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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블록버스터 몰락… 한국영화 경고등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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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블록버스터 몰락… 한국영화 경고등 울렸다

입력
2019.01.10 04:40
수정
2019.01.10 11: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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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비 100억원대 대작 15편 중 

 ‘신과 함께2’ ‘공작’ ‘독전’ 등 

 3편만 극장서 제작비 회수해 

 한국영화 점유율도 떨어져 

총제작비 160억원 가량이 들어간 겨울 기대작 ‘마약왕’의 흥행 부진은 충무로에 큰 충격을 안겼다. 쇼박스 제공
총제작비 160억원 가량이 들어간 겨울 기대작 ‘마약왕’의 흥행 부진은 충무로에 큰 충격을 안겼다. 쇼박스 제공

“신작 영화 A와 B가 극장가에서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답은 ‘보헤미안 랩소디’다.”

최근 영화계에서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웃으라고 하는 얘기이지만 마냥 웃어 넘기기 어렵다.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A와 B 항목에는 ‘마약왕’과 ‘스윙키즈’ ‘PMC: 더 벙커’ 등을 대입할 수 있다. 지난 12월 말에 개봉해 한창 관객을 쓸어 담고 있어야 할 이 영화들은 흥행 동력을 잃고 박스오피스에서 표류하고 있다.

‘PMC: 더 벙커’와 ‘스윙키즈’의 일일 흥행 순위는 8일 기준 각각 4위와 6위. 개봉 두 달이 훨씬 넘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보다 앞선 3위다. 심지어 ‘마약왕’은 15위로 경쟁 구도에서 아예 탈락했다. 이들 세 영화의 누적 관객수도 각각 150만~180만명 수준으로 고만고만하다. 2019년 새해 첫 1,000만 영화 타이틀 또한 8일까지 966만명을 불러모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차지할 공산이 크다. 한국 영화엔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총제작비 167억원인 퓨전 사극 ‘창궐’은 조선판 좀비 영화로 관심을 모았으나 관객에게 외면당했다. NEW 제공
총제작비 167억원인 퓨전 사극 ‘창궐’은 조선판 좀비 영화로 관심을 모았으나 관객에게 외면당했다. NEW 제공

단지 이번 겨울 극장가에만 해당하는 상황이 아니다. 2018년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지난해 총제작비 100억원 이상 투입된 대작 영화는 총 15편. 이번 겨울 개봉한 3편을 비롯해 ‘염력’(99만명) ‘인랑’(89만명) ‘물괴’(72만명) ‘7년의 밤’(52만명) ‘창궐’(159만명) ‘협상’(196만명) 등이다. 그 중 극장에서 제작비를 회수한 영화는 ‘신과 함께-인과 연’(1,227만)과 ‘독전’(506만명) ‘공작’(497만명) 등 3편뿐이다. 국내 극장 매출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려워지자 일부 배급사들은 해외 판권 매출과 VOD 매출까지 포함해서 손익분기점을 산출하는 꼼수까지 동원하고 있다.

블록버스터는 물량 공세와 스타 마케팅으로 흥행 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블록버스터의 몰락은 국내 영화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2018년 연간 박스오피스 10위권에 한국 영화는 ‘신과 함께-인과 연’ ‘안시성’ ‘공작’ ‘완벽한 타인’ 등 4편뿐이었다. 반면 2017년에는 ‘택시운전사’와 ‘신과 함께-죄와 벌’ 등 7편이나 올라 있었다. 시장 점유율도 당연히 떨어졌다. 지난해 한국 영화 점유율은 50.9%로, 연간 관객 2억명 시대를 연 2013년(59.7%)에 비해 9%포인트 가량 낮다. 더 걱정스러운 건 2016년(53.7%)부터 매해 한국 영화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영화 전문가들은 “2018년은 한국 영화 산업의 총체적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해”라고 입을 모은다. 과거에 성공한 블록버스터 전략만을 답습하며 규모를 키우는 데만 골몰한 안일한 기획이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대작 영화들의 전략은 비슷했다. 장르는 사극과 범죄액션물에 편중됐고, 유명 배우와 감독을 내세운 스타 마케팅도 심화됐다. 콘텐츠마저도 과거 성공 사례에 기댔다. 한국형 좀비 영화 ‘부산행’(2016)을 성공시킨 배급사 NEW는 조선판 좀비 영화인 ‘창궐’을 내놓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일례로 ‘물괴’와 ‘창궐’은 소재만 물괴와 좀비라는 차이가 있었을 뿐 캐릭터 구성과 플롯은 비슷했다”며 “시각효과에 치중해 볼거리는 화려해졌을지 몰라도 콘텐츠 면에서는 도전적인 아이디어나 참신한 시나리오가 많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윤 평론가는 “대작 영화의 시나리오 전략이 반복되다 보니 영화적 쾌감도 천편일률적이었다”며 “영화계가 관객의 냉정한 평가를 되새겨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여름과 겨울, 설날과 추석 등 특정 시기에 대작 영화가 몰린 과당경쟁도 또 다른 이유로 거론된다. 지난해 추석 연휴의 경우 ‘물괴’ ‘명당’ ‘협상’ ‘안시성’ 등 한국 영화 4편이 동시에 쏟아지면서 결국엔 공멸했다. 이번 겨울 극장가도 추석과 판박이 국면이다. 한 중견 제작자는 “고예산 영화는 그만큼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시장이 확 커지는 특정 시기에 개봉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며 “‘제살 깎아먹기’인 걸 알면서도 그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제작자는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와 ‘완벽한 타인’ 등이 비수기 시장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며 “충무로가 머리를 맞대고 제작 및 배급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완벽한 타인’은 독특한 아이디어를 앞세워 알짜 흥행을 일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완벽한 타인’은 독특한 아이디어를 앞세워 알짜 흥행을 일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블록버스터의 참패에도 지난해 전체 관객은 2억명을 또다시 돌파했다. 한국 영화 점유율도 해외 영화에 앞섰다. 제작비 100억원 미만 ‘허리급’ 영화들이 선전한 덕분이다. ‘완벽한 타인’(529만명) ‘암수살인’(378만명) ‘국가부도의 날’(374만명) ‘그것만이 내 세상’(341만명) ‘마녀’(318만명) ‘탐정: 리턴즈’(315만명) ‘너의 결혼식’(282만명) ‘곤지암’(267만명) 등이 기대 이상으로 흥행하며 충무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장르도 코미디, 액션, 드라마, 공포, 로맨스 등 매우 다채로웠다.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충무로 블록버스터가 참고해야 할 요인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거대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환기하고 자본의 집중을 완화하는 등 한국 영화를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최근 한국 영화가 매우 다양해졌다는 사실이 긍정적인 전망을 가능케 한다”고 평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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