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아침을 열며] 평화 되돌릴 수 없는 김정은

입력
2019.01.09 04:40
31면
0 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신년사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두 번째 만남이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올 한 해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상서로운 기운으로 출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했고 문재인 대통령과 세 차례나 만나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을 반전시켰다. 예상과 달리 솔직하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그가 소위 통일전선전술이라는 위장 평화 전략을 사용하는 공산주의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경계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내가 반공교육에 익숙한 탓도 있겠지만 언제라도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그고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공포와 철권으로 통치할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이런 나의 의구심과 불안함을 잠재우게 하는 지표가 있다.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외화 통용 현상)이다. 달러라이제이션은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가 하락해 외국 화폐가 대신 사용되는 현상으로, 북한은 그 정도가 대단히 높은 나라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통화 대체를 기준으로 약 64%, 자산 대체까지 고려하면 90%가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 사람들은 일상의 거래에서 달러로 받는 것을 좋아하고, 예금은 반드시 달러로만 한다는 의미다. 특이하게도 북한에서는 달러뿐만 아니라 위안화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중국과 거래가 빈번한 국경지역에서는 위안화가 대세이고, 평양 등 중심 지역에서는 달러가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이 급속도로 탄력을 받은 것은 김 위원장이 추진한 2009년 화폐개혁의 실패 때문이다. 북한은 비공식 시장인 장마당을 통해 새롭게 부를 축적한 주민들에게서 돈을 끌어낼 목적으로 화폐개혁을 추진했다. 정권의 의도와 달리 북한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정권이 망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으로 몰리자 당시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주모자로 몰아 숙청하고 막을 내렸다. 이후 주민들은 북한 돈은 거들떠보지 않고 오로지 달러나 위안화만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남한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우리의 원화까지 끼어들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북한 정권이 돈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처럼 밀수출을 통해 달러를 조달할 방법도 대북 제재로 막혀 있고 국내적으로도 비공식적이지만 주력 시장으로 자리 잡은 장마당 거래에서 세금을 거두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마당이라는 시장경제의 확산으로 주민들은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삶도 나아졌다. 반면 정부는 화폐개혁 사태의 경험으로 주민의 사유재산권은 침해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됐다. 한걸음 더 나아가 돈 버는 재미를 들인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유지하려면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경제를 발전시켜야만 한다는 것이 김 위원장이 당면한 현실이 됐다. 돈이 없어 과거처럼 정부나 군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어찌 보면 이미 경제적 측면에서는 북한 주민에 대한 통제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서양의 중세가 약 오백년간의 암흑기를 끝낸 것은 시장에서 부를 축적한 시민계급의 등장에서 비롯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제 김 위원장의 선택은 미국이나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투자를 유치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방법 외에는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북한을 잘살게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북한도 잘 알기 때문이다.

2019년은 대한민국이 평화와 통일을 향해 한 발짝 더 내딛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불신과 불안감을 우리부터 내려놓으면, 미국도 설득할 수 있고, 미래지향적 남북관계를 만들 역량과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북한 내부의 경제 문제 때문에라도 대한민국과 미국을 향해서 걸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대행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