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수고하지 말고 즐기는 새해
전도서의 첫 단어인 'divrei'(말씀들)을 히브리어로 적은 패널.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실연을 당하고 돌아서던 그 날. 온 세상이 아득해 지던 그 때만큼은 하늘도 같이 울어주면 안 됐을까. 이 우주는 죽을 것만 같은 당신의 마음에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 유독 푸르른 하늘과 지지배배 노래하는 새들 아래 지독한 소외감을 느낀다. 또 한 번의 낙방을 경험한 날,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웠다. 다음 날 만큼은 아침이 좀 늦게 오면 안됐을까. 어림도 없다. 당신 개인의 사정에는 조금도 요동하지 않는다. 억만 년 동안 해 오던 그대로 태양은 일초의 오차도 없이 제시간에 날을 밝히고, 당신을 이불 밖 세상에 다시 대면시킨다. 저 흐르는 강물은 수백 년간 자기에게 몸을 던진 그 가슴 아픈 사연을 알고 있지만, 마치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무심히 여전하다. 그러니 나 하나의 울부짖음 따위는 고스란히 묻어 흘려버릴 것이다. 내가 떠나면 뭔가 아쉬움이 오래도록 남아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 직장 그 단체 그 사회는 내가 없어도 오히려 더 잘 돌아간다. 생각보다 당신의 존재감은 전혀 없다.

지구의 나이만큼 같은 반복을 되풀이한 삼라만상 앞에서, 한 개인은 철저한 소외감과 허망함을 느낀다. 이 우주에는 그리 새롭고도 놀랄 것도 없다. 당신에게는 처음이고 전부이고 처절하겠지만, 이 우주에게는 권태로운 일상일 뿐. 그 하나가 나에게는 전부고 우주이지만, 이 우주에게 당신은 먼지보다도 작아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허무하다.

성경의 전도서도 대우주의 영원불변한 운행을 말하며 같은 허무를 논한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다. 해는 여전히 뜨고, 또 여전히 져서, 제자리로 돌아가며, 거기에서 다시 떠오른다.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도,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강물은 나온 곳으로 되돌아가, 거기에서 다시 흘러내린다. 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일어났던 일이 훗날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 세상에 새 것이란 없다. 지나간 세대는 잊혀지고, 앞으로 올 세대도 그 다음 세대가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전도서 1:4-11) 변화도 없고 기억도 없다. 이것이 세상이고 역사이니 참 허망하다.

그래서 힘차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 성경을 펼쳐 열었는데, 마침 열린 책이 전도서면 참 곤란한 하루가 된다. 동양의 도교와 견주어 연구되기도 하는 이 책은 그 시작부터 이렇게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성경에 무슨 이런 구절이 다 있나 싶을 것이다.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하는 첫 달에만큼은, 아무리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다음 구절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1:2)

어쩌다가 기독교 채널을 틀어보게 된 분들도 잘 아실 것이다. 대부분 설교자들의 목소리는 ‘허무’와는 거리가 멀다. 하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도 벌떡 일으켜 세울 기세다. 기독교는 이렇게 힘차고 긍정적이기만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성경에 이런 책이 있을까?

그래서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은,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그 내면에 허무와 의구의 회색 공간이 있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신앙을 갖게 된다고 하여 초인간적 성인이 되거나 천사가 되지는 않는다. 신앙의 모범 답안대로만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탑재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에 관한 깊은 고민과 위기는 신앙을 건강하고 두텁게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실 잘 다루어지지 않을 뿐이지, 성경 안에는 뚜렷한 회의주의적 담론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의구심과 그 신앙적 위기를 다루는 내용이 종종 시편에 나오며, 주요하게는 욥기와 전도서가 이를 다룬다. 왜 있을까? 하나님을 믿어도 깊이 생각도 하고 고민도 하며 진중하게 믿으라는 뜻이다. 육체에 고통을 가해야 단련되고 건강해 지듯, 신앙도 고민과 위기가 있어야 건강해 진다. 고민이 없으면 바보다.

그래도 허무를 잘 모르는 자가 있을까봐 전도서는 이런 말도 전한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찾아 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전쟁을 치를 때가 있고,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3:1-9)

봄에 씨앗을 심고 당장 그 열매를 얻고 싶어 밤새 물을 주고 부채질을 한들 부질없다. 우주의 법칙은, 봄이 지나 여름을 나고 가을이 와야 열매를 얻는다.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때가 아니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웃고 있다고 해서 자만하면 안 될 것은, 반드시 울 날도 오기 때문이다. 울고 있어도 좌절하지 말 것은, 언젠가 꼭 웃을 날도 오기 때문이다. 전쟁을 할 때가 있지만 평화의 때도 온다니 위로가 된다. 찾아 나서야 하지만 포기도 해야 한다니 맘이 아프다. 거대 우주의 원리와 삶의 신비를 생각해 보니,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 우리 인생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을 보니 그 모두가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1:14)

무력감마저 느껴지는 가르침이다. 전도서의 또 다른 핵심 주제는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세상도 하나님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두고서, 나는 깨달은 바가 있다. 그것은 아무도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뜻을 찾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은 그 뜻을 찾지 못한다.” (8:17)

힘차게 한 해를 시작하고 싶어 전도서를 열었는데, 그 안엔 '허무'에 관한 담론이 가득하다. 하지만 전도서는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뚜렷한 가르침도 남긴다. 게티이미지뱅크

허무하고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전도서는 뚜렷한 가르침도 알려준다. 이 책은 지속적으로 인생을 애쓰며 수고하지 말고 그저 즐기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5:18) 먹고 마시라니, 교회에서 듣기에는 참 곤란한 말이다. 그래도 전도서는 지속적으로 즐기라 한다.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3:22)

근면성실을 최선의 가치로 배우고 자란 우리들에게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난감한 가르침의 열쇠는 다음 구절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4:6)

어린 아이에게 과자를 주면, 욕심을 부리고 두 손 가득히 과자를 쥐고 간다. 가다가 뒤뚱거려 넘어질 때면, 얼른 한 손의 과자를 버리고 손을 펴서 땅을 짚어야 하는데 과자 욕심에 그러질 않는다. 결국 머리를 땅에 찧고 두 손의 과자도 다 놓쳐버린다. 욕심을 버리고 한 손에만 과자를 쥐고 안전하게 갔었다면 과자를 맛있게 즐겼을 텐데 안타깝다.

전도서가 부정적으로 말하는 수고란 이렇게 욕심에서 비롯된 것을 말한다. 욕심 때문에 수고하면 결국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허무할 것이다. 욕심으로 수고하여 기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97점을 맞아도 고통스럽다. 3점 모자란 것만 보인다. 반면 무엇이든 즐기면서 하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과정을 즐겼다면 97점이 고스란히 즐거움이 된다. 욕심을 버리면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전도서는 가르친다.

새해가 왔다. 2018년을 헛갈려 2017로 자꾸 잘못 적다가 이제 간신히 바로 적기 시작했는데, 짜증나게 벌써 2019가 왔다. 놀라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새해가 또 온 것이다. 그래서 전도서와 함께 삶을 점검해 본다. 나는 과연 직장 생활을 수고하는 지 즐기는 지. 나는 연애를 수고하는 지 즐기는 지. 나는 자녀를 수고하는 지 즐기는 지. 나는 학업을 수고하는지 즐기는 지. 나는 목회를 수고하는 지 즐기는 지. 진정 즐길 줄 아는 자에게는 새해가 새 일로 가득 할 것이다.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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