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는 (대법원이 아닌) 검찰 포토라인에 서라!” , “양승태를 구속하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사법농단 사건)로 검찰에 출석한 11일 오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규탄하려는 시민들은 서초동 검찰청사가 아닌 대법원 앞에 모였다. 양 전 대법원장이 조사를 받는 서울중앙지검이 아닌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대법원 정문에서 ‘양승태는 사죄하라’ ‘양승태는 검찰 포토라인에 서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 오전 9시 대법원 정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양승태 구속”을 외쳤다.
양 전 대법원장이 5분 남짓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에는 “대법원이 아닌 검찰 포토라인에 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가 자신의 친정인 대법원 앞에서 회견을 하는 것은 무언의 압력 혹은 메시지로 비쳐질 수 있는 탓이다.
조석제 전공노 법원본부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오는 양승태가 자신의 입장을 대법원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전관예우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대법원 인근에선 양 전 대법원장을 규탄하는 진보단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는 법원삼거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6월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하거나 정책에 반대한 법관에게 불이익을 준 적 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정희성 민중당 공동대표는 “법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사람이 죄를 짓고 벌을 받아 마땅한데 지금 뻔뻔하게 대법원 앞에서 심정을 밝힌다”라며 “이런 양승태를 보호하기 위해 경찰들이 서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같은 시간 서울중앙지검 인근에선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을 비난하는 보수 시민단체가 양 전 대법원장을 응원했다. 자유대한호국단 등은 ‘양승태 대법원장님 힘내세요’ 등 피켓을 들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 판결이 왜 사법농단이냐”라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사로 향한 뒤, 진보단체가 서울중앙지검 인근에서 시위를 이어가기 위해 이동하면서 보수단체 등과 충돌하기도 했다. 보수단체가 전공노 등을 향해 “빨갱이” “좌빨”이라고 외치자 실랑이가 벌어진 것. 한 보수단체 회원이 ‘양승태 구속’이라고 적힌 피켓을 부수고 일부 회원 간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경찰의 제지로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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