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검찰에 출석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에서 대국민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장소 제공을 거부하면 정문 앞에서 입장 표명을 강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그가 대법원을 기자회견 장소로 택한 의도는 뻔하다. 전직 ‘사법부 수장’임을 강조해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사법 불신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마지막까지 신변 챙기기에 골몰하는 행태가 안쓰럽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이 “검찰 포토라인에서는 얘기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보면 ‘피의자 신분’으로 비치는 것을 모면해보려는 속셈도 있는 모양이다. 이명박,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들도 검찰청사 앞 포토라인에서 심경을 밝힌 마당에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검찰을 압박하고 나아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행태다.

양 대법원장은 사법 농단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돼 있다.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100여 차례나 이름을 올리며 주요 혐의의 공범으로 등장한다. 재판 거래와 법관 사찰이 그의 상고법원 추진을 위한 수단으로 권력 입맛에 맞게 동원된 사실이 법원행정처 문건과 관련자 진술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도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바 없고, 법관에 불이익을 준 적 없다”며 혐의를 부인해 왔다. 이제는 전례 없는 대법원 입장 발표라는 시위성 퍼포먼스라니 어이없다.

지금 법원은 사법 농단의 수렁에 빠져 만신창이가 됐다. 이 순간에도 판사들이 공정한 재판을 하고 있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국민들이 많다. 사법부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의 상당부분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있다. 그가 전직 대법원장으로서 자존심을 살리고 싶다면 진실을 밝혀야 한다. 국민과 후배 법관들에게 사과하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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