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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50년간 산 동네에선… 수염을 기른 사람들이 수염 때문에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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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50년간 산 동네에선… 수염을 기른 사람들이 수염 때문에 싸운다

입력
2019.01.14 17:10
수정
2019.01.14 20:5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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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앤 조지 듀오의 수염 시리즈. 안경을 쓴 이가 영국 출신의 조지(왼쪽ㆍ77)이고, 오른쪽이 이탈리아 출신의 길버트(76)이다. 리만머핀갤러리 제공
길버트 앤 조지 듀오의 수염 시리즈. 안경을 쓴 이가 영국 출신의 조지(왼쪽ㆍ77)이고, 오른쪽이 이탈리아 출신의 길버트(76)이다. 리만머핀갤러리 제공

50년 전 영국 한 전시장에서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얼굴에 금색 페인트를 칠한 뒤 탁자에 올라가 춤을 추고 노래했다. 지금은 유럽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퍼포먼스지만 당시 전시장에서 작가가 이 같은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들은 작가는 ‘살아있는 조각’과 같다며 작품명을 ‘노래하는 조각(The Singing Sculpture)’으로 정했다. 두 남자는 영국 전위예술 듀오인 길버트 앤 조지(Gilbert Proesch & George Passmore)다.

실험적인 행위를 거듭하며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킨 길버트 앤 조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삼청동 리만머핀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높이 2m가 넘는 대형 작품 4점 등 5점에 불과하지만 이들 작품만으로 전시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는 ‘수염’ 시리즈 5점으로 구성됐다. 이스트런던 지역에서 50년간 거주해온 이들은 매일 아침 동네 산책을 한다. 이 지역은 남미와 방글라데시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교도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이었다. 산책길에 이들은 유독 수염을 기른 이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수염을 기른 이도 많았고, 거리 부랑자들도 수염을 길렀다”며 “그런데 이들은 수염 때문에 서로 싸웠다”고 밝혔다. 종교를 이유로 똑같이 수염을 길러 놓고, 종교를 이유로 서로에게 적대적인 종교의 배타성을 꼬집는 상징으로 수염에 주목했다.

길버트 앤 조지의 수염 시리즈. 리만머핀갤러리 제공
길버트 앤 조지의 수염 시리즈. 리만머핀갤러리 제공

이들은 산책길에 눈에 띈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이를 컴퓨터로 합성해 사진 콜라주 작품을 선보였다. 수염에는 낙엽, 뱀, 와인, 철조망, 폐허 등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안전을 위해 설치한 철조망은 한편으론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철근이 뜯긴 콘크리트 구조물의 이미지는 격변하는 도시 환경을 보여준다. 작가가 선별한 이미지들로 구성된 화면은 기괴하고 광적이다.

반세기 전부터 스스로를 작품의 일부로 여겨온 듀오도 작품에 들어있다. 긴 수염을 단 붉은 얼굴이 두 작가이다.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불안감과 분노를 표현하려고 붉은색을 썼다.

일흔을 훌쩍 넘은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작품은 실험적이다. 손엠마 리만머핀갤러리 서울 디렉터는 “50여년간 살아온 동네가 갖고 있는 특징을 잘 잡아내어 이를 세계적인 이슈로 다룬다”며 “물리적인 나이는 많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예술 세계는 가장 젊고 신선하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3월16일까지.

영국 출신의 전위 예술 듀오인 길버트(오른쪽)와 조지는 스스로가 작품이라고 생각해 최대한 다른 특징을 배제하기 위해 정장을 입는다. 사진은 2012년 뉴욕 리만머핀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 참석한 모습이다.
영국 출신의 전위 예술 듀오인 길버트(오른쪽)와 조지는 스스로가 작품이라고 생각해 최대한 다른 특징을 배제하기 위해 정장을 입는다. 사진은 2012년 뉴욕 리만머핀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 참석한 모습이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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