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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차범근ㆍ박지성 “우리가 전설? 이제는 손흥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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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차범근ㆍ박지성 “우리가 전설? 이제는 손흥민 시대”

입력
2019.01.02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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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가 낳은 두 영웅 최초 동반 인터뷰

“독일전 승리, 한국 축구 흐름 바꾼 큰 사건”

“아시안컵 우승해야 亞최강 내세울 수 있다”

차범근(왼쪽) 전 국가대표 감독과 박지성이 지난 12월 27일 서울 중구 소공로에 있는 환구단을 걸으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 축구가 낳은 영웅으로 꼽히는 두 사람은 한국일보가 신년 기획으로 마련한 동반 인터뷰에서 지난 해 한국 축구를 돌아보고 새해를 전망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차범근(왼쪽) 전 국가대표 감독과 박지성이 지난 12월 27일 서울 중구 소공로에 있는 환구단을 걸으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 축구가 낳은 영웅으로 꼽히는 두 사람은 한국일보가 신년 기획으로 마련한 동반 인터뷰에서 지난 해 한국 축구를 돌아보고 새해를 전망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박)지성아, 너 키가 몇이니?”

박지성(38)과 나란히 걷던 차범근(66) 전 국가대표 감독이 물었다. 박지성이 “178(cm) 정도 된다”고 답하자 차 감독은 “나보다 작은 줄 알았는데, 서 보니 비슷하네”라고 말한 뒤 “난 공식적으로 179(cm)인데, 솔직히 그보다 조금 작아”라고 껄껄 웃었다. 박지성도 “저도 프로필보단 작아요”라며 미소 지었다.

차범근과 박지성. 둘은 나이 차가 30년 가까이 난다. 차 감독 아들인 차두리가 박지성과 동갑이니 부자 뻘이다. 같은 시대, 같은 무대에서 뛴 적이 없지만 한국 축구가 낳은 두 영웅임에는 틀림없다.

차 감독은 1979년부터 10년 동안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를 휘저으며 ‘차붐’의 시대를 열었다. 박지성은 2005년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7시즌을 뛰며 ‘두 개의 심장’ ‘산소탱크’라 불렸다. 우리나라 선수 중 분데스리가 진출은 차범근이 최초, 프리미어리그 입단은 박지성이 최초다. 한국 선수도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두 사람 덕에 이후 많은 후배들이 유럽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다. 태극마크를 달고서도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A매치 136경기에서 58골을 넣은 차범근은 한국 선수 중 최다 출전, 최다 득점 보유자다. 박지성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주역으로 3차례 월드컵(2002ㆍ06ㆍ10)에서 잇달아 골을 넣은 유일한 한국 선수다.

한국일보는 지난 12월 2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차범근 감독과 박지성을 함께 만나 한국 축구를 돌아보고 새해를 전망했다. 둘의 동반 인터뷰는 처음이다.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밝은 표정으로 대담을 나누는 두 사람. 서재훈 기자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밝은 표정으로 대담을 나누는 두 사람. 서재훈 기자

-어렵게 두 분을 함께 모셨습니다. 먼저 함께 인터뷰하는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차범근(차)=“좋죠. 이렇게 대스타를 옆에 두고. 지성이가 우리 차범근 축구상 수상자(1993년 1월 18일 장려상)니까 더 남다르고.(웃음) 제자, 후배들에게 다 애정이 가지만 그 중 가장 성공한 한국 축구 선수의 모델을 옆에 두고 인터뷰할 수 있다는 건 나로서는 영광이고 행운이고 자랑스럽죠. 솔직한 얘깁니다. 과장된 게 아니고. 박지성처럼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를 쓴 사람이 없잖아요. 월드컵 4강에, 프리미어리그 리그 우승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박지성(박)=“(차 감독을 가리키며) 여기 한 분 더 계시잖아요.(웃음)”

차=“나는 그런 걸(월드컵 4강 등) 못 해본 사람이잖아.”

박=“25년 전인 초등학교 6학년 때 차범근 축구상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릴 때라 그저 좋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 얼마나 대단한 분에게 상을 받았는지 느꼈을 때 오히려 충격이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유럽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도 차범근 감독님입니다. 아시아 선수, 한국 선수가 유럽에서 해낼 수 있다는 걸 감독님이 이미 증명했으니까요. 아무도 없었다면 의구심을 많이 가졌을 텐데 감독님 덕분에 저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이런 인터뷰를 같이 한 적이 없는데 영광스럽고 꿈같기도 하네요. 제가 축구로 그래도 뭔가 이뤘으니 이런 자리에 초대받았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도 들고요.”

박지성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3년 1월 차범근 축구상을 받은 뒤 차범근 감독과 기념 사진을 찍은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지성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3년 1월 차범근 축구상을 받은 뒤 차범근 감독과 기념 사진을 찍은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선수 중 분데스리가에 최초 진출(차범근)했고, 프리미어리그에 최초 입성(박지성)했습니다. 두 분에게 ‘최초’란 어떤 의미인가요.

차=“미지의 세계를 갈 때는 늘 두려움과 공포가 있죠. 독일에서 그런 두려움이 항상 나를 짓눌렀고. 내가 먼저 그 길을 감으로써 우리 후배들은 내가 가졌던 공포와 두려움을 조금 덜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늘 하며 치열하게 버텼어요.”

박=“굳이 최초라는 의미를 크게 부여하진 않았지만 분명 부담감은 있었습니다. 제가 뭔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아시아 선수, 한국 선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할 일이었고 운이 좋게도 그 기회가 왔을 뿐이죠.”

분데스리가 시절 차범근 전 감독의 모습. ‘차붐’이라 불린 그는 은퇴할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최다 득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분데스리가 시절 차범근 전 감독의 모습. ‘차붐’이라 불린 그는 은퇴할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최다 득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꼽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의 박지성.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때 사진도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꼽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의 박지성.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때 사진도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8년 한국 축구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러시아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대표팀은 많은 비난을 받았고 실제 조별리그 1,2차전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독일전 깜짝 승리에 이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며 다시 한국 축구에 봄이 찾아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박=“월드컵에서 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건 사실이죠. 정말 제대로 준비를 했느냐는 측면에서 봤을 때 분명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팬들이 축구장을 찾고 축구를 다시 본다는 건 긍정적입니다. 고민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준 한 해였던 것 같아요.”

차=“독일전 승리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축구에도 하나의 사건이었죠. 경기 내용을 떠나 그 승리가 주는 상징성은 엄청납니다. 그 경기 후 한국 축구는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는 반면 독일 축구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까. 축구에는 흐름이 있기 마련인데 독일전 승리는 한국 축구의 흐름을 긍정적으로 바꾼 역사적 사건이었죠.”

박=“독일전이 잘못됐다면 한국 축구가 받은 타격이 상당히 컸을 겁니다. 하지만 선수들이 국가대표로서 보여줘야 할 본분을 끝까지 잊지 않은 덕에 최악의 상황에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차=“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 2002년 4강, 2010년 16강 빼고 결과가 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죠. 이를 더는 반복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왜 항상 월드컵에서 실패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지 분명히 짚고 개선해야 해요. 지금 우리가 호재를 만났지만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대한축구협회는 협회대로, 축구인은 축구인 나름대로 경각심을 갖고 이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 4년 후 같은 전철을 밟지 말아야죠.”

국가대표 시절 ‘영원한 캡틴’으로 불렸던 박지성. 사진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가대표 시절 ‘영원한 캡틴’으로 불렸던 박지성. 사진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는 6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아시안컵이 개막한다. 한국은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지만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건 1960년이 마지막이었다. 차범근도 박지성도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지 못하고 선수를 은퇴했다. 이번 아시안컵은 지난 8월 부임한 파울루 벤투(50ㆍ포르투갈) 한국대표팀 감독의 지도력을 가늠하는 1차 시험대이기도 하다.

-두 분 다 대단한 업적을 이뤘지만 아시안컵 우승은 결국 못 했지요.

차=“그 아픔과 상처가 크죠. 아쉬운 건 아시안컵이 다른 어떤 대회보다 중요한데 우리 때 대회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분위기였다는 거야. 돌이켜 보면 그 점이 상당히 안타까워요.”

박=“아시안컵에 처음 나갔을 때(2000년 레바논 대회)는 사실 얼마나 중요한 대회인지 잘 몰랐어요. 유럽에서 뛰며 유로(유럽축구선수권)가 얼마나 큰 대회인지 새삼 느꼈고 같은 대륙간컵인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우승을 해야 ‘아시아 최강’이라 내세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국가대표 시절의 차범근 감독.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드리블하는 모습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가대표 시절의 차범근 감독.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드리블하는 모습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시안컵은 차범근에게는 ‘시작’, 박지성에게는 ‘마지막’이었던 대회다. 차범근은 1972년 태국 아시안컵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18세 11개월로 대회 최연소 출전이었는데 이 기록은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 나선 18세 6개월의 손흥민(27ㆍ토트넘)에 의해 깨졌다. 차범근의 A매치 데뷔골도 크메르(캄보디아)와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이었다. 한국은 결승에서 이란에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박지성은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한국은 일본과 준결승에서 연장 혈투(2-2)를 벌인 뒤 승부차기까지 갔지만 0-3으로 졌다. 박지성은 무릎 부상으로 우즈베키스탄과 3, 4위전(한국 3-2 승)을 뛰지 못해 한일전 준결승이 그의 100번째이자 마지막 A매치로 남았다.

차범근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승리를 역사적인 사건으로 꼽았다. 그는 팬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기 위해서는 대한축구협회와 축구인 모두가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재훈 기자
차범근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승리를 역사적인 사건으로 꼽았다. 그는 팬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기 위해서는 대한축구협회와 축구인 모두가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재훈 기자

-(차범근에게) 1972년 아시안컵이 기억나시는지.

차=“태국에서 열렸던 아시아청소년 대회 끝나고 바로 대표팀에 뽑혀서 아시안컵에 갔어요. 어휴, 방콕의 5월이 얼마나 무더운지. 청소년 대회를 치르고 왔으니 다 적응됐을 거라면서 선배들이 경기 중에 ‘차범근’이만 계속 찾는 통에 정말 그때는 경기 끝나면 목욕하고 나온 것처럼 축구화가 질퍽질퍽했죠. 이라크전은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선배들이 다 나보고 차라고 미루는데 내가 찬 공이 하늘로 날아가서 관중석에 떨어지는 바람에 얼굴이 하얘졌어요. 선배들이 나보고 ‘축구 다시 배우라’고 한 마디씩 하셨죠.(웃음)”

-(박지성에게) 2011년 아시안컵 준결승에 대한 아쉬움이 많을 텐데요.

박=“우승을 못한 것도 아쉽지만 가장 후회되는 건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지 않은 거예요. 개인적으로 페널티킥을 싫어하는 편이었고 그 때도 나보다 잘 차는 선수들이 하는 게 맞는 거라 생각했죠. 당시 세대교체 시기여서 대표팀에 어린 선수들이 많았는데 후배들은 두려움 없이 승부차기도 잘 찰 거라 믿었어요.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저는 팀을 위해서 빠진 거라 생각했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부담감을 안겨준 셈이 됐거든요. 제 커리어에서 가장 후회되는 부분입니다.”

차=“아니, 그건 우리 한국 축구 전통인 것 같아요. 어린 선수들을 (승부차기로) 밀어 넣고 말이야…(웃음)”

-두 분 모두 유독 페널티킥을 싫어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듯하네요.

차=“그래도 내가 대표팀에서는 계속 페널티킥 다 차고 잘 넣었어요. 분데스리가에서 안 찼던 거지.(웃음)”

박=“저도 페널티킥을 싫어하지만 대표팀에서 승부차기 할 때 넣을 건 다 넣었어요. 하하. 월드컵(2002년 한일 대회 4강 스페인전), 아시안게임(2002년 부산 대회 4강 이란전)까지요.”

박지성은 한국이 1월 아시안컵에서 59년 만에 우승할 수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박지성은 한국이 1월 아시안컵에서 59년 만에 우승할 수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이번 아시안컵에서 59년 만에 우승의 한을 풀 수 있을까요.

차=“선수들의 사기가 높고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어 기대가 됩니다. 우리 시대의 아시안컵은 집중적으로 준비를 못 했고 승운도 따르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언젠가는 변화하기 마련이니까. 반전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박=“흐름으로 봤을 때 우승하기 좋은 기회인 건 사실입니다. 지난 대회(2015년 호주) 결승까지 간 경험이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토너먼트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무엇보다도 운이 따라야 해요. 최근 아시안컵은 8강부터 누가 이겨도 이견이 없을 만큼 팀 간 전력이 비슷하니까요.”

차=”어떤 대회든 우승하려면 실력은 기본이고 승운이 따라 줘야죠. 가만히 앉아있어서 되는 건 아니고 선수들이 그만큼 노력하고 도전하면 (운도) 따라오는 거고.”

-아직 이르지만 지금까지 벤투 감독 지도력을 평가한다면요.

차=“2년 정도 기다려봐야죠. (한국대표팀 감독은) 부임 후 2년이 늘 고비였던 것 같아요.”

박=“감독 능력을 평가하긴 분명 이르지만 선수들에게 ‘나도 대표팀에서 뛸 수 있겠다’는 동기부여를 해준 부분은 긍정적이라 생각해요. 아시안컵에서 우리는 비슷한 전력의 상대를 여럿 만납니다. 또 지금까지는 다 평가전이었지만 이번 대회는 결과를 내야 하는 부담이 있죠. 벤투 감독의 능력을 볼 수 있는 첫 번째 테스트 무대라 생각해요.”

박지성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차범근 감독. 서재훈 기자
박지성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차범근 감독. 서재훈 기자

차범근과 박지성은 자신들의 뒤를 이어 손흥민이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전설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박지성이 뛰었던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누비고 있는 손흥민은 지난 12월 6일 차범근(121골)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유럽 무대에서 100골을 돌파(106골)하는 기록을 세웠다. 마침 인터뷰가 있던 이날 새벽에도 손흥민은 본머스를 상대로 기분 좋게 두 골을 터트렸다. 박지성은 손흥민과 국가대표에서 잠깐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때 박지성이 주장, 손흥민은 막내였다. 둘은 룸 메이트로 박지성이 ‘방장’, 손흥민이 ‘방졸’이기도 했다.

-요즘 손흥민을 보면 어떻습니까. 흐뭇하지요.

박=“7년 전 흥민이는 어린 나이지만 자기 표현과 감정이 확실했어요. 경기장에서나 훈련장에서 분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걸 보고 우리 세대와 참 다르다고 느꼈죠. 상당히 긍정적인 후배였고 늘 웃음이 있었고 자신감도 대단했어요. 한국 축구를 이끌어 나갈 선수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기대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국 축구의 또 다른 보물이 탄생한 거죠.”

차=“대견합니다. 여기 박지성도 대단하지만 손흥민도 최근에 굉장히 발전을 했어요. 한국 축구가 지금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있는데 손흥민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당분간은 흥민이 발 끝에서 나오는 득점이나 플레이가 한국 축구에 많은 영향을 줄 거에요. 아시안컵도 우승하려면 손흥민 역할이 중요하고. 지금은 손흥민이 이끌어 가야 하는 시대죠. 부상만 없으면 꾸준히 잘해줄 겁니다.”

러시아 월드컵에 출정식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손흥민(왼쪽)을 바라보는 차범근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러시아 월드컵에 출정식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손흥민(왼쪽)을 바라보는 차범근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손흥민이 두 분의 뒤를 이어 한국 축구의 전설로 기억될 수 있을까요.

차=“당연하죠. (웃으며) 이미 뛰어넘은 거 아닌가요? 팬들은 재미 삼아 차범근이 낫느냐 박지성이 낫느냐 손흥민이 낫느냐 얘기를 하는데 전자기계가 갈수록 첨단화되듯 축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시대에는 나보고 잘한다고 했지만 후배, 제자들은 더 업그레이드되거든. 박지성과 손흥민, 둘 다 최고의 선수, 전설로 남아야 합니다.”

박=“당연히 (저를) 넘어설 겁니다. 아직 스물여섯에 불과하잖아요. 손흥민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차범근 감독과 박지성은 손흥민이 자신들의 뒤를 이어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전설로 남을 거라고 확신했다. 서재훈 기자
차범근 감독과 박지성은 손흥민이 자신들의 뒤를 이어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전설로 남을 거라고 확신했다. 서재훈 기자

-두 분 다 유럽에서 활약하던 시절 숱한 고비를 다 이겨내셨습니다. (박지성에게) 중동, 중국 클럽으로부터 백지수표 러브콜을 받았는데도 거절한 적도 많지요. 요즘 후배들을 보면 어떤가요.

박=“세대마다 받아들이는 게 조금씩 다른 거라 생각해요. 저는 축구를 너무나 좋아했고 좋은 축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러려면 유럽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유럽으로의 도전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반면 중국, 중동으로 가면 금전적으로는 바로 이득을 볼 수 있죠. 선택은 본인의 몫이에요. 다만, 유럽에 가서 성공하라고 말하기에 앞서 축구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 사회가 꿈을 좇는 사람들이 많은지 아니면 꿈보다 현실을 택하는지 한 번 살펴봤으면 해요. 선배로서 후배들이 (유럽 도전을) 더 많이 해주길 바라지만 무조건 유럽으로 가라고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차=“지성이가 정확하게 짚은 것 같네요.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어요. 누가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사명과 열정은 스스로 느껴야 하는 겁니다. 후배들이 긍정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교육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게 맞습니다.”

-(차범근에게) 마지막 질문입니다. 박지성이 앞으로 한국 축구에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보나요.

차=“박지성은 유럽에서 우리가 하지 못한 수많은 걸 경험했어요. 거기서 얻은 것들을 한국 축구와 연관시켜 선진화할 수 있는 (행정) 공부를 하고 있고. 언젠가는 축구협회에서 한국 축구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꼭 유럽을 경험해야 축구협회에 있으란 법은 없지만 그런 사람들이 세계 축구와 우리 축구가 다른 점을 좀 더 잘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준비도 차질 없이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귀중한 인재들을 이렇게 바깥에만 두는 건 옳지 않아요.”

-(박지성에게) 차범근 감독이 한국 축구에 어떤 어른으로 남았으면 하는지요.

박=“지금처럼 자리를 지켜 주셨으면 좋겠어요. 감독님은 어떤 축구 선수가 돼야 하고 은퇴 후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범적으로 보여주셨어요. 축구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에 계속 좋은 영향력을 보여주시면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서 걸을 수 있을 거예요.”

2019년 한국 축구의 발전을 기원하며 남긴 덕담. 차 감독은 ‘한국축구 지금처럼 죽(쭉) 성공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썼고 박지성은 ‘한국축구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서재훈 기자
2019년 한국 축구의 발전을 기원하며 남긴 덕담. 차 감독은 ‘한국축구 지금처럼 죽(쭉) 성공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썼고 박지성은 ‘한국축구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서재훈 기자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서진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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