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7>역사문화 명산 ①무당산
※남한보다 96배 넓은 중국엔 오악, 불교 성지 등 명산도 많다. 산은 역시 경치가 아름다워야 최고라고 하지만 발품기행에는 역사와 문화가 풍성하게 담겨야 좋다. 도교 명산 무당산, ‘와호장룡’ 촬영 창암산, 문수보살 성지 오대산, 명절 한식의 유래 면산 등 ‘역사문화 명산’을 4편으로 나눠 소개한다.

무당산 정상 천주봉에서 바라본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다.
무당산의 대략 위치. 구글맵 캡처.

무당산(武當山)은 후베이성 서북쪽 도시 스옌(十堰)에 있다. 국내에서 직항이 있는 네 도시의 딱 가운데 위치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시안에서 4시간30분, 우한에서 5시간, 정저우에서 6시간30분, 충칭에서 9시간30분이 걸린다. 베이징에서는 빠른 기차로도 16시간이 걸린다. 무당산 하나 보자고 찾아가기 쉽지 않다. 등산이나 무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갈만하다. 등산도 좋아하지 않고 태권도조차 배우지 않았지만, 무당산을 찾은 이유는 도교와 명나라 황제 때문이다. 3월 중순 여전히 쌀쌀한 날씨, 무당산은 비도 오고 그래서 안개가 많았다.

황궁처럼 웅장한 자소전

명산답게 관광버스 비용이 포함된 입장료가 거의 5만원이다.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려면 먼저 버스를 타고 30분 산길을 오른다. 주차장에서 다시 조금 오르면 자소궁(紫霄宮)이 나타난다. 1121년 북송 때 처음 건축됐지만, 지금 골격은 1412년 명나라 영락11년에 전체를 손본 것이다. 이후에도 수차례 중건을 반복해 지금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본전인 자소전(紫霄殿)은 황궁처럼 웅장한 도관의 자태를 보여준다. 돌계단을 따라 높이 2m의 향로를 지나고 한 층을 더 오르면 높이 18.3m, 너비 29.9m, 깊이 12m의 건축물과 만난다.

무당산 자소궁
자소궁의 본전인 웅장한 자소전.
도교의 삼청신과 진무대제를 경하하는 편액들.

2017년에 한 케이블 채널의 ‘천하무림기행-의천도룡기’에 면담자로 출연한 적이 있다. 자소전을 배경으로 설명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얼마 전 물고(物故)한 김용 작가의 소설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무당파를 끄집어냈으니 딱 적절한 공간이다. 무당파는 원나라 말기에 도사이자 무술가인 장삼풍이 창립했다. 무당산의 무당파만 아니라 6대 무림 문파라 일컫는 소림파, 곤륜파, 아미파, 화산파, 공동파도 모두 산에서 탄생했다.

자소전 1층엔 금박 편액 셋이 나란하다. 명나라 영락제는 진무대제(真武大帝)를 우상화하는 정책을 펼친다. 운외청도(雲外清都)는 도교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고귀한 삼청신인 옥청(玉清), 상청(上清), 태청(太清)과 함께 진무대제가 자리잡은 공간이란 뜻이다. 진무는 태청이라 불리는 태상노군(太上老君)의 화신이다. 도교에서 말하는 시조 노자가 태상노군이다. 삼청은 모두 ‘도’라는 관념 자체를 신격화한다. 위대한 사상가 노자를 머리에서 지워야 도교를 이해할 수 있다.

오른쪽의 시판육천(始判六天)은 청나라 도광3년(1823)에 제작됐다. 육중천(六重天), 즉 36일이 지나 우주가 생성되고 신선의 땅이 창조된다는 뜻이다. 별세계는 바로 삼성이 사는 세상을 말한다. 왼쪽의 협찬중천(協贊中天)은 민국28년(1939) 작품이다. 한마음 한뜻으로 천지중앙(天地中央)에 위치하는 동천복지(洞天福地)에 대한 찬양이다. 신선이 사는 명산을 경외한다는 말이다. 사전에 따르면 하늘(天)은 사람(人)이 입(口)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며 끝도 없는 창궁(蒼穹)을 머리 위에 이고 있다. ‘도덕경’도 천장지구(天長地久)를 언급하며 하늘은 무한하게 광활한 공간이라고 설파했다. 그냥 단순히 자연을 설명한 말은 아니다.

무당산 산행에서 만난 ‘랑매선사’ 전설

무당산 정상을 오르려면 케이블카를 타도 되지만 ‘하늘’의 의미를 새기려면 등산이 최고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천천히 오르다가 멈추면 봉우리마다 궁전이 하나씩 숨었다. 남암궁(南巖宮)도 황궁의 색감을 드러내고 있다. 멀리서 봐도 붉은 담장에 푸른 기와가 은은하다. 한숨 돌리니 수염 휘날리며 늙은 도사가 오르고 있다. 남천문을 지나니 주차장이 발아래다. 벌써 한참 올라 온 느낌이다.

절벽에 세운 무당산 남암궁.
가파를 계단을 올라 남천문을 통과하다.

남천문에서 본 주차장.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길 옆에 랑매선사(榔梅仙祠)가 있다. 진무대제와 나무에 얽힌 흥미로운 전설이 담겼다. 득도를 위해 무당산을 오르다가 빈랑나무 아래에서 쉬는데, 맞은 편에 꽃이 활짝 핀 매화나무 한그루가 볼수록 예뻤다. 매화 가지를 꺾어 빈랑나무에 꽂고 다짐한다. 수행에 성공하면 매화가 빈랑에서 발아해 열매를 맺고, 실패하면 가지도 마르고 잎도 시들게 되리라고 말이다. 전설이나 신화는 불가능한 상황일수록 드라마틱하다. 빈랑나무에 매화가 자라 열매를 맺은 것을 ‘랑매과’라 부른다. 어느날 황후가 병이 나서 큰 우환이었다. 무당산 도사가 랑매과를 바치니 황후의 병이 완쾌됐다. 황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도사인 진인(真人)으로 봉했다.

실제로 랑매과는 맛이 달고 향이 좋은 무당산 특산물이다. 전설은 장사를 위한 좋은 소재다. 객잔이 대여섯 채가 있는 작은 거리가 있다. 랑매과는 가을에 열매를 맺는데 혹시나 해서 봤지만 역시 찾을 수 없다. 도관을 방문하는 사람을 위해 향이나 음료수를 판다. 창문 주위로 라러우(납육ㆍ臘肉)가 걸렸다. 소금에 절인 후 햇빛과 바람에 말리는데 요리를 해서 먹으면 안주로 제맛이다. ‘납’은 음력 12월, 섣달이다. 겨울에 말리기 시작한 라러우를 기본 재료로 1년 사계절 다양한 채소를 함께 볶으면 꽤 일품이다. 중국 전역에서 라러우를 볼 수 있다. 돼지부터 오리는 물론 생선까지 웬만한 먹거리는 다 내건다.

랑매선사 사당과 랑매진인.
무당산 등산로에서 본 라러우 말리는 모습.
천상의 경지로 들어서서 산행을 시작하다

조천궁(朝天宮)부터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바로 천상과 인간 세상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신선이 내려올 수 있는 가장 낮은 위치이기도 하다. 정상으로 가는 사람은 반드시 향을 사르거나 절을 하고 가야 한다. 가운데 봉공하는 신은 진무대제가 모시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다. 도교 신화에서 하늘과 땅을 모두 주재한다.

천상과의 경계, 조천궁과 옥황상제.
일천문, 이천문, 삼천문에 이르는 신도.
신도를 통해 하늘에 이르는 3개의 문을 지나다.
이천문과 삼천문, 조성문을 지난다.

이제 신의 경지로 들어선다. 명나라 시대부터 신도(神道)라 부르던 등산로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기를 계속해 3개의 하늘 문을 지나야 한다. 일천문(一天門)을 통과한다. 능선을 하나 넘으면 회선교(會仙橋)라 불리는 평탄한 석교가 이어진다. 주위에 나무가 많아 화창해지면 꽃길일 듯 싶다. 힘든 계단을 오르다가 평지 위에 지은 다리이니 신선과 대화하며 가면 좋긴 하겠다. 하늘로 가는 계단인 천제(天梯)를 오르면 이천문이다. 문을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바로 삼천문이 나타난다. 1시간30분이 걸려 3개의 문을 모두 통과하고, 다시 꼬불꼬불한 길을 30여분 지나면 성지 참배 입구인 조성문(朝聖門)에 도착한다. 문을 지나면 무당산 정상에 세운 또 하나의 자금성이 나타난다.

무당산에 세운 또 하나의 자금성

조카를 살해하고 황제를 찬탈한 명나라 영락제는 베이징으로 천도하고 연호를 영락(永樂)이라 했다. 자금성(紫禁城)을 건축해 위엄을 세우고 북방민족의 남하를 방어하려고 대대적으로 만리장성을 보수한다. 무엇보다 반란 이미지를 없애고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백성이 신봉하는 도교를 이용하려고 무당산 정상에 황궁을 세운다. 무당산에서 수련한 진무대제를 호국신으로 숭배하고 ‘천하제일산’으로 승화했다. 천주봉 최정상에 금전(金殿)을 세우고 한 글자만 바꾼 자금성(紫金城)을 쌓고 태화궁(太和宮)을 건축했다.

무당산에 세운 자금성과 태화궁.
무당산에서 찍은 정상 부근 지도. (한글은 별도 삽입)
태화궁 내 황경당.
대악태화궁과 삼교조사.
무당산 태화궁 지나 자금성 입구의 영관전 벽화.

베이징 자금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태화궁 전각은 520칸에 이른다. 도사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경전을 칭송하던 황경당(皇經堂) 금박 편액과 목조가 정교하다. 화재로 훼손돼 청나라 도광제 때 중건했다. 태화궁 앞에 대악(大嶽)이 붙었다. 오악보다 더 훌륭하다는 칙령이다. 본토 종교라는 도교가 신앙이 된 후 수많은 종파가 생겼다. 전진파(全真派), 상청파(上清派), 정일파(正一派) 모두로부터 조사로 인정받으면 대단한 일이다. 삼교조사(三敎祖師)는 진무대제를 지칭한다.

대악태화궁을 지나 영관전(靈官殿)을 지난다. 사찰에서 사대천왕이 있는 천왕전을 먼저 만나듯, 도교 도관에서는 영관전이 바로 호법장군의 역할을 한다. 보통 우락부락한 얼굴로 무기를 들고 서 있는데 벽화로만 그려져 있다. 명나라 시대에는 당연히 있었을 터인데 지금은 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가파른 계단이 연이어 돌고 돌아가는 길인 구련등(九連蹬)을 거쳐 드디어 최정상 금전 앞이다. 해발 1,612m 천주봉 정상이다. 뒤돌아 산세를 바라보면 무당산이 왜 예부터 도교 명산인지 바람처럼 느껴진다.

영락제의 변명, 진무대제를 위한 우상화

금전은 가로세로 각 3칸이며 높이는 5.54m, 가로 4.4m, 세로 3.15m의 자그마한 전각이다. 무당파 도사 장삼풍을 추모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진무대제를 명분으로 자신의 허물을 가리려는 게 영락제의 본심이었다. 진무대제가 설파한 ‘천인합일(天人合一)’ ‘군권신수(君權神授)’ 사상은 우호적인 여론을 만드는데 유리했다. 금전은 그런 바람으로 진무대제를 봉공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진무대제 얼굴이 곧 영락제의 진용(真容)이라고 말한다. 산 정상에 세운 미니어처 고궁은 보면 볼수록 신비하고 영롱하다. 햇살이 강렬하면 더욱 금빛 찬란하다고 하는데 안개 낀 금전도 감개무량하다.

무당산 정상 천주봉에 지은 금전.
‘제일산’ 서체를 쓴 송나라 화가 미불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하행 요금은 상행보다 조금 싼 1만 2,000원가량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려고 가는 길에 꽃잎 사이로 제일산(第一山)이 보인다. 필체는 송나라 4대 화가로 유명한 미불(米芾)의 작품이다. 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암벽에 쓴 서체를 보고는 ‘생기가 없다’고 하자 미불은 몇 날을 고민한다. 어느 날 자유자재로 급하게 지나는 뱀과 조우한다. 또 하루는 책상다리로 심신 수양하는 도사가 창문으로 투영된다. 다시 붓을 들 때 아주머니가 지나가며 손을 가리고 부끄러워한다. 아주머니의 예쁜 쪽머리가 ‘제’로 변했다. ‘일’은 승천하는 용이 물에서 놀며, ‘산’은 도사가 단정하게 수행한다. 계속 보면 정말 그럴 듯하다. 이야기 꾸미기는 중국 사람들이 금메달 감이다.

무당산 케이블카 입구.
송나라 화가 미불이 쓴 ‘제일산’.

리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에서 양쯔충이 장쯔이에게 “무당산으로 가거라. 샤오후(小虎)가 기다리고 있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장쯔이는 무당산을 찾아 샤오후 역의 장전을 만난다. 그리고 멋진 마지막 장면이 연출된다. 예쁜 거짓말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창암산에서 찍었다. 역사문화 명산 2편은 창암산으로 간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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