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참배한 뒤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요즘 같은 ‘한 컷 뉴스’ 시대에는 방명록도 기사가 된다. 새해 첫날인 1월 1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뒤 정치인들이 방명록에 남기는 문구는 특히 그렇다. 기해년은 더구나 기미년 3ㆍ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여야 대표들은 어느 때보다 마음 속에 품은 한 문장을 꾹꾹 눌러 적었을 터다. 그래서 살펴봤다. 방명록 속 정치언어.

◇마음은 총선으로… 이해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뒤 방명록에 남긴 글. 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한민국!’이라고 적었다. ‘나라다운 나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과도 같은 문구다. 세월호 참사에 국정농단까지 겪으며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를 향해 던졌던 ‘이게 나라냐’는 물음에 답을 제시하겠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점은 ‘든든한 대한민국’에 찍힌 듯 하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든든하게 힘을 실어 달라’는 지지층을 향한 호소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느낌표로 마무리해 자신감도 섞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의혹까지 터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와 함께 여당의 지지율도 동반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라, 느낌표가 무척 함축적으로 느껴진다. 이 대표는 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연 신년인사회를 겸한 단배식에서 “내년 총선 압승과 2022년 정권 재창출로 이 나라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다하자”고 말했다. 느낌표는 역시 1년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차기 총선에 찍혀있다.

◇새마을운동 기시감 김병준, 새판짜기 간절한 손학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후 방명록에 적은 글. 한국일보 자료사진

방명록의 문구는 야당 대표들이 더 고심해 적을는지 모른다. 대통령이나 여당 대표에 비해 메시지의 위상이나 보도 회수가 상대적으로 적어서다. 언론이 주목하는 새해 첫 현추원 방명록은 메시지를 전달할 좋은 기회다.

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현충원 방명록에 ‘위대한 국민 다시 뛰는 대한민국’이라고 썼다. 국민 부흥을 강조한 산업화 시대의 냄새가 난다. 김성현 정치ㆍ행정 컨설팅그룹 ‘보솔’ 파트너는 “보수ㆍ우파에 호소하는 전형적인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후 방명록에 적은 글. 한국일보 자료사진

현재 처한 정치적인 상황과 바람이 잘 녹아 든 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문장이다. 손 대표는 방명록에 ‘새판, 새정치, 새로운 대한민국’이라고 남겼다. 정계개편이 이뤄지지 않고는 답을 찾기 어려운 바른미래당의 처지가 포개진다. 기존의 보수ㆍ진보가 아닌 ‘새정치’, ‘개혁정치’를 하자며 지난 해 지방선거 전 의기투합해 만든 바른미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으로 탈당 행렬이 이어지면서 쪼개질 위기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기미년 3ㆍ1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 받겠다는 의미로 ‘1919. 3.1 - 2019. 1. 1’이라고 적은 뒤, ‘민주공화국 100년, 길을 넓혀가겠습니다’라고 썼다.

◇몸으로 ‘비정규직 해결’ 의지 보인 이정미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1일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를 찾아 굴뚝 위의 파인텍지회 홍기탁ㆍ박준호 조합원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행보로 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뚜렷하게 밝혔다. 동작구의 현충원이 아닌 양천구의 열병합발전소로 향해 지지와 응원의 뜻을 보낸 것이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노동자들은 1일로 416일째 75m 굴뚝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모회사인 스타플렉스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촛불3주년을 맞은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비정규직, 여성과 청년노동자, 중소상공인들의 삶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어쩌면 현충원 방명록에 남긴 몇 글자보다, 그의 발걸음이 더 강렬한 힘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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