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미투사태로 촉발된 한국기원 수뇌부 재가동 시급
내년 남,녀 바둑리그 차질 운영도 불가피
신진서 9단 등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핵심세력 급부상 전망

올 한해 국내 바둑계는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다. 바둑 대중화에 추진력을 더해줄 ‘바둑진흥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고 ‘바둑의 날’(매년 11월5일)이 지정됐다. 한·중·일 3개국의 국가 대항전인 ‘농심 신라면배’(우승상금 5억원)에선 5년만에 우승컵을 되찾아왔다. 5년 가까이 1인 천하 시대를 고수했던 박정환(25) 9단은 신진서(18) 9단에게 절대지존의 자리를 내주면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 또한 예고됐다.

하지만 악재도 컸다. 올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파문은 바둑계에도 불어 닥쳤다. 중심에 섰던 김성룡(42) 9단은 제명 처리됐고 총재 등을 비롯한 한국기원 지도부의 총사태까지 불러 일으켰다. 초읽기에 들어간 2019년 ‘황금돼지띠’ 해를 앞두고 반상(盤上) 안팎의 현안과 주목해야 할 이슈에 대해 짚어봤다.

김영삼 한국기원 사무총장이 이달 10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국과 중국 프로기사들의 통합 랭킹제 도입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한국기원 컨트롤타워 복원 시급…한·중 통합랭킹 도입도 관심

반상 외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한국기원 수뇌부의 복원이다. 미투 사태로 촉발된 한국기원 총재와 부총재 자리가 아직까지 공석이다. 홍석현 총재와 송필호, 송광수 부총재는 지난달 2일 사실상 미투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파행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5일 진행된 ‘바둑이 날’ 행사엔 수상자에게 트로피를 건네 줄 시상자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 문제는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한국기원 수뇌부로 거론되는 후보 조자 없다는 데 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총재와 부총재를 물색하고는 있지만 어려운 게 사실이다”며 “후보군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도 버겁다. 국내 바둑계 간판기전인 ‘KB바둑리그’ 차질 운행도 불가피한 실정이다. 올해 KB바둑리그에 포함했던 2~3개팀은 이런 저런 이유로 사실상 내년 참가를 포기한 상태다. 2015년부터 여자바둑리그를 후원해 온 모기업측에선 내년 스폰서 계약은 어렵다는 입장을 이미 한국기원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지만 미투사태와 무관치 않다는 게 바둑계 안팎의 공공연한 시각이다. 결국, 현재로선 내년 국내 대표적인 남,녀 바둑리그의 운행 자체가 어려운 모양새다. 그 만큼, 한국기원 컨트롤타워 복원이 시급하단 얘기다.

이와는 별도로 내년부터 새롭게 선보일 한·중 통합 랭킹제 도입은 바둑팬들에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전망이다. 글로벌 바둑계에서 양 강 체제가 구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에 공개될 통합 순위는 세계 바둑계의 실질적인 랭킹 지표로 가늠될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세계 프로바둑 기사들의 순위는 인터넷 바둑 전문 사이트인 고레이팅을 참고했지만 산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세계 바둑을 대표하는 한국과 중국이 상호 교류를 보다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며 “늦어도 내년 상반기내엔 양 국 프로바둑 기사들의 순위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진서(맨 오른쪽) 9단이 올해 7월 중국 푸저우에서 열렸던 ‘제4회 백령배 세계바둑오픈대회’ 8가전에서 당이페이 9단을 물리치고 4강에 진출, 내년 1월에 우승컵을 노릴 수 있게 됐다. 한국기원 제공
◇세대교체 ‘강풍’…10대 신진서 9단 세계대회 우승 여부 촉각

반상 내에선 세대교체 바람이 주목된다. 선두주자는 박정환 9단의 60개월 연속 국내 랭킹 1위를 저지한 신진서 9단이다. 올 한해 동안 82승25패(승률 76.64%)를 기록한 신진서 9단은 ‘2018 바둑대상 최우수기사상(MVP)’과 더불어 다승상 및 승률상, 연승상(16승)까지 싹쓸이 했다. 이달 25일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열렸던 ‘제1회 천부(天府)배 세계바둑선수권’(우승상금 약 3억3,000만원) 결승에서 중국의 천야오예(29) 9단에게 1승2패로 준우승에 그쳤지만 신진서 9단에게 기회는 살아 있다. 신진서 9단은 현재 내년 1월 13일로 예정된 ‘제4회 백령배 세계바둑오픈대회’(우승상금 약 1억7,000만원) 4강에 올라 있어서다. 상대는 중국의 구쯔하오(20) 9단이다. 신진서 9단이 백령배에서 타이틀을 차지할 경우, 2000년대 출생의 밀레니엄 세대이면서 10대 프로바둑 기사 우승 기록도 덤으로 챙겨간다. 신진서 9단은 28일 한국기원에서 ‘2018 바둑대상 MVP’를 받은 직후 “구쯔하오 9단과는 인터넷 바둑으로 300판을 넘게 둬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10대 프로바둑 기사의 세계대회 우승 기록은 2016년에 열렸던 ‘제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대회’(우승상금 약 3억2,000만원) 당시 중국 커제 9단이 18세 5개월로 세운 이후 정지된 상태다,

신진서 9단 이외에도 남,녀 통합랭킹 10위권내에 포진한 변상일(21) 9단과 이동훈(20) 9단, 신민준(19) 9단 역시 세대교체의 핵심으로 꼽힌다. 변상일 선수는 올해 ‘KB바둑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면서 내년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린 상태다. 이동훈 9단의 경우엔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부진했지만 올해 중국 갑조리그에서만 올해 10승2패의 뛰어난 전적을 기록했다. 천하의 박정환 9단의 올해 중국 갑조리그 성적은 5승8패에 불과했다. 신민준 9단은 최근 12연승으로 내년 1월 박정환 9단과 KBS바둑왕전 결승, 생애 첫 타이틀 사냥에 나선다.

이 밖에 여자 프로바둑기사 가운데선 ‘기록제조기’로 거듭난 최정 9단의 행보도 볼거리다. 올해 ‘제9회 궁륭산병성배’(우승상금 약 5,000만원)와 ‘제23기 하림배 여자국수전’(우승상금 1,200만원), ‘제2기 한국제지 여자기성전’(우승상금 3,000만원) 등을 거머쥔 최정 9단은 12월 랭킹에서도 30위로 뛰어오르면서 자신의 종전 최고 순위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2018 KB바둑리그’ 해설위원인 이희성(36) 9단은 “내년에는 본격적인 세대교체 바람과 더불어 그 어느 해 보다 풍성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며 “국내 바둑계에도 상당한 판도변화가 예상된다”고 점쳤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포츠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