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06)] 겨울 산행, 무모한 도전은 금물입니다! 
한라산 영실 코스 병풍바위 부근. 흐린 날씨에도 절경은 감춰지지 않는다.

40도 물에 몸을 녹이고 있을 때, 볼 빨간 50대 어머니가 어깨를 움츠리며 들어왔다. “어제 백록담 보고 왔어. 성판악으로 해서. 9시간 걸리더구만.” 동네 목욕탕의 특성상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툭툭 던진 말이었다. 대단하다는 존경심과 함께, 탕 안의 주민들 모두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으로 한라산을 지목하는 분위기였다.

늘 동경하지만 항상 먼 그대, 한라산. 그 곁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던 나도 결국, 1월 1일 한라산에 갔다. 영실 코스에서 현기증으로 두 번이나 주저앉는 긴급 사태를 맞이하면서. 백록담은 보지 못했으니, 그 파노라마 설경이 최고라 자부하며 마음의 수첩에 새기고 있다. 그리고 미리 밝혀 둔다. 철저한 준비 없이 겨울 산행에 나서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임을.

12월 31일, 2018년을 보내려는 이들이 우리 집에 모였다. 개중엔 1년에 단 한 번, 새해 첫날만 ‘야간 개장’하는 한라산 일출 산행을 놓친 이도 있었다. 불운은 그날도 이어졌다. 기상 여건 상 한라산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없게 되자, 그는 새해 첫 산행이란 차선책을 택했다. 그 자리에 있던 나도 얼떨결에 편승하기로 했다. 제주를 사랑했던 육지 사람으로서, 이제는 제주도민으로서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했던 한라산을 새해에 영접하는 일이다. 의지도 명분도 충분했다. 1월 1일 평지에선 눈발이 가늘게 날리다가 비가 뿌려지는 이상한 날씨가 계속됐다.

한라산으로 가는 길은 가히 새하얀 세상이었다. 우리로 인해 세상이 변한다는 알량한 호기로 충만했다. 소나무에 털썩 내려앉은 눈덩이와 잔가지에 아로새겨진 눈꽃의 리듬 속에서, 우리의 키도 참 작아졌다. 동행한 두 장정은 1년에 쓸 ‘예쁘다’와 ‘아름답다’란 감탄을 다 소진하는 듯했다. 사륜구동 차량으로 달리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1100고지를 지나자 영실 탐방안내소를 향하는 꼬부랑 도로가 나왔다. 빨간 봉을 휘두르는 안전요원이 길을 막아 선다. 영실 탐방안내소까지 1km는 족히 남은 지점이었다. 그리고 엄포를 내렸다. “휴게소에 정오까지 가지 못하면 등반 못해요.” 오전 11시 즈음이었다.

영실 코스의 시작. 앞과 뒤, 위와 아래 모두 눈의 전령이다.
얼어붙은 계단을 오르내리기 위해 아이젠은 필수다.

한라산 탐방로는 7개지만 백록담 정상으로 가는 길은 단 두 곳,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다. 영실 코스로는 백록담의 옆구리를 볼 수 있는 남벽 분기점까지 갈 수 있지만, 보통 1,700m 윗세오름을 정상으로 친다. 왕복 3시간 ‘밖’에 안 되는 쉬운 코스라고 들었다. 풍문이었나 보다. 산행이 끝난 후에야 ‘영실 코스는 숨이 껄떡대는 오르막길이 있어 성판악 코스가 낫다’는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출발부터 악조건이었다. 영실 탐방안내소 주차장을 약 1km 앞둔 노상에 주차했다. 주차장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휴게소까진 2.4km를 더 걸어야 한다. 더디게 걷는 일행 앞으로, 편도에 1만원한다는 택시가 능숙하게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택시비가 참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오랜만이다. 이제 휴게소에 왔을 뿐인데, 정상을 찍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위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좁고 가파른 계단은 두 칸씩 올라야 한다. 병풍바위 정상으로 가는 길, 마음은 혼란스러워진다.
오를수록 눈 옷은 두꺼워진다. 열을 맞춰 쌓인 듯 단단하기도 하다.
병풍바위 정상 후 베스트 포토존. 숲 속의 눈꽃 요정이 되긴 쉬운 일.
윗세오름에 가까워지는 길은 지워져 있다.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휴게소에서 유네스코 표시가 반기는 좁은 길로 진입하니, 적막하다. 산은 산인가 보다. 눈꽃이 아니라 눈 옷을 두텁게 껴입었다. 저질 체력을 확인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고받던 농담도 쑥 들어간다. 휴게소에서 고작 40분 걸었을 즈음, 병풍바위로 향하는 마성의 코스와 맞닥뜨렸다. 서로 다른 두 가지 포인트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새하얀 캔버스에 설경을 그리는 파노라마 풍경이, 무릎과 호흡을 농락하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그랬다.

보이지도 않는 병풍바위를 넘었다는 건 완만한 평지가 일러줬다. 눈꽃 터널이 나왔다.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그만 가자고 했다. 인생은 과정일 뿐이니, 꼭 정상을 갈 필요는 없다는 개똥철학을 설파했다. 한 사람은 여기서 윗세오름까지 딱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꼬셨다. 그 ‘10분’은 돌아가자는 볼멘소리가 나올 때마다 듣던 레퍼토리였다. ‘이왕 온 김에’ 또 속아봤다. 뒤꽁무니를 따라가는데 순식간에 흐릿해졌다. 바람을 막아주던 소나무가 사라지고 강풍이 엄습했다. 시야가 뿌옇다. 안개와 구름이 뒤덮고, 바람은 춤춘다. 바로 앞 사람의 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고독은 때론 공포를 유발한다. 일행을 확인하고 싶지만 도무지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좁쌀만한 싸라기눈이 당해보라는 듯 뺨을 때린다. 노루샘을 지나 나아가니, 드디어 ‘1700m 윗세오름’이란 비석이 보였다. 바람을 피해 들어간 대피소에선 컵라면 냄새가 위장을 괴롭혔다. 윗세오름 매점은 전면 폐쇄됐다(는 소식을 하산 후 알았다). 철저하게 준비한 등반객들은 허리를 구부리며 후루룩 면발 소리를 냈다. 국물 한 모금을 구걸하는 상상을 했다.

평소 지양하던 기념사진을 찍었다. 새해의 첫 생색.
한라산 등산로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아름다웠다. 쉽게 주지 않는 산이다.

“할 수 있어!” 일행의 구호와 달리 하행 길의 눈바람은 ‘주저앉혀야 한다’는 의지처럼 거셌다. 그리고 나, 주저앉았다. 윗세오름 정상에서 내려가는 그 절경의 계단에서 현기증이 강타했다. 중력이 카메라를 들려는 손까지 끌어당기는 강한 힘을 발휘했다. 설경처럼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떨구는데 스낵 바가 쑥 들어왔다. 하행하던 낯선 등산객이 건넨 선물이다. 스낵 바를 씹으며 일어나 두 걸음을 옮기고 털썩, 다시 주저앉았다. 일행 중 하나는 119를 부르려고 휴대폰을 꺼냈고, 또 다른 등산객은 초콜릿과 귤을 포함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주었다. 당분을 채우고 긴 호흡을 했다. 방패막이 없는 그곳에서 믿을 건 내 몸뚱어리뿐이었다. 제법 정신을 차렸을 때, 빠르게 하행했다. 멈추면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다급함에 속력을 냈다. 손과 발은 감각을 상실하고 있었다.

한동안 한라산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람이란 워낙 간사하여 일주일이 지나니 한라산을 바라본다. 화북동의 거로마을에 사는 한 노인은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고내리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했었지.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그저 ‘윗세오름 그 너머’를 기약하는 마음이 생겼다. 다음은 백록담이다. 단, 날이 포근하고 꽃봉오리가 한창 예쁘게 맺히는 날에 기어이 오를 것이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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