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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일 쌍둥이論

입력
2019.01.10 18:00
수정
2019.01.10 20: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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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인문학 강연 ‘빛은 한반도로부터’에 따르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유전적으로 70%가 일치한다. 한반도에서 집단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 일본에서 청동기 문화와 쌀농사가 꽃피었다. 일본으로의 집단 이주는 고조선이 연나라에 시달리기 시작한 2,300년 전쯤부터 시작됐다. 이때부터 일본 원주민인 조몬인(繩文人)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이주민들과의 혼혈을 반복하며 일본인의 뿌리가 형성됐다는 것이 정설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일본인 외모는 한국인, 조몬인과 유사하거나, 이들의 혼혈 형태로 나타난다.

□ 고구려의 남진 정책으로 한반도가 혼란했던 4세기 말부터 고구려ㆍ신라ㆍ백제ㆍ가야인이 다시 몰려들었다. 주로 이 시기에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도래인(渡來人)이라고 부른다. 특히 663년 금강 지역에서 나당(羅唐) 연합군 등 5개 국가가 맞붙은 백촌강 전투는 일본 역사를 바꿨다. 백제 부흥세력은 왜에 구원군을 요청했다. 왜는 대군 3만명과 400여척의 전함을 파견했으나 완패했다. 이 시기에 백제 장수와 귀족, 유민이 왜로 가면서 백제 문화도 대거 넘어갔다. 하지만 당시 백제가 왜를 지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 인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저서 ‘총, 균, 쇠’에서 일본인은 유전자와 두개골 형태뿐 아니라 외모까지 한국인과 매우 흡사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경우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피를 나누었으면서도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적의를 키워 왔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그들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와 같다.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는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고마운 조언이지만 현실은 반대다.

□ 유 전 청장은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 왜곡을 했고, 한국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을 무시한다”고 했다. 역사 갈등의 골이 깊다는 얘기다. 역대 대통령들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독도나 위안부 문제 등이 터지면 늘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이번에는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다.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압류 신청이 우리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면서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일본이 한일청구권협정 3조에 따른 외교적 협의를 요청했다니, 1965년으로 회귀한 셈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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