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강자(季康子)는 공자가 살았을 당시 그의 고국 노(魯)나라의 국정을 좌우하던 대부(大夫)였다. 당시에는 재상을 대부라고 불렀다. 공자는 그에 대해 기본적으로 비판적이었다. 공실(公室ㆍ왕실)을 무력하게 만든 삼가(三家) 중에서도 가장 권력이 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라의 칼자루가 공실에서 떠난 것이 5대째이고 정사가 대부에게로 넘어간지 4대째다. 그러므로 저 삼가의 자손이 미미한 것이다.”

공자가 계강자를 얼마나 혐오했는지는 ‘논어(論語)’ 선진편에 실린 공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봐도 알 수 있다. 계강자가 노나라를 만든 주공(周公)보다 더 부유한데도 염유(冉有)가 그를 위해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여 재산을 더 늘려 주자 공자가 말했다.

"우리 무리가 아니니, 제자들아! 북을 울려 다스리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이는 제자 염유가 계강자의 가신이 돼 세금을 더 악착같이 거둬 주자 사실상 파문을 선언하는 장면이다. 북을 울려 다스린다는 것은 일종의 군법회의에 회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논어(論語)’에는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하는 법을 묻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2019년 대한민국’을 염두에 두면 그중에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문답 몇 장면만 가져와 본다. 위정편이다.

계강자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윗사람을 공경하고(敬) 나라와 군주에 충성을 다하도록(忠) 권면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말했다. “백성을 대할 때 정령(政令)을 경솔하거나 거만하게 내리지 않으면 공경하게 되고, 스스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면 백성들은 나라(군주)에 충성하게 되며, 유능한 자를 공직에 쓰고 능력이 없는 자는 교화를 통해 일깨운다면 절로 경충(敬忠)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적재적소에 뛰어난 인물만 써도 백성들은 경충(敬忠) 모두에 힘을 다한다는 말이다.

헌문편에서는 위(衛)나라 영공(靈公)이라는 인물이 무도(無道)했다고 공자가 비평하자 계강자가 ”그런데도 어찌 임금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는가?“라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대한 공자의 답이다.

“중숙어가 빈객을 다스리는 외교를 맡아 잘 하고 있고 축타는 종묘를 맡아 잘 하고 있고 왕손가는 군대를 맡아 잘 다스리고 있으니 무릇 사정이 이러한데 어찌 그 임금 자리를 잃겠습니까?”

영공은 적재적소에 인물을 잘 썼기에 개인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임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데 계강자 당신은 어째서 인물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가라는 반문인 셈이다. 안연편에는 보다 센 문답이 연이어 나온다. 먼저 계강자가 정치에 관해 묻자 공자는 유명한 답을 한다.

“바로잡는 것(正)입니다. 대부께서 바로잡는 것으로 통치를 한다면 감히 누가 바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어서 계강자가 도둑이 많은 것을 걱정해 대책을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진실로 대부께서 백성들의 도적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 설사 그들에게 상을 주면서 도둑질을 하라고 해도 결코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일 무도한 자를 죽여 없애 나라가 도리가 있는 데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대부여! 정치를 하면서 어찌 죽임을 쓸 수 있겠습니까? 대부께서 선하고자 한다면 자연스레 백성들이 선해질 것이니,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입니다. 풀에 (죽임과 같은) 거센 바람이 가해지면 풀은 반드시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어떤 바람에 어느 쪽으로 쓰러지고 있는지 묻게 되는 요즘이다. 이틀 후에 있을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이와 관련된 궁금증들이 절반만이라도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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