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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심야 식탁] 짜장면 맛있게 먹으려면 직접 손대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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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심야 식탁] 짜장면 맛있게 먹으려면 직접 손대지 말 것

입력
2019.01.16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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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 시절 많은 아이들이 그랬듯 내 오라비도 짜장면을 지상 최고의 음식이라 여겼는데, 어느 날 짜장면을 먹고 난 후 혀로 그릇을 핥으면서 말하길, 짜장면 집 아들로 태어났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으니, 나중에 크면 기필코 짜장면 집으로 장가를 가겠노라고 했다. 짜장면 집 딸이 못생겼어도 상관 없냐고 아빠가 장난스레 묻자, 오빠는 짜장면을 먹고 자랐으니 분명 예쁠 거라고 장담했다. 돈 벌어서 아무 때나 사먹으면 되지, 겨우 짜장면에 결혼까지? 짜장면보다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라고 말한 건 엄마. 오빠가 자신 있게 응대했다. 공짜로 먹을 수 있잖아요.

예닐곱 살 무렵이었는데도 그 대화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짜장면집 사위가 되면 오빠는 뭘 하게 되는 걸까 궁금한데다, 나는 안 예뻐서 결혼도 못하게 되면 어쩌나 무섭기도 했고, 그렇다면 나는 순댓집으로 시집을 가야 하는 건가에 생각이 미치자, 영천시장 단골 순댓집 할머니의 무서운 얼굴이 떠오르면서, 시집을 가지 않고도 공짜로 순대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까지, 내겐 꽤나 심각한 문제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곰곰 생각한 끝에 덧붙인 말은 이랬다. 바보, 오빠가 짜장면집을 하면 되잖아. 맨날맨날 짜장면 만들어 먹어.

그땐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짜장면을 그렇게 좋아하면 중국집 주방장이 돼서 직접 만들어 먹으면 될 일. 왜 아니겠는가. 좋아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 먹고 또 남도 먹여주고,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것이 가장 정직하고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고 방식이 그러하니 결국 식당을 하게 된 것이었겠지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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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하면서 지인들이 찾아왔을 때 난감한 순간 중의 하나는 와서 같이 먹자고 청할 때였다. 밥 안 먹었지, 힘들 텐데 너도 와서 좀 먹어. 이해한다. 주방에서 종종거리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음식이 목으로 안 넘어간다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래서 직접 포크에 음식을 담아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그러지 말고 한 입 먹고 해, 손님도 별로 없는데 괜찮잖아, 자 어서 먹어. 어쩔 수 없이 받아 먹기는 하지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제발 한 입만 더, 라고는 말하지 마세요. 매일 몇 번씩이고 그 음식을 만든다고요. 몇 번씩 연습하고 몇 번씩 고친 후에야 나온 메뉴라고요, 누가 남기기라도 하면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 남은 접시에 음식을 먹기도 한다고요. 그러니 제발, 내가 만든 거 말고,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주세요, 얼마나 맛있을까요. 정 보기 안쓰러우시면 편의점에서 하드 하나만 사다 주세요. 주방에서 먹는 하드, 진짜 꿀맛이에요.

수십 년 짜장면 집 주방장을 한 것도 아니면서 엄살 부린다 싶지만, 진심이다. 짜장면을 계속 맛있게 먹고 싶으면 짜장면에 직접 손대지 말 것. 지금 생각하면 바보는 오빠가 아니라 바로 나였던 것 같다. 여전히 짜장면을 좋아하는 오라비는 지금도 일주일에 두어 번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는다고 한다. 오빠 바람대로 짜장면집 사위가 되었어도 짜장에 대한 애정과 순정은 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짜장면을 먹고 자란, 그래서 예쁠 것이 당연한, 어린 시절 오빠가 꿈꾸던 신부인 짜장면 집 딸내미가 있다면, 그녀는 과연 짜장면을 좋아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대를 이어 짜장면집을 하고 있으면 좋으련만, 이라고 생각하다가, 또 멍청한 생각을 하는구나 고개를 저었다.

오라비가 짜장면집 사위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히던 그날, 그보다는 짜장면집 주방장이 되는 것이 낫다고 내가 우기던 그날,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아버지가 혀를 차며 한 말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혹시라도 남자친구 앞에서는 짜장면 먹지 마라. 다 도망가겠다. 너는 어째 짜장면을 입이 아니라 얼굴로 먹냐, 온몸으로 먹는구나, 쯧쯧.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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