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 <7> 김제 유일 항구 심포항과 새만금바람길
김제 진봉면 망해사의 낮은 담장 아래로 만경강과 갈대밭이 내려다보인다. 망해사 뒤편 전망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평선과 지평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김제=최흥수기자

‘발길을 재촉해 사막처럼 변한 갯벌을 걸어 들어갔다. 차들이 들어간 자국이 선명했다. 앙상하게 죽은 채 갈색으로 변한 염생식물 군락지 사이를 지나자, 떠내려 온 어선이 놓여 있었다. 갯벌엔 마도요가 그랬는지 부리로 구멍을 뚫어 놓은 자국이 보였다.’ 환경운동가 주용기씨가 기록한 2008년 2월 김제 심포항 주변 갯벌 풍경이다. 11년이 흐른 지금 심포항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질펀하던 만경강 하구엔 갈대 숲만 무성

만경강과 동진강이 서해로 흘러 드는 끝자락, 심포항은 전북 김제의 유일한 항구다. 그러나 강은 더 이상 바다와 만나지 못하고 새만금방조제에 막힌 거대한 호수에서 흐름을 마감한다. 방조제 공사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이지만, 새만금을 언급할 때 김제는 늘 뒷전이었다. 길이 33.9km에 달하는 방조제의 시작과 끝이 부안과 군산이기 때문이다.

망해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심포항과 새만금방조제에 갇힌 호수. 방조제 끝자락에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걸려 있다.
김제 유일한 포구 심포항에 소형 어선이 정박해 있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조업하는 날이 드물다.
심포리의 횟집. 예전처럼 조개를 재료로 한 메뉴가 많지만 현재 어패류는 대부분 인근 부안에서 가져 온다.
심포마을 도로변 담장은 페인트로 깔끔하게 단장했지만 옛날의 활력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진봉반도로 불리는 심포항 주변은 물이 들 때는 끝없는 바다였고, 물이 빠질 때는 드넓은 갯벌이었다. 바다와 만나는 강어귀는 풍성한 어장이었고, 만경강과 동진강이 부려놓은 질펀한 갯벌은 온갖 어패류와 조류가 서식하는, 생명이 펄떡거리는 땅이었다. 심포항은 조개의 집산지였다. 일대에서 잡은 조개는 심포항에 모여 전국 각지로 팔려 나갔다. 포구 주변 조개구이 식당과 횟집은 활기로 넘쳤지만, 이제 모두 옛말이 되고 말았다. 겉보기에 심포항은 여전히 번듯하다. 횟집도 여전하고 포구에 정박한 고깃배의 풍경도 평화롭다.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도 넓고, 해변 공원도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인근 마을의 도로변 담장은 산뜻한 벽화로 장식했다. 그러나 더 이상 물고기와 조개가 잡히지 않는 ‘깊은 개’ 심포항에서 생기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몇 척 되지 않는 고깃배도 쉬는 날이 더 많다.

심포항에 하나 있는 슈퍼마켓에서 낮술을 기울이던 한 주민은 “새만금 공사가 다 끝나면 바닷물을 틀 거니까 고기가 다시 돌아 오겠지”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인근 식당 주인도 요즘은 찾아오는 외지인이 거의 없다면서도 심포항이 마리나항으로 계획돼 있어 언젠가는 관광객으로 붐빌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진봉반도 끝자락 만경강 하구 갯벌은 드넓은 갈대밭으로 변했다.
속살까지 파고 드는 저녁놀이 따스하다.
한편에선 호남고속도로 서전주IC와 연결하는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새만금방조제 호숫가에는 이미 전망타워가 세워졌다. 아직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진봉반도 끝자락 거전마을로 향했다. 갯벌의 흔적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일찌감치 내려 놓았지만, 이곳이 정말 바다이고 갯벌이던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갈대만 무성하다. 눈 닿는 끝까지 펼쳐진 갈대밭에선 조개껍데기 하나 찾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실핏줄처럼 물 골을 형성하던 갯벌은 온데간데 없고, 대신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새만금방조제 너머 변산반도와 고군산군도의 산봉우리가 잘 보이는 곳에는 이미 높은 전망타워가 삐죽 솟았다. 번듯한 통유리 건물도 간간이 눈에 띈다. 드넓은 갈대밭도 끝내 빌딩숲으로 변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생명의 터전을 잃은 절망과 새로운 꿈에 부푼 욕망이 뒤섞인 갯마을은 그렇게 변해 가고 있었다. 갈대밭에 무심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눈이 부실 지경이고, 비스듬하게 파고 드는 저녁 노을은 한없이 푸근하고 부드럽다.

◇새창이다리에서 망해사까지, 새만금바람길

진봉면사무소에서 거전마을까지 약 10km 구간에는 ‘새만금바람길’이라는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만경강 제방과 야트막한 산자락에 옹기종기 형성된 작은 마을을 연결하는 걷기 길이다.

만경강 새창이다리 아래로 어선 한 척이 지나고 있다. 1주일 만에 나서는 조업이다.
새창이다리는 일제강점기에 만경평야의 곡물을 군산으로 실어내기 위해 만들었다.
새창이다리에서 본 일몰 풍경. 청하대교가 지평선처럼 걸린다.
새창이다리 아래, 저녁 노을이 물든 만경강에 어선 한 척이 정박해 있다.

그러나 만경강을 따라가는 산책로는 그보다 상류인 ‘새창이다리’에서 시작한다. 군산 대야면과 김제 청하면을 연결한 새창이다리(옛 만경대교)는 1933년 일제강점기에 준공한 콘크리트 교량이다. 만경강 일대 넓은 평야에서 수확한 쌀을 군산으로 실어 내기 위해 만들었다. ‘새창이’는 새로 만든 창고(新倉)라는 의미다. 1988년 바로 위에 새 만경대교가 들어선 후 새창이다리는 차가 다니지 않는 인도교로 역할이 축소됐다. 그 바람에 낚시꾼들이 몰리는 명당이 됐지만,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끝난 후에는 이마저도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새창이다리 아래 만경강은 망뚱어, 실뱀장어, 숭어 등이 곧잘 잡히는 곳이었다. 눈만 돌리면 국내 최대 곡창인 만경평야인데, 강변마을에 어업이 번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다리 바로 옆 ‘전북 연안어업인협의회’ 사무실 간판은 빛이 바랜 지 오래고, 강변에는 작은 고깃배 두 척만이 ‘포구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일주일 만에 강으로 나왔다는 어부의 그물에는 물고기가 주렁주렁 걸려 올라왔다. 하지만 잡으려는 숭어는 없고 요즘엔 붕어만 걸린다며 그리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화포리 제방 부근의 노을 전망대.
화포리 노을전망대에서 본 낙조 풍경.

갈대밭은 이곳부터 강 하류로 끝없이 이어진다. 제방 도로를 따라 약 4km 아래 만경읍 화포리 강변에 이르면 미완의 노을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펑퍼짐한 곡선 둔덕에 팔각정과 낙조를 담을 프레임을 설치했다. ‘서해가 밀려들면 / 소금기 배인 몸이 쓰려 / 강물이 우는 저녁에 / 노을아 / 내 여인아’ 안도현 시인의 ‘만경강 노을’ 시비도 함께 있다. 다만 짧은 겨울 해는 강까지 닿지 못한 채 지평선으로 떨어지고, 강줄기는 무성한 갈대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서해 짠물이 올라오지 못한 지도 오래됐다.

노을 전망대 인근에는 조앙사와 성모암이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망해사를 중건한 진묵(震默ㆍ1562~1633)대사 출생지와 어머니 묘소 자리에 세운 절이어서, 불교 사찰이라기보다 민간신앙 사당의 분위기가 짙다. 바다를 바라보는 절, 망해사(望海寺)는 진봉면 심포리 강변 언덕에 있다. 삼국시대에 창건했지만 조선시대 들어 숭유억불 정책으로 폐허가 된 것을 진묵대사가 되살렸다고 전한다.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사찰이지만 전각이라고는 극락전과 낙서전, 요사채가 전부다. 큰 사찰에 댈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하지만 망해사의 풍경은 그 어느 곳보다 넓다. 마당 앞 담장은 그 넓은 풍경을 조망하기 좋게 일부러 낮게 만들었다. 바로 앞으로 갈대밭에 묻혔던 만경강이 드디어 굵직한 물줄기를 드러내고, 그 끝자락으로 서해 바다(지금은 새만금방조제에 막힌 호수)가 끝없이 이어진다.

망해사는 사찰의 규모에 비해 풍경이 한없이 넓다.
만해사 전망대에서 본 만경평야. 수평선과 지평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망해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만경강 하구. 강은 바다에 닿지 못하고 새만금방조제에서 흐름을 마감한다.

사찰 뒤편 전망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해의 수평선과 만경평야의 지평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더 이상 항구의 구실을 못하는 심포항의 한적한 모습도 보인다. ‘바다를 잃어버린 절 / 망해사 / 바다가 없어도 노을이 곱다’ 새창이다리에 걸어놓은 ‘망해사’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바다를 잃어버리기는 만경강도 마찬가지인데, 강줄기와 갈대밭에 부서지는 황금빛 노을이 찬란하다. 차마 아름답다고만 할 수 없는 풍경이다.

김제=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이프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