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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Human Be-In(1.14)

입력
2019.01.14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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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오늘의 '휴먼 비 인' 행사. 중앙의 흰 옷 입은 이가 티모시 리어리다. AP 자료사진
1967년 오늘의 '휴먼 비 인' 행사. 중앙의 흰 옷 입은 이가 티모시 리어리다. AP 자료사진

1960년대를 히피의 시대라고 한다면, ‘휴먼 비-인(Human Be-In)’은 그 시대의 개막식이라 할 만한 행사였다. 히피들의 산발적 모임은 그 전부터 꽤나 빈번히 열리곤 했지만, 그래서 반문화(counterculture)의 돌풍이 일곤 했지만, 1967년 1월 14일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파크에서 열린 ‘휴먼 비-인(Human Be-In)’은 기존 모임의 규모를 최소 5배 이상 압도한 반문화의 태풍이었다.

행사장에 모인 3만여 청년들은 춤과 공연과 연설, 술과 음식과 LSD로 성대한 축제의 출정식을 가졌고, 연사 중 한 명이던 LSD의 구루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는 자신의 구호 “Tune in, Turn on, Drop out”을 연호했다. ‘주파수를 새로 맞춰, 더불어 즐기며, 모든 낡은 것들을 털어내자’는 의미쯤일 저 구호는, 기성 정치와 주류 문화, 자본주의적 가치에 대한 저항적 의미로, 다시 말해 히피시대와 청년문화의 한 선언으로 정착했다.

히피에 대한 노골적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내던 로널드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1967~75년 재임)에 취임한 직후였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LSD를 불법화한 것은 한 해 전인 1966년 10월이었고, 리어리는 수배 중이었다. 남부에선 차별 반대 시민권 운동이 한창이었고, 동부에서는 대학가 반전 운동이 불을 지피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은 전선을 연일 확대됐고, 징집 영장만큼 사망통지서도 쇄도하던 때였다. 행사장의 그들은 ‘평화와 사랑’을 외쳤다.

넉 달 뒤인 4월 부활절에는 뉴욕과 LA에서 비슷한 규모의 행사가 동시에 열렸고, 그 해 6월 히피의 거점이던 샌프란시스코 하이트 애쉬베리(Height-Ashbury)의 ‘사랑의 여름 (Summer of Love)’ 축제에는 무려 10만여 명이 참가했다.

휴먼 비-인은 남부의 인종차별-분리주의 반대운동 ‘Sit In’에서 따온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인류로서의 존재(Being)를 넘어 개입하자(be-in)는 적극적 의미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연사 중 한 명이자 비트-히피 세대의 상징적 가교로 꼽히는 시인 앨런 긴즈버그는 그 행사를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마지막 히피 이벤트”라고 평했다. 그건 60년대가 저물어가면서 전투적 반전 평화운동과 고전적 히피운동이 분화한 것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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