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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시에 판소리를 입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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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시에 판소리를 입히면?

입력
2019.01.11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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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의 신창극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시'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 우리 장단을 입혀 시 자체를 창극으로 만드는 실험에 나선다. 국립극장 제공
국립창극단의 신창극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시'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 우리 장단을 입혀 시 자체를 창극으로 만드는 실험에 나선다. 국립극장 제공

“꼭 소설이나 희곡의 드라마 구성으로 이뤄져야만 창극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특히 시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의 정수죠. 시를 연극으로 가지고 올 생각은 없었는데, 창극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는 바로 시와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어요.”

판소리를 기반으로 20세기 서양극의 형식을 더해 탄생한 음악극인 창극은 시대 흐름에 맞춰 끊임 없이 진화 중이다. 이번엔 ‘시’다. 박지혜 연출가가 시에 장단을 입혀 이를 창극으로 변모시키는 실험에 나섰다. 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3 ‘시’ 기자간담회에서 박 연출가는 “소리를 하는 예술가로서 창극 배우가 가진 특별한 재능과 매력을 관객에게 보여주기에 시가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네루다 시에 장단 입혀 우리 창극으로 

시와 판소리는 절묘하게 들어 맞는다. 판소리 사설에도 운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는 이러한 언어적ㆍ음악적 감각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창극이 될 전망이다. 서사를 걷어내고 소리꾼인 배우 자체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무대에 올려지는 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작품들이다.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등으로 잘 알려진 네루다의 시 중에서도 10여편을 선택했다. 신창극 ‘시’는 시 ‘충만한 힘’으로 시작한다. 기승전결의 구조도 없고, 그렇다고 개별적인 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연결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다만 ‘탄생에서 소멸까지 삶이 피어났다가 사라지는 찰나’라는 일관적인 감각이 무대를 감싸고 있을 것으로 창작진은 기대했다.

국립창극단 단원 유태평양, 장서윤과 연극배우 양종욱, 양조아가 무대에 선다. 이들은 배우를 넘어서, 박 연출가, 작창 감독을 맡은 소리꾼 이자람 등과 함께 작품을 만든 공동창작자다. 네루다의 시를 바탕으로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시어를 골라 새로 시를 쓴다거나, 원작 시의 일부를 편집하는 등 방법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돌아온 방랑자’는 동명의 시를 편집해 8~9분 동안 진득하게 부르는 노래다. ‘안녕’은 네루다의 ‘작별들’에서 시어를 발췌해 만든 곡이다. 유태평양은 “현대에 사용하는 언어는 현대의 멜로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며 “전통적 시각에서는 ‘저게 판소리야?’ 싶을 수도 있지만 저는 소리꾼의 입에서 소리꾼 생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판소리라고 확신을 갖고 작업에 임했다”고 강조했다.

신창극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었던 '소녀가'. 프랑스 구전동화 '빨간동화'를 각색한 모노드라마 형태로 창극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국립창극단 제공
신창극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었던 '소녀가'. 프랑스 구전동화 '빨간동화'를 각색한 모노드라마 형태로 창극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국립창극단 제공

 ◇“젊은 소리꾼들에게 선물 되길” 

‘시’는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의 임기 내 마지막 작품이 될 전망이다. 김 예술감독은 2012년 부임 이래 창극의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신창극시리즈는 더 자유로운 스타일의 창극을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기획했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극이라는 전제는 같지만, 소재와 방식 등 작품의 모든 요소는 협업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손에 맡겼다. 김성녀 예술감독은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는 창극을 만들어보려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판소리는 선생님의 숨소리까지 똑같이 복제해야 하는 예술이에요. 하지만 창극은 이 시대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 어느 공연장르와 부딪혀도 살아남을 수 있는 창극을 위한 실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지난해 2월 이자람이 연출ㆍ극본ㆍ작창ㆍ작곡ㆍ음악감독까지 1인 5역을 맡은 ‘소녀가’가 신창극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올랐다. 프랑스 구전동화 ‘빨간망토’를 현대적인 창극으로 각색한 데다, 한 명의 이야기꾼이 등장하는 모노드라마 형식을 취해 창극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관객들로부터 앙코르 요청이 쇄도했다는 후문이다. 두 번째 작품이었던 ‘우주 소리’는 소재의 참신함을 내세웠다. 미국의 SF문학 거장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원작으로 김태형 연극연출가가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세 번째 작품인 ‘시’를 통해 김 예술감독은 “우리 창극 배우들도 자신의 것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데 한 몫을 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창극은 창극의 범위를 넓히는 하나의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긴 안목으로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이런 실험은 제가 젊은 창극인들에게 나름대로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18~26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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