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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미얀마 반군 "사라진 왕국의 부활을 위해" 새해 피로 물들인 서부전선

입력
2019.01.11 19:00
수정
2019.01.14 15:4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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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 북부 부티동 타운십에 있는 경찰 초소에서 한 국경수비 경찰대원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라카인족 무장반군인 아라칸군(AA)이 이 지역 경찰 초소 네 곳을 급습한 지 사흘 후의 모습이다. 해당 공격으로 경찰 14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 새해 벽두부터 이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부티동=EPA 연합뉴스
7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 북부 부티동 타운십에 있는 경찰 초소에서 한 국경수비 경찰대원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라카인족 무장반군인 아라칸군(AA)이 이 지역 경찰 초소 네 곳을 급습한 지 사흘 후의 모습이다. 해당 공격으로 경찰 14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 새해 벽두부터 이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부티동=EPA 연합뉴스

미얀마의 독립기념일인 지난 4일, 서부 라카인주(州) 부티동 타운십의 경찰 초소 네 곳이 반군의 동시다발 공격을 받아 큰 혼란에 휩싸였다.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댄 라카인주는 로힝야족 대학살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았고, 부티동 타운십은 로힝야족이 많이 거주했던 지역 중 하나다. 이번 공격을 감행한 건 라카인족 무장반군인 아라칸군(AA)이다. 이날 공격으로 경찰 14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민간여성 4명과 경찰 14명 등 18명이 AA에 포로로 잡혀갔다. AA는 다음날 이들을 석방하면서 “전쟁포로에 대한 국제법 존중 차원”이라고 밝혔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AA의 공격으로 새해 첫 7일간 피란민 4,500명이 발생했다.

AA의 최근 공격적인 행보는 라카인주에 또 다른 형태의 혼돈을 예고하고 있다. AA의 성격과 이들의 역사를 읽는 건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접한 미얀마 ‘서부전선’의 복잡한 적대관계는 물론, 앞으로의 미얀마 정세를 읽는 데 매우 중요하다.

AA는 다수가 불교도인 라카인족 반군이지만 ‘라카인’보다는 ‘아라칸’이라는 이름을 선호한다. 이유가 있다. 1784년 12월 버마의 마지막 왕조인 콘바웅 왕조는 현재 라카인주를 지칭하는 ‘아라칸’ 일대를 침공하고 강제로 복속시켰다. 아라칸 지역에 350년간 번성했던 ‘므약 우’ 왕국은 아라칸의 마지막 왕국이 됐다. AA는 아라칸으로 불리던 그 땅에 번성했던 왕국의 전성기 부활을 꿈꾸는 무장단체다. 최고 사령관인 트완 므랏 나잉 소장이 AA 홍보 영상에서 “우리는 한때 강력하고 부유한 아라칸 왕국을 가졌던 민족”이라면서 “그걸 다 뺏겼다”고 말하는 이유다. 미얀마 독립기념일(독립 당시 국호는 ‘버마’)에 동시다발 공격을 감행, 세상을 놀라게 한 데엔 이런 상징적 의미가 깔려 있다. “버마족이 아라칸주를 착취하고 식민화해 왔다”는 자신들의 레토릭에 맞게 AA는 공격 날짜, 공격 방식, 그 이후의 포로 석방 과정에서의 프로파간다까지 상당히 노련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일 미얀마 소수민족 반군인 아라칸군(AA)의 공격을 받았던 서부 라카인주 부티동의 경찰 초소 네 곳 가운데 하나의 모습. 건물 외벽 곳곳에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부티동=AFP 연합뉴스
지난 4일 미얀마 소수민족 반군인 아라칸군(AA)의 공격을 받았던 서부 라카인주 부티동의 경찰 초소 네 곳 가운데 하나의 모습. 건물 외벽 곳곳에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부티동=AFP 연합뉴스

AA는 2009년 4월10일 중국과의 접경 지역인 미얀마 북부 카친주에서 출범했다. 그리고 6년 후인 2015년 초, 일부 대원들이 임시 본부가 있던 카친주에서 미얀마 서부까지 산악 행군을 거쳐 그들이 꿈꿔 왔던 ‘아버지의 땅(faher land)’, 다시 말해 라카인주로 왔다. 그 해 3월, 이들은 서부전선에서의 첫 공격으로 존재감을 시끌벅적하게 알렸다. 서부 입성의 발판으로 삼았던 곳은 미얀마의 또 다른 소수민족인 친(Chin)족이 거주하는 친주에 있는 팔레트와 타운십이다. 친족인권기구(CHRO)는 2015~2016년 AA가 친족 남성들을 납치, 자신들의 게릴라전을 위해 무기운반을 하는 ‘강제 포터’로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일부 친족 남성은 실종되기도 했다. 미얀마 현지 언론 ‘이라와디’의 8일자 보도에 따르면 AA는 현재 라카인주의 촉토ㆍ부티동ㆍ라티동ㆍ폰나군 등 타운십 네 곳, 친주의 팔레트와 타운십 등에 3,000명 가량이 침투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얀마 소수민족 반군들의 역사가 보통 50년~7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아홉 돌’ 밖에 되지 않은 AA는 여전히 신생 반군이다. 그러나 이들의 성장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2009년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던 청년 26명이 창설한 AA는 4년 만인 2013년 11월 기자가 이들의 카친주 임시 본부를 취재했을 당시, 4,000~5,0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지금은 7,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술적 노련함에 더해, 물적으로도 상당히 부유하다. 9년간 급성장세를 보인 AA는 초창기부터 지리적ㆍ물적 기반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또 ‘아라칸’ 명칭을 달았으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조직들의 전례도 꼼꼼히 학습했다. 2013년 10월29일 라이자 본부에서 기자와 마주앉았던 AA 최고 사령관 나잉 소장은 이 조직이 북부 카친주에서 출발한 배경을 두 가지로 설명했다. 그는 “무장투쟁 환경을 고려하다 보니 기존의 (아라칸 무장) 단체들이 기반을 뒀던 방글라데시 국경 지역이 너무 빈곤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를 기존 단체들의 실패 요인으로 분석했다. 이어 “두 번째로는 후보 지역의 무장단체들이 얼마나 기강이 잡혀 있고 강한지도 고려했다”고 했다.

2013년 10월 미얀마 카친주에서 아라칸군(AA) 대원들이 현수막을 내걸고 이 곳을 지나가는 다른 소수민족 무장단체 지도자들의 호위대를 환영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3년 10월 미얀마 카친주에서 아라칸군(AA) 대원들이 현수막을 내걸고 이 곳을 지나가는 다른 소수민족 무장단체 지도자들의 호위대를 환영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물적 기반이 풍부한 중국 국경은 기강이 잘 서 있는 카친 반군까지 둥지를 틀고 있어 거점지역으로 채택하는데 제격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카친 반군과 아라칸 반군은 끈끈한 동맹을 유지해 온 관계다. AA는 카친독립군(KIA)한테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마침 카친주는 2011년 카친 반군과 미얀마 정부군 간의 ‘17년 휴전’이 깨지면서 지난 7~8년간 가장 격렬한 내전이 벌어지는 지역이 됐고, AA는 KIA는 물론 북부의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 나란히 실전을 통한 전투 경험과 실력을 쌓았다. AA가 가까운 동맹을 맺고 있는 무장단체 중에는 마약 생산 지역에서 활동 중이거나, 마약 거래로 악명이 높은 샨족과 와족, 코캉족 등의 조직도 두루 포함돼 있다. AA의 풍부한 재정 기반과 관련, 마약 거래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그들은 강력 부인하고 있다.

AA는 대원층도 광범위하다. 일례로 2007년 미얀마 승려들의 반독재 시위, 이른바 ‘샤프란 혁명’ 당시 라카인주 시트웨에서 집회를 조직했던 승려는 기자와 만난 2013년 말 대위 계급을 달고 있었다. AA 신병 캠프엔 태국 남부 얄라 지방 목공소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포함, 갓 입대한 신참들이 바글거렸다. 옥광산으로 유명한 카친주의 파칸에서 ‘국내 이주노동자’로 일하던 한 여성 대원은 여군들의 훈련 교관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모두들 스스로 AA 대원임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치타공 일대에 거주하는 ‘방글라데시 라카인족’도 AA에 참여하고 있다. 2014년 기자가 방글라데시 국경에서 취재한 ‘AA 방글라데시 에이전트’의 말은 이랬다. “라카인족에겐 국경이 없다. 어느 나라에 속해 있든 우린 한민족이다”.

라카인주는 역사적으로 저항 전통과 민족주의 성향이 대단히 강한 지역이다. 공산주의 반군, 민족주의 반군 등 다양한 이념의 크고 작은 단체들이 등장과 소멸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과거 ‘아라칸’ 이름을 내건 단체들의 경우 주류 버마족, 군부독재 등에 대한 저항에 초점을 두며 라카인주 내의 세밀한 차이를 묻어 뒀다면, 이런 경향에 변화가 온건 1988년 항쟁 이후로 분석된다. 예컨대 80년대 중반만 해도 소수민족단체연합체에는 ‘아라칸 지역 출신’ 대원으로 로힝야 멤버가 포함됐다. 그러나 ‘88년 항쟁’ 이후 90년대로 넘어가면서 아라칸 출신은 라카인족으로 제한됐다. 88년 손을 잡고 거리에서 군부에 함께 항의하던 라카인족과 로힝야족은 전국적 시민항쟁 이후 가속화한 군사정부의 분열 정책으로 종족주의, 나아가 인종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치명적 한계를 노출했다. 현재 AA는 그 차이가 선명한 조직 중 하나다. 예컨대 현재 대변인 노릇을 하는 카잉 투 카는 아라칸해방당(ALP) 사무총장 출신으로 2014년쯤 AA로 이적한 경우인데, ALP 시절부터 ‘안티 로힝야’ 레토릭을 노골적으로 내뱉던 인물이다. 지난 8일 ‘이라와디’ 보도가 인용한 그의 말은 이를 재확인시켜 줬다. “미얀마 정부가 평화에 신실하다면 AA의 작전 지역에 휴전을 선포해야 한다. 단, (로힝야 반군인) 로힝야구원군(ARSA) 활동 구역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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