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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삶는 법은 외할머니로부터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면 순천에 있는 외가에서 보름쯤 지내다 오곤 했는데, 혼자 사는 할머니 적적하지 않게 말벗이 되라는 임무수행과 동시에, 부모님 눈을 피해 마음껏 자고 놀고 돌아다니려는 속셈을 품은 일종의 귀향이자 휴양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도착한 순간부터 아랫장에서 대야채로 사온 꼬막을 삶아주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서울로 떠나는 날까지 끼니마다 한 솥씩 꼬막을 삶아 내밀었다. 주구장창 꼬막이라니 질릴 법도 하지만, 딱히 음식솜씨가 있는 양반이 아닌지라 다른 선택지가 없는데다, 그런 꼬막 맛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으므로, 나는 매끼 처음 보는 맛인 양 두 팔 걷어붙이고 맛나게 먹었다. 더 이상 할머니가 삶아주는 꼬막을 먹을 수 없게 된 지금, 이 겨울엔 할머니가 하던 식으로 꼬막을.

물을 팔팔 끓인 다음 꼬막을 넣는다. 꼬막이 차가우니 끓던 물은 푸르르 숨을 죽이는데, 이때 꼬막을 잘 저어준다. 아랫놈은 위로 윗놈은 아래로. 다시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끈다. 끝. 뭐 대단한 기술이라고 배웠다고까지. 그렇다, 기술이라기엔 너무나 단순하다. 하지만 누군가 삶아 까 준 꼬막을 넙죽넙죽 받아먹다가 처음으로 직접 꼬막을 삶아 먹으려 할 때, 어차피 삶아 익히기만 하면 될 일이라며 만만하게 대하다가는, 너무 질기거나 혹은 피비린내 나는 꼬막의 된맛을 보고야 말 터이니. 나름의 기술이라면 기술이라고 우겨본다. 중요한 것은 물이 다시 끓을라치면의 순간에 불을 끄는 것인데, 그냥 삶으면 되지 요로코롬, 이라는 할머니의 설명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데 나름 시간이 필요했다. 끓을라치면과 끓기 시작하면의 차이도.

그렇게 삶은 꼬막은 회와 숙회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야들하면서 쫄깃하고 달큰하면서 짭짤하고 날것의 비린 맛과 익은 것의 고소함을 겸비한, 최상의 맛을 이끌어낸다. 그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삶은 즉시 솥 채 끌어안고 까먹어야 한다. 식기 전에, 물기가 마르기 전에, 싱거워지기 전에. 두 팔 걷어붙이고, 팔꿈치까지 짠물 질질 흘리며, 까서 넣고 까서 넣고, 그냥 먹어주는 거다. 물론 양념장 얹어 먹는 꼬막 맛도 좋긴 하지만, 그건 왠지 양념에 공을 나눠주는 것 같으니, 순정한 꼬막의 맛에 오롯한 찬미를.

잘 삶은 꼬막은 사실 까기가 어렵다. 입을 헤벌리고 있는 꼬막은 너무 삶아졌다는 증거다. 당연히 질기다. 입이 아주 살짝, 손톱이 겨우 들어갈락 말락 한 만큼, 틈을 보일 때가 가장 좋다. 하지만 그 틈으로 앙다문 입을 벌려 펼쳐내기가 만만치 않다는 걸 까본 사람은 다 알 터. 여기서 꼬막 까는 팁 하나. 입이 아니라 똥구멍을 공략하라. 이것은 물론 할머니의 표현이다. ‘별 거 있가니? 숟가락을 똥구녕에 넣고 돌리면 되제, 요로코롬.’

꼬막껍질의 불룩하게 맞닿은 부분을 왜 똥구멍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면 그 생김새가 어쩐지 토실한 궁둥이 모양을 닮은 것도 같지만, 어쨌거나 둥글게 맞닿은 오목한 부분에 숟가락을 넣어 비틀면 쉽게 까진다는 말씀. 그러니까 똥구멍에 숟가락을 끼우고 궁둥이를 지렛대 삼아 휙. 여기서 또 중요한 팁 하나를 추가하자면, 지렛대는 똥구멍을 기준으로 조금 길게 뻗은 궁둥이 쪽이어야 힘을 더 잘 받는다는 것. 꼬막껍질 모양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안다. 오목한 곳을 기점으로 대략 3:4 정도의 비율로 불룩한 선을 이루고 있다는 걸. 그 위치만 잘 파악하면, 까서 입에 넣고 씹어 삼키기 전에 한두 개쯤 더 까서 다른 사람 입에도 넣어줄 수 있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굴 까는 여인들처럼, 휙휙.

뒤늦게 곱씹어본 할머니의 요로코롬 꼬막 삶기의 핵심은 끓기 직전에 불을 끄라는 것, 그리고 살짝 보인 틈에 연연하지 말고 완전히 닫힌 곳의 중심을 공략하라는 것. 올해는 고로코롬 살아봐야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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