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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위력 커진 1인 창작 콘텐츠

입력
2018.12.30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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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초가 되면 각계 각층에서 한 해의 대표적 사건이나 향후 부상이 예상되는 상징적 키워드를 뽑는다. 영상 콘텐츠가 무섭게 성장한 올해 디지털 분야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영상을 꼽는다면 ‘본격 LG 빡치게 하는 노래’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지난 4월 유튜브에 공개된 1분32초 분량의 이 동영상은 파격적 내용으로 깜짝 놀랄만한 결과를 가져왔다.

1인 창작자 허지혜(hozzaa2)씨가 만든 이 영상은 LG생활건강의 새 세탁용품을 알리는 광고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1분10초 동안 광고주인 LG를 비난한다. 신나는 금요일에 퇴근 후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려고 했는데 광고주 때문에 다시 회사로 불려 들어가 야근을 하며 광고를 만들어야 하는 불만과 분노를 노래와 간단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실제 영상을 보면 온갖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며 급기야 광고주를 폭파시키는 그림까지 나온다. 과연 광고가 맞나 싶을 만큼 광고주에게 원망을 퍼붓는다. 정작 광고 부분은 영상 말미에 20초 가량 등장한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쩌겠냐는 식의 푸념과 함께 세탁용품의 특징을 간단하게 네 가지로 요약해 노랫말과 함께 보여준다.

이 영상은 지금까지 봤던 광고의 통념을 뒤엎었다. 광고라면 무조건 제품이나 회사의 좋은 점을 부각시켜 사람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키는 식인데 이 영상은 정반대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회관계형서비스(SNS)를 통해 재미있는 영상으로 소문이 나면서 지금까지 조회수 171만 건을 기록했고 3만2,000개의 ‘좋아요’와 1,6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LG가 따로 만든 방송용 광고를 훨씬 능가하는 인기였다.

인기 비결은 댓글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방송 광고는 백날 봐도 까먹는데 이건 전두엽에 박혀서 빠지질 않는다’, ‘제품명을 확실히 기억한데다 사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신랑이 아무 의미 없이 툭하면 이 영상 보더니 결국 제품을 사왔다’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요지는 파격적 방법으로 제품이 갖고 있는 개념(컨셉트) 전달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LG생활건강의 분기별 세탁용품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0%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작자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접근 방법과 아이디어도 놀라웠지만 이를 허용한 광고주 LG의 결단도 대단하다. LG는 이 영상을 통해 딱딱하고 트렌드에 민감하지 못하다는 대기업의 고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친근하고 재기 발랄한 기업 이미지를 심어줬다. 이 점이 LG가 판매량보다 더 큰 효과를 본 부분이다.

이 영상은 올해 1인 창작자가 미친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제는 소비자가 곧 콘텐츠 생산자가 되고, 이들이 시장을 좌우하는 1인 마켓시대가 됐다. 치열한 콘텐츠 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규모나 형식보다 개념 전달에 치중한 콘텐츠가 곧 승자가 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LG 빡치게 하는 노래’다.

이런 추세는 2019년에 더 가속화할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내년에 1인 창작자가 늘어나며 시장이 잘게 쪼개지는 ‘세포 마켓’(Cell Market)이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기업과 대형 브랜드가 획일화된 상품으로 시장을 주도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소비자마다 각기 다른 기호와 감성에 호소하는 소규모 브랜드 또는 1인 창작자가 더 주목받고 이들이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분화와 집중이라는 상반된 개념이 작용 반작용처럼 서로를 떠받칠 것이다. 시장은 수 많은 브랜드와 창작자들로 잘게 쪼개지지만 사람들의 전두엽을 자극하는 브랜드나 개인에게 시장이 몰릴 수 있다. 물론 1인 창작자를 어디까지 신뢰할 것이냐는 숙제로 남는다. 그렇다 해도 내년은 점점 늘어나는 1인 창작자들과 기성 브랜드ㆍ기업 간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는 해가 될 것이다.

최연진 디지털콘텐츠국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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