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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후 소득ㆍ자산 불평등 커져... 격차 해소 없인 통합 어렵다”

입력
2019.01.02 04:40
수정
2019.01.02 18: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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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편사회’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 <2>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

절반이 “난 경제적 지위 하층”… 부자들 부러워하며 경쟁에 몰두

불평등 안에서 불평등이 악순환, 사회안전망 확충 등 대책 필요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는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낼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는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과시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려 한다”고 진단했다. 류효진 기자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는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낼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는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과시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려 한다”고 진단했다. 류효진 기자

“경쟁을 강요당하는 구조와 불평등이 심한 사회의 공통 증상은 사회적 신뢰, 네트워크, 공론장의 파괴입니다. 이제 인터넷에 무슨 집단지성이 있습니까. 혐오, 분노, 증오심이 증폭돼가고 있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증가해 온 불평등 수준, 경쟁 이데올로기를 바로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겁니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만난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는 “불평등이 커질수록 부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끝없는 지위 경쟁에 빠져든다”라며 “비교, 경쟁 속에 비관주의가 계속 유포되는 사회에서 공감, 이해, 공존, 통합, 상생의 논의가 꽃피기는 쉽지 않다”고 단언했다. 그는 지난해 내놓은 저서 ‘불평등이 문제다’(휴머니스트 발행)에서도 ‘한국사회의 파괴적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불평등 문제를 지목했다.

그는 무엇보다 각종 지표가 위험수위에 와있다고 했다. 2015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지위를 ‘하층’으로 답한 응답 비율이 46.7%로 1988년 이후 최고치였고, ‘평생 노력해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는 답변은 60%에 달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100대 50으로 두 배 가까이 벌어진 상황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

김 교수는 “더 놀라운 건 지난 20년간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불평등이 커져 왔으며, 교육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자본을 통한 불평등의 재생산 구조가 공고해진, 세습사회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라며 “1975년 이후 출생자들은 앞선 세대에 비해 부모의 지위에 따른 영향을 훨씬 많이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가 눈여겨 보는 점은 이런 상황에서도 오히려 차별에 찬성한다는 식의 ‘능력주의’, ‘과잉 능력주의’가 정당화되고 이 틈에서 혐오와 배제가 쏟아진다는 대목이다. “자발적으로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2등 시민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즉, 사회 강제에 의해서 경쟁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상황인데 이럴수록 우리 모든 삶이 스펙(서류상으로 표현되는 능력치)으로 치환되고 과잉경쟁과 능력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판칩니다. 이 끝없는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면 타인의 고통에 눈 돌릴 틈도 없어요. 상하 질서부터 확립해야 하고, 약자에게 이유 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배려에 항의하는 거죠.”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휴거’(휴먼시아 거지)등으로 비난하고, 임대아파트 학군을 기피해 해당 학교를 정원미달로 만드는 게 대표적이다. 불평등으로 가장 고통받으면서도 스스로 순응 이데올로기의 유포자가 되는 시민들의 자화상이다.

그는 온라인상에서 증가하는 각종 분노, 혐오 역시 ‘무한 경쟁 속에서 공감 능력을 상실한 사회의 병리 현상’으로 진단한다. 김 교수는 “스스로 무능하거나, 어떤 역할을 뺏기고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혐오, 분노 발언으로 우월감을 과시하며 자존감을 회복하려 한다”고 했다. 독일 사회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자전거 타기 반응’이 그 예이다. 위로는 머리를 숙이고, 아래로는 발로 차며 모욕하는 행동, 1929년 대공황 이후 독일에서 나치가 등장하면서 급증한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분석한 개념이다.

“잊고 있는데 우리가 IMF 전에는 상당히 평등한 사회였어요. 임금인상이 급격히 이뤄지면서 한때 지니계수가 낮아지기도 했고요. 외환위기로 공기업 민영화, 시중은행 매각, 대기업 구조조정, 경제의 금융화, 급격한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들의 증가로 소득 불평등이 커지고 부동산투기로 자산 불평등도 커졌죠. 그런데도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나 사회안전망 확충은 너무나 취약했고요.”

그는 이어 “무엇보다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고 꼬집었다. “지역구에서 1등만 하면 되지 세금이나 복지에 관심이 없었죠. 지역개발 예산에만 관심 있지, 본격적으로 복지에 대해 정치적 논쟁을 하는 일이 없잖아요. 이런 배제의 정치를 하는 나라들은 모두 빈곤과 불평등이 심각한 공통점이 있죠.” 현행 지역별 선거구에 기초한 단순다수대표제가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선거제도의 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대형 양당이 빈곤이나 불평등의 각종 지표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졌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 ▲사회투자 강화 ▲누진세 강화하는 조세개혁 ▲보편적 사회보험 시행 ▲주거비용 감소 등도 필요한 조치들로 꼽았다.

“한국에서는 전반적으로 불평등한 와중에 취약계층, 노인, 청년, 여성, 장애인이 다시 빈곤의 트랩에 갇혀 있고 이 불평등 안에서의 불평등이 악순환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노인 빈곤, 청년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결정자들의 비상 대책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인 자살률, 저출산, 우울증, 불행감, 넘치는 혐오의 논리는 모두 ‘불평등이 만든 값비싼 비용’이다. 김 교수는 “이미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듯 사회 구성원 간 격차가 고정되고 불평등이 세습된 사회는 커다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과 정책결정자들, 언론, 시민사회 모두가 증가하는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역사적 책임감을 갖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세습사회, 불평등, 이로 인한 혐오의 증가는 결국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필요한 자원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의 역량, 건강, 자존감, 자아의식을 손상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조건을 직시하고 이에 맞서는 행동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도덕적 의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죠.”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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