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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가 잊고 있는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

입력
2019.01.10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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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시민단체나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안에 대해 “그래서 대안이 뭐냐?”는 질문을 붙이곤 한다. 이런 질문은 해결책을 묻고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심정도 함께 포함돼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경우 “대안 없이 문제제기만 한다”며 타박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모든 문제에 ‘정답’에 가까운 해결책이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의 일이란 것이 그렇지 못하다. 결국 만들어진 대안이라는 것도 보통 약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핵발전소에서 나온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 핵연료)을 둘러싼 갈등이다. 고준위 핵폐기물은 사람을 즉사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물질이다. 높은 열과 방사선 때문에 최소 10만년 이상 생태계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핵발전소를 처음 개발할 당시에는 향후 처분 방법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구는 끝나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핀란드에 고준위 핵폐기장이 건설되고 있으나, 연구를 하면 할수록 새로운 쟁점이 나오고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는 기술적 쟁점만큼이나 사회적 쟁점도 크다. 핵발전소와 마찬가지로 핵폐기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핵발전소를 가동할수록 폐기물의 양은 늘어나는데, 이를 보관할 임시 저장소는 몇 년 이내에 포화될 예정이다. 추가로 임시 저장고를 건설하지 못한다면, 핵발전소 가동을 멈춰야 할 수도 있다. 이 치명적인 물질을 노상에 야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7년 영구 폐쇄된 고리 1호기를 보자. 해체 계획에 따라 고리 1호기의 원자로와 발전 설비뿐만 아니라 고준위 핵폐기물 임시 저장고(수조)도 해체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 임시 저장고에 저장돼 있던 고준위 핵폐기물을 옮길 곳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가동 중인 고리 2~4호기의 임시 저장고도 조만간 포화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고리 핵발전소 부지 안에 건식 저장고를 추가로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 이 건식 저장고의 수명은 50년 정도이다. 고리 2~4호기는 2025년까지 수명이 끝날 예정이기 때문에 7년 뒤 고리 1~4호기는 모두 폐쇄되지만, 추가로 건설될 임시 저장고는 2070년대까지 고리 핵발전소 부지 안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2070년대 이전에 고준위 핵폐기물을 옮길 수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신뢰는 낮고, 50년이란 세월은 ‘임시’라고 하기엔 너무나 긴 세월이어서 모든 핵발전소 소재 지역에서 임시 저장고 증설에 반대하고 있다. 최근 부산시의회가 정부와 국회에 제출한 건의문이 대표적이다. 부산시의회는 최종 처분장이 힘들다면, 중간 저장시설이라도 빨리 건설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임시 저장시설을 더 이상 늘리지 말고, 안전하게 저장할 시설이 없다면 차라리 핵발전소 가동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고준위 핵폐기물을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다른 장소로 옮길 것인가? 아니면 더 근본적으로 이런 골칫덩어리 핵폐기물을 계속 만들어 내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 같은 다양한 질문이 가능하다. 이 질문엔 모두 ‘정답’이 있기 보다는 전기를 사용하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이들 질문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핵발전을 시작했던 40여 년 전부터 있던 질문이다. 매일 전기를 쓰는 사람이면 한 번쯤 고민해 봤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간 이런 질문을 회피한 채 핵발전소가 위치한 지역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왔다. 그렇다고 새로운 지역을 찾는 것 역시 만만찮은 일이다. 이 오래되고 골치 아픈 문제를 정부가 올해부터 다시 논의한다고 한다. 이번엔 제대로 된 논의와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의 합의를 이뤘으면 한다. 설사 그것이 힘들다면, 핵발전소가 만들어낸 이 골치 아픈 문제의 존재에 대해서라도 온 국민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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