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가배, 불란서 양장,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나의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지난해 구한말 의병 이야기로 큰 인기를 끌었던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이다. 최고 명문가의 애기씨가 차가운 총구에서 낭만을 즐긴 사연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보다는 ‘노블리스 매판매국’에 더 익숙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독립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자던 고애신의 작별인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따뜻한 가배 대신 차가운 총구를 들어야만 했던 선조들의 낭만은 기미년에 폭발했다.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맞서 비폭력 만세운동으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3월의 전민항쟁은 우리 역사에서도 세계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다. 그 힘을 바탕으로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기미년 4월11일 반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새로운 나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임을 선언하고 있다. 왕조의 권력을 무력으로 찬탈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였으나, 왕조 자체를 공식적으로 폐기한 것은 이 땅의 인민대중이었다. 한민족 5,000년의 역사에서 최초의 민주공화국이 그렇게 태어났다. 이런 까닭에 나는 100년 전의 기미혁명이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현행 헌법 전문에 3ㆍ1운동과 임시정부가 명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미년의 평화적인 전민항쟁과 새로운 정부수립이라는 과정은 최근에 우리가 겪었던 정치격변과 많이 닮았다. 성공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시대의 당위와 역사의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떨쳐나섰던 기미혁명의 정신도 후대에 그대로 이어졌다. 4ㆍ19 혁명이 그랬고, 80년 광주가 그랬고, 87년의 6월 항쟁이 그랬다. 지난 시절 우리는 이렇게 촛불 하나로 적폐정권을 몰아낼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높게 보고 한겨울의 광장에 나섰던 게 아니었다. 여의도에서, 청와대에서, 언론에서 비관적인 뉴스가 쏟아지고 장벽이 하나씩 더 앞길을 가로막을 때마다 우리는 차가운 북풍에 온몸으로 맞서며 맨손으로 길을 뚫었다. 그 길이 쉬워보였거나 가능성이 높아 보여서가 아니라 그 길이 옳은 길이기 때문이었다. 시대의 부름에 화답하고 역사의 정의를 세우기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100년 전 선조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던 그 길에서 다시 한 번 우리는 평화적인 비폭력 촛불로 세상을 뒤집었고 정권을 바꾸었다.

어떤 이들에겐 기미혁명 100년의 전통과 진실이 불편할 것이다. 민족반역자들이 다시 득세하고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 군인이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던 신문이 아직도 떵떵거리는 현실은 혁명의 추억을 지우고 싶어 한다. 불행히도 혁명의 유산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남들은 수백 년 걸린 민주화를 우리는 수십 년 만에 완수했다고는 하지만, 지난 100년의 추억을 돌아보면 우리는 지금도 민주주의를 내면화하는 과정 속에 있음이 분명하다. 최근 십여 년의 경험은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지난 100년의 역사는 그 이전 500년 왕조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아직은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라고 외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소리가 새삼 귓가를 울린다. 그 600년의 역사를 유지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무현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만들려고 했고 임기가 끝난 다음에도 추악한 공작을 멈추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이 역사의 반동에 의한 타살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그때 그렇게 재미를 본 사람들이 십여 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한 번 반동의 수레를 돌리려 하고 있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갈등은 단지 몇몇 이슈에 대한 정책적 옳고 그름이나 어느 한 정권의 유무능을 둘러싼 소란이 아니다.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역사의 배경과 추구하는 미래들 사이의 격돌이다.

100년 전의 세상이 모든 면에서 전환의 시대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도 큰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른바 87년 체제 및 그와 함께 했던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는 이미 역사적인 소임을 다했다. 동북아의 냉전은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고 새로운 기술혁명의 물결이 코앞까지 들이치고 있다. 식민지 조국의 비참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역사의 정방향을 직시하며 대담한 한 걸음을 내디뎠던 선조들의 지혜와 용기를 다시 한 번 돌아볼 때다.

신문에서 작금을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AI, 사물인터넷, 각종 바이오 기술들...... 물리학을 연구하는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나의 혁명은 칼럼을 써 내려가는 한국제 펜촉 아래 있을 뿐이오. 기미혁명 100주년의 조국에서 씨 유 어게인.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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