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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스토리]신민준9단 “저만의 바둑, 이젠 둘 수 있을 거 같아요”

입력
2019.01.12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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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이세돌 키즈’ 신민준 9단, 제37기 KBS바둑왕전 우승

생애 첫 종합기전 타이틀 획득

신진서9단에 뒤졌다는 부담 덜어

신민준 9단이 박정환 9단과 맞붙었던 ‘제37기 바둑왕전’ 최종국을 복기하고 있다.
신민준 9단이 박정환 9단과 맞붙었던 ‘제37기 바둑왕전’ 최종국을 복기하고 있다.

“우승컵에 너무 목말랐습니다.”

오랫동안 헤맨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인 듯 했다. 일찍부터 받아왔던 주변의 기대감에서 빚어진 ‘갈증’ 해소처럼 보였다. ‘이세돌 키즈’인 신민준(20) 9단의 생애 첫 종합기전 타이틀 획득 소감은 그랬다. 9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난 그는 “절실함이 가져온 승리였던 것 같다”며 그 동안 남몰래 겪어왔던 마음 고생을 털어놓았다. 그는 8일 열렸던 ‘제37기 KBS바둑왕전’(우승상금 2,000만원)의 결승 3번기(3판2선승제) 2국에서 국내 최강자 박정환(26) 9단을 누르고 종합전적 2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신민준 9단의 종합기전 우승은 2012년7월 입단 이후 6년6개월 만이다.

박정환 9단은 2014년1월부터 2018년10월까지 5년 가까이 국내 랭킹 1위를 지켜냈던 초일류 기사. 그를 상대로 차지한 우승인 만큼 과정은 쉽지 않았다. “최종국은 박정환 9단이 승리했더라도 딱히 할말이 없었을 만큼, 제가 확실하게 잘 뒀다고 보긴 어려웠어요.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신민준 9단은 치열하게 전개됐던 마지막 결승 대국을 이렇게 복기했다.

사실 신민준 9단의 이번 우승 과정에 ‘속앓이’도 상당했다. 입단 직전부터 신민준 9단은 또 다른 바둑 신동인 신진서(19) 9단과 함께 ‘양 신(申)’으로 불리며, 이창호(44) 9단, 이세돌(36) 9단의 ‘양 이(李)’ 시대를 이어갈 국내 바둑계 차세대 쌍두마차로 크게 주목 받았다. 하지만 신민준 9단의 성장 속도는 라이벌인 신진서 9단에 비해 더뎠다. “솔직히 작년까지만 해도 신진서 9단과 비교되면서 스트레스가 엄청났어요. 우선, 국내 랭킹 차이도 많이 났고 무엇보다 성적에서 제가 많이 밀렸으니까요.” 속내를 털어 놓은 신민준 9단의 얼굴에선 묘한 웃음이 흘렀다.

신민준 9단은 “이번 KBS바둑왕전 우승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수확이다”고 말했다.
신민준 9단은 “이번 KBS바둑왕전 우승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수확이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입단 직전부터 ‘양 신’은 영재로 평가됐지만 프로 입문 이후 격차가 벌어졌다. 우선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랭킹에서 신진서 9단은 2위(랭킹점수 9,965점)에, 신민준 9단은 6위(9,661점)에 올라 있다. 국내 랭킹 1위 박정환 9단을 한때 잠시나마 정상에서 끌어내린 장본인이 신진서 9단이다. 국내외 주요 대회 성적 차이도 눈에 띈다. 신민준 9단은 이번 KBS바둑왕전 타이틀 획득 직전까지 ‘2016~17년 메지온배 오픈신인왕전’(19세 이하) 2년 연속 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다. 프로바둑 기사들이 모두 참여한 종합기전 우승은 전무했다. 반면 신진서 9단은 ‘2015 렛츠런파크배 오픈토너먼트’와 ‘제23기 GS칼텍스배 프로기전’, ‘JTBC 챌린지매치 4차대회’ 등에서 이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신진서 9단은 또 세계기전에서도 지난해 ‘제1회 천부배 세계바둑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현재 ‘제4회 바이링(百靈)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4강에 진출, 우승까지 넘보고 있다.

여기에 신민준 9단의 도우미로 나섰던 조력자들에 대한 부담 또한 적지 않았다. “바둑으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에게 뭔가 보여줘야 된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잘 알려진 분이시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신민준 9단은 생애 첫 종합기전 우승컵을 아버지 직장에서 품고서야 비로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것 같다고 했다. 신민준 9단의 부친은 ‘명성황후’와 ‘천추태후’, ‘대왕의 꿈’ 등을 연출한 신창석 KBS 드라마 프로듀서(PD)다.

신민준 9단은 “첫 단추가 늦게 꿰어졌지만 이제부터라도 ‘나’ 자신만의 바둑을 그려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민준 9단은 “첫 단추가 늦게 꿰어졌지만 이제부터라도 ‘나’ 자신만의 바둑을 그려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승인 이세돌 9단의 그림자 역시 신민준 9단에겐 ‘양날의 검’으로 다가왔다. “이세돌 사범이 워낙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제자가 잘못해서 이세돌 사범의 명성에 누가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은 항상 머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더더욱 그렇죠.”

부진 탈출의 계기를 이세돌 9단에게서 찾은 것도 사실이다. “자세한 과정이나 배경은 모르지만 아버지가 이세돌 사범과 연결시켜 주셨어요. 제 바둑에선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치열함이라고 할까요. 이세돌 사범을 만나기 전엔 조금 느슨한 수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세돌 사범에게서 먼저 두는 선수(先手)의 중요성과 승부처에서의 냉정함을 배웠습니다.” 신민준 9단은 2013년3월부터 그 해 7월까지 이세돌 9단 자택에 머물면서 내제자로 지냈다. 신민준 9단은 이번 KBS바둑왕전 4강전에서 스승인 이세돌 9단도 돌려세웠다.

이번 우승이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란 판단이 들어서일까. 신민준 9단은 자신만의 반상(盤上)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첫 단추가 좀 늦게 꿰어졌지만 이젠 비로소 ‘신민준’만의 바둑을 둘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성적도 덤으로 따라오지 않을까요.” ‘1인자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신민준 9단의 목소리에선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글·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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