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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쓰레기의 귀환

입력
2019.01.14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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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필라델피아시는 1970년대 후반부터 2개의 대형 생활쓰레기 소각장에서 나온 재를 뉴저지주 킨슬리 처분장에 버려 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1984년 뉴저지주가 유해물질인 쓰레기 소각재의 반입을 거부한 것이다. 대안으로 주변 다른 6개 주에 반입을 타진했다가 버릴 곳을 찾지 못한 필라델피아시는 결국 지역 도로포장 업체와 이 소각재를 카리브해로 옮기기로 계약한다. 어디에 버릴지는 업체 하청을 받아 1만5,000톤의 소각재를 선적한 키안시(Khian Sea)호의 몫이었다.

□ 바하마에 쓰레기를 내리려던 처음 계획은 바하마 정부의 거부로 무산됐다. 그 후 도미니카공화국, 온두라스, 버뮤다, 기니비사우, 앤틸리스제도에서도 모두 거부당해 14개월간 바다를 떠돌던 배는 아이티에 당도하자 이 쓰레기를 ‘비료’로 속여 수입 허가를 받아 낸 뒤 해변에 버렸다. 하적물이 비료가 아닌 건 금세 들통났지만 키안시호는 모습을 감춘 뒤였다. 선진국이 대량의 자국 쓰레기를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저개발국에 버려 환경오염을 국외로 이전하는 행태는 1970년대부터 심각한 국제 문제였다.

□ 이를 바로잡기 위해 유엔환경계획(UNEP) 주도로 1989년 마련된 것이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처리에 관한 바젤 협약’이다. 유해 폐기물 수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협약이 발효되고 25년이 지났지만 이 국제 약속이 잘 지켜지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이슈는 재활용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폐가전의 수출이다. 그러나 버려진 TV, 컴퓨터, 모니터, 냉장고, 세탁기 등에서 실제 재활용 가능한 물품은 10%에 불과하다. 수입국 주민은 쓰레기나 마찬가지인 나머지 폐가전에서 납, 동, 아연 등 금속을 추출해 수익을 얻지만 이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오염과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 평택의 한 업체가 합성플라스틱이라고 속인 쓰레기를 필리핀으로 수출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 제 집 쓰레기를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슬쩍 남의 집 정원에 던져 놓은 꼴과 다를 바 없다. 바젤 협약에는 가능하면 폐기물의 자국내 처리 시설 확보를 우선하되 수출할 경우 환경을 고려해 이를 처리할 기술 전수 등이 명시돼 있다. 더 이상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는 나라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지 않으려면 정부가 불법 수출 단속은 물론 국제 협력 등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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