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전(現前ㆍpresence)은 하느님의 자족성과 완전성을 나타낸다. 하느님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겨났다. 현전이란 이처럼 신의 목소리가 곧바로 세계로 드러나는 것을 뜻한다. 실력 없는 엉터리 마술사는 ‘수리수리 마수리, 장미!’라고 외치면 손수건 속에서 비둘기가 나오고, 비둘기가 나오는 주문을 걸면 엉뚱하게 뱀이 튀어 나온다. 하지만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자기 선언을 했던 하느님에게는 결코 그런 실수가 없다. 오로지 하느님에게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파도와 바닷물을 구분할 수 없듯이, 현전이라는 개념에 따르면 하느님과 목소리는 서로 나눌 수 없다. 바로 그래서 현전은 하느님의 자족성과 완전성을 나타내주는 개념이다. 실로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하는 데는 목소리 이외에 아무 것도 활용한 것이 없다. 그러니까 방송 장비만 가지고 영업을 시작할 수 있는 유투버(Youtuber)처럼 하느님은 목소리만을 가졌다. 이 신통방통한 목소리는 어떤 거짓도 지체도 없으며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우주를 만드는 데는 ‘감 놔라, 배 놔라’라는 목소리만으로 충분했지만, 유독 인간인 아담을 만들 때는 하느님이 직접 흙을 주물렀다. 이거야말로 신의 현전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현전의 조건은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의 귀로 듣는 그 짧은 순간에, 다시 말해 말함(입)과 듣는 것(귀) 사이에 아무런 틈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현전이 가능하려면 발화 내용(말씀)은 물론이거니와, 제 입으로 쏟아낸 말이 제 귀에 들리는 촌음(寸陰)에 그 어떠한 불순물이나 왜곡이 끼어들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목소리는 자기를 듣는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저 말은 자크 데리다가 ‘목소리와 현상’(인간사랑, 2006)에서 서양의 음성중심주의와 형이상학의 토대를 갈파하기 위해 쓴 말로, 오로지 하느님만이 그러하다고 간주된다. 진짜 그럴까.

66권으로 이루어진 ‘성서’가 모순투성이의 진술로 가득하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도 못된다. 노예제도, 어린이 체벌, 남녀평등처럼 구체적인 사항에서부터, 사랑ㆍ공의ㆍ정의와 같은 커다란 주제에 이르기까지 ‘성서’는 서로 반대되는 말로 대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성서’에는 하느님이 하느님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논어’와 같은 동양의 경전이 ‘내 입으로 말하고, 내 귀로 듣는다’는 자세에 입각한 텍스트라면(그런 끝에 성인에 이르게 된다), ‘성서’는 말하는 하느님과 듣는 인간이 엄격히 구분된 텍스트다. 다시 말해 ‘성서’는 ‘내 말을, 너희가 들어야 한다’는 형식에 투철하다. 이런 ‘성서’의 구조는 ‘성서’를 먼저 읽은 자가 목자가 되어 아직 말씀을 접하지 못한 인간을 양떼 취급하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종교를 낳았다. 하지만 이것들은 이번 칼럼의 주제가 아니다. 현전이라는 우화로 우롱당해야 할 것은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니다.

인간은 여태껏 사랑ㆍ공의ㆍ정의를 논하면서 유토피아의 이상을 떠벌여왔지만, 세상은 말에 괘념치 않는다. 문제는 말의 값어치를 무시하는 세상이 아니다. 입과 귀 사이는 한 뼘도 채 되지 않는데, 내 입과 내 귀 보다 거리가 더 먼 것도 세상에 없다는 것. 내가 뇌까린 말이 내 귀에조차 제대로 도착하지 않는다는 것. 인간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하므로 세상에 대고 고함을 치고, 누구를 가르칠 게 아니다.

작년에 현전을 주제로 두 편의 시를 쓰고 발표했다. 인천시 연수구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해온 14세 소년의 추락사가 계기였다. 그 가운데 한 편인 ‘당신 홀로 옥상에서’는 “말해요, 말해봐요/ 마지막이 없어질 때까지/ 당신이 얼마나 많은 마지막을 만들었는지”라는 서두로 시작해서, “들어요, 들어봐요/ 당신이 마지막인 세계에서/ 당신의 말을 당신이 들어봐요”라는 세 행으로 끝난다. 이제는 추모도 위선이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인간인 양, 나 홀로 옥상에 올라가서 내가 한 말을 내 귀로 들어 보고 싶다. 현전을 이뤄보고 싶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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