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 홍합이라 불리는 연체동물은 사실 진주담치다. 서유럽이 원산지이며 마산만과 거제, 여수의 가막만 일대에서 대규모로 양식된다. 홍합은 바닷물이 들이 차고 나가는 환경에서 양식되기 때문에 껍데기가 깨끗하다. 게티이미지뱅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대구와 홍합 등 해산물 몇 가지를 사서 토마토 스튜를 끓일 요량이었다. 나름의 성탄 특식이라고 할까. 가본 이라면 알겠지만 대중교통으로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기는 은근 불편하다. 9호선까지 지나는 덕에 근처까지의 접근은 더 편해졌지만 좁고 어둡다 못해 칙칙한 터널을 한참 걸어야 한다. 지난주에 뱅쇼 이야기를 하면서 ‘시장과 화해했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청량리 종합 시장의 경우고, 이곳의 사정은 또 다르다. 현대식 건물을 지었다지만 내부는 예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바닥엔 물이 흥건하고 몇 초 전까지 분명히 숨이 붙어 있었던 생선의 잔해가 대강 굴러다닌다. 호객도 여전하다. 호객 자제 안내문과 더불어 ‘자정구역’까지 플래카드를 붙여 지정해 놓았지만 심지어 그 구역에서도 호객은 끊이지 않는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판매하는 홍합 시장가는 1㎏에 3,000원이다. 마트보다 싸지만 껍데기가 깨진 홍합들이 많다. 이용재 제공

심지어 시장까지 연결되는 터널은 공사로 한층 더 길고 어수선했다. 안내문엔 ‘6일 지연되어 12월 12일 본통로 개통 예정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이미 12월 24일이었다. 원래는 통행이 금지된 오토바이마저 좁은 터널에 등장하자 시장에 이르는 짧은 여정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개연성 없게도 마트 계산대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깨끗하죠? 여기에서 미리 다 손질해서 파는 거에요.’ 언젠가 좋아라 홍합을 들고 왔더니 들었던 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마트에서 파는 홍합은 대체로 깨끗하다. 양 껍데기 사이에서 비죽 나온 ‘수염’을 일부 떼어내 줘야 하지만 그게 손질의 전부이고 품도 많이 들지 않는다. 껍데기가 깨져서 죽은, 그래서 골라내야 하는 것의 비율도 대체로 적다. 

게티이미지뱅크
 싸지만 기구한 팔자, 홍합 

수산시장의 홍합은 어떨까. 다른 시장이라면 몰라도 이곳이라면 뜨내기에 불과한 나이지만 한 바퀴 돌아 보면 분위기는 금방 파악할 수 있다. 홍합은 대체로 인기가 없어 보인다. 일단 취급하는 곳이 적고 팔리는 것의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상인에게 물어보면 자연산이라고 설명하지만 글쎄, 믿을 수가 없다. 게다가 출처에 상관없이 5㎝ 안팎의 것들은 먹을 게 정말 없다. 상태는 마트에서 팔리는 것에 비하면 손질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지만 차이는 크지 않다. 다만 껍데기가 깨지거나 명백히 죽은 것들은 확실히 더 많이 나온다. 말하자면 손실이 좀 더 크다. 홍합은 역시 마트에서 사는 게 낫다.

그렇다고 슬프지는 않다. 홍합의 시장가는 1㎏에 3,000원이다. 참고로 같이 사온 흑모시조개는 같은 무게에 1만5,000원. 조개마다 위상이 다르고 그에 맞춰 가격이 형성되겠지만 홍합이 가장 싼 것만큼은 확실하다. 현실도 이를 잘 반영한다. 홍합은 대체로 이류, 혹은 삼류 해산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다. 현재 국내산 홍합이라 불리는 연체동물은 사실 진주담치(혹은 지중해담치)이다. 서유럽이 원산지이며 마산만과 거제, 여수의 가막만 일대에서 대규모로 양식된다. 게다가 진주담치가 홍합이라는 이름을 95% 차지할뿐더러 진짜 홍합은 양식이 안 되고 표면에 따개비 등이 많이 붙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홍합은 바닷물이 들이 차고 나가는 환경에서 양식되어 껍데기가 깨끗하다. 잘고 멀끔한 시장 물건이 ‘자연산’이라는 상인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이래저래 홍합의 팔자는 정말 기구하다. 여태껏 ‘익숙하지만 천대 받는 재료’를 다뤄 온 가운데 가장 측은한 것을 꼽자면 단연 홍합이다. 싸지만 맛이 없는 재료는 아닌데 대체로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조리된다. 부피가 큰 껍데기가 실내포차에서 공짜 안주로, 짬뽕 혹은 파스타의 장식적인 요소로나 쓰일 뿐이다. 껍데기에 비하면 잘은 살은 과조리로 인해 쪼그라들다 못해 부스러져 버려 맛을 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다. 물론 홍합을 비롯한 조개류는 익히면 입을 벌리며 시원한 국물을 보태주지만 대체로 조미료가 적극적인 감칠맛을 책임지는 요즘의 음식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해질 수 밖에 없다. 

홍합은 익으면 입이 벌어지고, 즙이 배어 나와 냄비의 바닥에서 물과 섞여 국물을 이룬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정용 요리로는 제격인 홍합 

기구한 홍합의 팔자를 어떻게 좀 바꿔 볼 수 없을까. 의외로 구원의 한줄기 빛은 가정의 부엌에서 찾을 수 있다. 싸지만 맛이 있는 가운데 해감이나 세척 등 본격적인 손질이 필요 없으며 빨리 익는다. 잘 익히면 살은 부드럽고 국물은 시원하다. 준비부터 조리까지 20분 안에 끝내 식탁에 올릴 수 있으니 배가 고프고 의욕은 없지만 편의점 도시락이나 배달 음식은 썩 내키지 않는 어느 끼니에 홍합을 구원하면 홍합도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 게다가 조리법마저 쉬운 가운데 조금씩 변주를 줄 수 있으니 요리 초보의 연습용 식재료로도 딱 좋다(실패하더라도 싸니까 부담이 적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파인애플(본보 12월 8일자)로 칼질을 시도했다면 홍합으로는 조리를 시도해볼 수 있다. 

수산시장에 가기 전에 보았던 영화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로, 다른 평행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이 모종의 계기로 한데 소환되는 이야기였다. 그런 영화를 보았더니 홍합의 평행우주가 생각났다. 각자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조리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금방 맛있게 잘 익는 홍합을 한데 소환하고 싶다. 첫 번째 홍합의 조리법은 정말 기본 가운데서도 기본이다. 세척과 손질이 끝난 홍합을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넓은 냄비에 담고 물을 자작하게 붓는다. 뚜껑을 덮어 중불에 올린다. 이탈리아에는 ‘뱃사람식 홍합 요리(Cozze alla Marinara)’라는 이름으로 아예 물도 붓지 않고 센불에 홍합을 올려 배어 나오는 즙만으로 익히는 조리법도 있지만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손길의 첫 시도로는 권하지 않는다. 물에게 열에너지의 완만한 매개체 역할을 맡겨 실패의 확률을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 

요리할 때 홍합이 입을 본격적으로 벌리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채로 5분쯤 둔다.게티이미지뱅크

두 번째 조리법은 물이 홍합에 직접 닿지 않는다. 쫄깃함이 한국에서 사랑 받는 질감이라 장점 같지만 그렇지 않다. 특히 홍합처럼 연약한 식재료에게는 큰 허물이 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홍합을 찜기에 올려 냄비에 담고 물을 부어 증기로 익힌다. 익으며 입이 벌어지면 즙이 배어 나와 냄비의 바닥에서 물과 섞여 국물을 이룬다. 세 번째 조리법부터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불과 칼, 손을 쓴다. 일단 마늘 한 두 쪽 강판에 갈거나 칼로 곱게 다져 올리브 기름을 두른 차가운 팬에 올린다. 기름이 전혀 달궈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서히 온도를 올려야 마늘이 타서 쓴맛이 도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약불 이상으로 불을 올리지 않으면서 고소한 냄새가 올라올 때까지 마늘이 볶아지면 홍합을 더해 소금과 후추로 간하고 입을 벌리기 시작할 때까지 나무 주걱 등으로 뒤적이며 볶는다. 이어 물을 자작하게 부어 뚜껑을 덮고, 중불로 올려 끓인다. 일단 마늘만 썼지만 좋아하는 어떤 향신채도 쓸 수 있다. 쪽파나 파, 양파, 파프리카, 샐러리, 심지어는 올리브를 다져 볶아도 홍합과 국물에 다른 표정의 맛이 깃든다.

마지막 조리법은 세 번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향신채를 기름에 볶아 맛과 향을 끌어 낸 뒤 홍합을 볶는 것까지는 똑같다. 다만 마무리에 화이트 와인을 조금 붓고 끓여 알코올을 날린 뒤 물을 더해 마무리한다는 차이가 있다. 어디에서나 쉽게 살 수 있는 소비뇽 블랑이나 샤도네이 같은 화이트 와인은 신맛과 더불어 시트러스, 즉 감귤류의 향을 풍기므로 해산물을 레몬즙으로 마무리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상큼함과 더불어 국물에 약간의 켜를 더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맥락의 변화이다. 와인이 홍합의 조리에 일종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맡아 준다. 홍합은 손질부터 식탁에 올리기까지 20분 밖에 안 걸리는 식재료라고 했다. 그런데다가 따뜻한 국물을 얻을 수 있고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따라서 비단 배고픔을 급하게 해결하고 싶을 때뿐만 아니라 술이라도 마시고 싶을 때 그럴 듯 하면서도 손쉬운 안주로 딱 좋다. 와인을 따서 한 잔 마시면서 여유롭게 조리를 해도 오래 걸리지 않는 식재료이면서도 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라니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없다. 

세척과 손질이 끝난 홍합을 가장 넓은 냄비에 담고 물을 자작하게 붓고 끓이는 것만으로도 손색 없는 요리가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먹고 남은 홍합국물은 죽으로 

어떤 평행우주의 홍합이든 마무리는 똑같다. 입을 본격적으로 벌리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채로 5분쯤 둔다. 남은 열로 마저 입을 벌릴 뿐만 아니라 쫄깃하거나 부스러질 정도로 과조리 되지 않는다. 게다가 온도도 조금 내려가 젓가락 대신 손을 쓰겠다는 성질 급한 (혹은 배고픈)이에게 고통을 안기지도 않는다. 배가 몹시 고플 때 홍합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조리하든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 먹는다. 일단 절반 정도 열심히 살을 발라 먹어 허기를 좀 다스린다. 그리고 국물을 따라 눈이 고운 체에 한 번 내려 껍데기 쪼가리나 티끌 등을 걸러낸다. 이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겨울의 국물이 한 사발 생겼다. 지지난 주에 소개한 닭육수가 쉬운 고깃국물이라면 홍합국물은 쉬운 해물 국물이다. 이제 어떤 국물 음식이라도 만들어 먹기 좋지만 일단 가장 손쉽고도 또한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죽이다. 냄비에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씻은 쌀을 고소한 냄새가 올라올 때까지 볶은 뒤 국물을 조금 넉넉하다 싶게 붓는다. 

원칙을 따르자면 눌어 붙거나 타지 않도록 계속 불 앞에 달라붙어 저어줘야 되겠지만 너무 애를 쓸 필요는 없다. 죽이 보글보글 끓어 오르기 시작하면 뚜껑을 살짝 비스듬히 덮어 숨통을 트여준 뒤 잠깐 다스린 허기가 다시 고개를 들지 않도록 홍합을 마저 열심히 먹는다. 배가 슬슬 차거나 물렸다 싶으면 공기 하나를 놓고 살을 발라내 담아가며 먹는다. 죽은 10분에 한 번씩만 상태를 확인하고 저어주다가 쌀에서 투명함이 완전히 가시고 국물이 걸쭉해지면 맛을 보아 익은 상태와 간을 확인한다. 죽이 다 끓으면 대접에 담고 발라낸 홍합을 올린다. 막 끓여낸 죽의 열로 따뜻해지기만 하고 더 익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홍합도 삶아 먹고 남은 국물로 죽을 끓여 먹었다. 국물 혹은 죽에 두터움을 한 켜 더하고 싶다면 생크림, 혹은 마요네즈를 한 숟갈 더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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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합과 어울리는 술  

사람도 마시고 홍합도 마실 술로 화이트 와인을 이야기했지만 다른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싸지만 맛있고 조리가 빨리 되는 것은 물론, 홍합은 레드 와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술과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일단 편의점에서 ‘네 캔 만 원’에 팔리는 맥주 대부분과 좋은 짝인 가운데 밀맥주나 라거의 일종인 필스너와 잘 어울린다. 샴페인 같은 발포 와인도 두말하면 잔소리로 같이 먹기에 좋다. 만약 와인도 맥주도 내키지 않는다면 청주 혹은 사케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술은 곁들여 마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홍합 자체를 끓이는 바탕으로도 쓸 수 있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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