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사회서 공감사회로 <2> 혐오와 차별의 난장]
‘빨갱이’란 적이 모호해지자 여성ㆍ성 소수자 등으로 대체
정치적 반대세력을 낙인 찍어 체제 위기 등 책임을 떠넘겨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2주기’였던 지난해 5월 17일 서울 신논현역 인근에서 여성들이 추모집에 나섰다. 서재훈 기자

# “아름다운 여성이 전혀 화장도 안 하고 씻지도 않는 것은 아니지 않냐. 매일 씻고 피트니스도 하고 자기를 다듬는다. 도시도 항상 다듬고 옆집과 비교도 해야 한다.” 지난해 6ㆍ13 지방선거 당시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가 도시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여성을 도시에 빗대 한 말이다. 여성들이 ‘탈코르셋(코르셋처럼 강박으로 느껴지는 미의 기준을 거부하겠다는 운동)’을 외치는 시대에 ‘여자는 자고로’로 시작하는 류의 낙후된 여성관을 그대로 드러냈다. 여성혐오 발언이다.

# 2년 전 제17대 대선 때 TV 토론회의 한 장면. “동성애는 국방 전력 약화로 이어지는 데 동성애를 반대합니까?”라는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 질문에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반대합니다. 동성애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우리가 ‘이성애를 반대한다’고 하지 않듯 동성애 역시 찬반으로 나눌 일이 아니다. 성 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찬반의 영역으로 가지고 온 문답은 그 자체로 성 소수자 혐오 발언이다.

# “(예멘 난민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하는데 문 대통령이 찬성도 반대도 아닌 모호한 태도로 사회적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지난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난민 문제를 정치 쟁점화시키려는 시도로 여겨져 우려를 샀다. 언뜻 점잖은 말 같지만 영향력이 큰 정치인의 발언인 데다 더 교묘하게 차별과 배제를 조장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난민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혐오 발언이다.

대한민국이 혐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마저 ‘혐오 팔이’의 전시장이 돼버렸다. 누가, 왜 ‘혐오장사’에 나서는가.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혐오의 쓸모와 효용을 살펴봐야 한다.

지난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예멘인들이 제주 출입국ㆍ외국인청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적을 찾아라… 혐오의 창궐

“적(敵)이 갑자기 사라졌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에 혐오가 만연한 원인을 이렇게 진단한다. 그는 “한반도 평화 모드로 ‘빨갱이’라는 악마화된 적의 존재가 모호해졌다”며 “적이 사라져 곤혹스러워진 대중이 쉽게 공격할 수 있고 혐오와 차별에 적합한 집단을 주변에서 찾아냈다”고 말했다. 과거의 적이 빨갱이(와 ‘종북주의자’)였다면 지금은 그 빈 자리를 여성, 성 소수자, 이주민 등이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빨갱이와 여성, 성 소수자, 이주민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 교수는 독일의 사회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견해를 빌어 설명한다. 첫째, 저항할 수 없는 약한 자들이다. 저항이 클수록 비용이 커지니까. 둘째,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선입견과 고정관념, 편견에 부합하는 소수자들이다. 공격해도 뒤탈이 안 나는 데다 다수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으니까. 서구에는 유대인이 있었다. 한국의 유대인은 빨갱이 그리고 여성, 성 소수자, 이주민인 셈이다.

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삶이 위태로운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적 즉, 혐오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불안한 삶을 야기한 사회구조적 문제나 권력자에 맞서는 것보다는 사회 주변부의 취약하고 낙인의 대상으로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집단을 지목해 책임을 묻는 편이 손쉽다”라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과 불안에 분노하기보다 그 감정을 나보다 약한 자를 혐오함으로써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의 정치적 쓸모

“미풍양속 해치는 동성애 반대.” 6ㆍ13 지방선거 때 보수교육감 후보들이 앞다퉈 내건 공약이다. 2017년 대선과 6ㆍ13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이른바 ‘혐오의 정치’가 급부상했다.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당당하게 공약으로 내거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껏 한 표가 아쉬운 정치인들이 보수 기독교계 눈치를 보는 정도에 그쳤다면 이제는 아예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자로 동원하고 조직하기 시작한 것이다. 혐오 자체가 정치의 동력이 돼버렸다.

이렇듯 혐오를 부추기고 자신에 이롭게 활용해온 주체 중 하나는 정치권이다. 정치적으로 쓸모가 있어서다. 권력자들은 혐오를 이용해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한다. 체제의 위기와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혐오 대상에게 떠넘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적 반대세력을 빨갱이로 낙인찍어 기존 질서를 유지했던 주류 기득권 세력이 종북몰이로 더 이상 재미를 볼 수 없게 되자 소수 집단에 대한 혐오를 통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라며 “혐오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돼왔는지 역사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인의 발언 자체가 갖는 파급력도 상당하다. 인권재단 사람의 정민석 사무처장은 “정치인들이 다수표를 얻기 위한 전략으로 소수자 혐오에 기댄 발언을 공공연히 하는데 그 해악이 심각하다”라며 “지지자들로 하여금 ‘그래도 된다’는 신호를 주면서 이들이 다시 혐오를 이어가도록 한다”고 꼬집었다.

혐오의 피라미드와 혐오표현 사례. 일러스트 그래픽=신동준 기자
일베의 대중화… 증오범죄 우려

혐오장사가 우리 사회에 초래한 결과는 뼈아프다.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는 혐오사회의 자화상이다. 전문가들은 “일베는 혐오사회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일갈한다. 일베는 여성, 진보 세력, 호남 출신 등 소수자들에 대한 조롱과 비하를 놀이로 소비했고, 혐오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재생산했다. 적어도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들이 혐오를 팔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왔다. 그 결과 그들이 온라인상에서 일삼던 혐오는 이제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도 공유하는 집단 정서가 됐다.

더 큰 문제는 혐오의 속성이 단순히 말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장차 현실 속 물리적 폭력으로도 이어진다. 6ㆍ13 지방선거 때 페미니스트를 표방한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포스터가 훼손된 사건은 그 징후다. 앞서 2014년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과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개최한 토크 콘서트에서 일어난 ‘황산 테러’ 역시 그랬다. 종북에 대한 혐오에 기반해 폭력에 이른 증오범죄다. 당시 여당 측 인사는 황산 테러범을 ‘열사’라고 지칭했고, 일베에는 테러범을 찬양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증오범죄는 진공 상태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와 편견이 깔린 상태에서 물리적 폭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라며 “유럽과 미국에서 극우 정치인들이 소위 혐오장사로 정치적 입지를 확대해왔듯이 한국에서도 그런 단초가 보이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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