m, 폭 113m의 갑문이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갑문 중간 통로에 들어서니 대낮인데도 빛이 사라진 느낌이다. 이곳 주신전인 아몬신전 내 다주실로 들어서니 길이 102m, 너비 53m의 장방형 공간에 통로 양쪽으로 촘촘히 늘어선 기둥이 빛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높이 23m, 둘레 15m의 기둥 134개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는 꼬마들도 보였다. 연인들은 인생샷을 찍느라 시간을 잊고 있었다.

탑문을 하나 더 지났더니 뾰족한 오벨리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18왕조 투트모세 1, 3세가 각 한 쌍의 오벨리스크를 세웠는데 3개는 간 곳이 없고 하나만 남아 있었다. 높이 23m, 무게 143톤의 화강암 덩어리였다.

중앙통로를 건너 대각선 자리에도 하트셉수트 여왕이 세운 오벨리스크 하나가 있었다. 그도 한 쌍의 오벨리스크를 세웠는데 하나는 부서져 인근 호수 옆에 전시돼 있었다. 그러니까 카르나크 신전에 세워진 6개의 오벨리스크 중 2개만 온전히 남아있는 셈이었다.

여행객들이 카르나크 신전의 오벨리스크 2개를 둘러보고 있다. 이 신전에는 총 6개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졌으나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여행객들이 카르나크 신전의 오벨리스크 2개를 둘러보고 있다. 이 신전에는 총 6개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졌으나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신전 중앙에는 아몬 라의 신상을 모시던 좌대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 신상은 새해 첫날 오페트 축제가 열릴 때면 남쪽으로 3㎞ 떨어진 람세스 신전으로 3주간 옮겨져 있다 돌아왔다.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는 바로 이곳 람세스 신전에서 가져왔다. 19세기 오스만투르크로부터 독립을 이룬 마하마드 알리가 프랑스왕 루이 필립에게 건넨 선물이었다. 통이 큰 건지, 개념을 상실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어둠이 깔릴 무렵 룩소르 도심을 마차로 누볐다. 이곳 마부들은 나름대로 전통 의상을 갖추고 말과 마차를 한껏 치장해 도회지 냄새를 물씬 풍겼다. 한때 이집트를 다스렸던 수도였으니 그럴 법하다.

마차는 나일강을 따라 룩소르 신전 옆 도로와 시장을 누빈다. 시장 골목은 우리 전통시장과 비슷한 규모인데 마차가 그 중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관광상품으로 자리를 굳힌 것 같았다. 이슬람 세상이니 여성들의 히잡과 차도르가 시장 곳곳에 내걸려 있는 것이 당연한데도 낯설기만 했다.

이집트인 가족이 마차를 타고 룩소르 도심을 달리고 있다.
이집트인 가족이 마차를 타고 룩소르 도심을 달리고 있다.
룩소르의 시장 한켠에 여성들의 복장을 걸쳐놓은 마네킹이 서 있다.
룩소르의 시장 한켠에 여성들의 복장을 걸쳐놓은 마네킹이 서 있다.

이곳 골동품가게에서 파피루스에 그린 ‘사자의 서’ 하나를 장만했다. 종이가 훼손되지 않게 돌돌 말아 원통 안에 넣어 들고 왔는데 그림 성격상 어디 걸어놓기가 애매한 것이 흠이었다. 사람이 죽어 오시리스 앞에서 심판을 받는 장면이었다. 집에서도 찬밥, 사무실에서도 찬밥인 이 그림은 이국땅에서 골동품 대접을 받고 있다.

룩소르를 떠나 밤길을 도와 달린 지 6시간 만에 홍해의 해양레저도시 후루가다에 도착했다. 휴양지답게 번듯한 호텔과 서구적인 가게들이 바닷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땅 덩어리에 여유가 있어서인지 건물이 대부분 나지막했다.

이집트 홍해의 휴양도시 후루가다에서 현지 선원들이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집트 홍해의 휴양도시 후루가다에서 현지 선원들이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장거리 여행을 다닐 때면 일주일 중 하루 정도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푹 쉬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후루가다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이튿날 홍해 바다에 몸을 맡기고 떠 있으니 12월인 걸 잠시 까먹었다. 조금 쌀쌀했지만 바닷속에 들어가니 오히려 물밖으로 나가기 싫어졌다. 모세가 기적을 일으킨 홍해에서 한동안 떠다녔다.

글ᆞ사진 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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