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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육체의 젊음과 영혼의 지혜 모두 갖춘 나이, 마흔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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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육체의 젊음과 영혼의 지혜 모두 갖춘 나이, 마흔이죠"

입력
2018.12.27 04:40
수정
2018.12.27 13:5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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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은 두 번 째 스무살…찬란한 나이” 

 산문집 ‘마흔에 관하여’… “불혹이 아니라 재미있게 혹해야” 

정여울 작가는 2004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2013년 쓴 산문집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던 것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후 작가가 됐다.작가의 삶은 스타 작가라 해도 불안하기 마련. 그는 “불안을 택한 대신 더 크고 찬란한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김혜윤 인턴기자
정여울 작가는 2004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2013년 쓴 산문집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던 것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후 작가가 됐다.작가의 삶은 스타 작가라 해도 불안하기 마련. 그는 “불안을 택한 대신 더 크고 찬란한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김혜윤 인턴기자

젊음과 늙음 사이에 마흔이라는 나이가 있다. 공자는 마흔을 세상 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 ‘불혹’이라 불렀다지만, 어디까지나 공자님 말씀이다. 마흔은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나이다. 그래도 되나 싶은 사람들이 마흔을 공부한다. 요즘 주목받는 ‘마흔론’이다. 마흔을 주제로 쓴 책이 쏟아져 나온다.

스타 에세이스트인 정여울(42) 작가의 ‘마흔에 관하여’도 그런 책이다. ‘비로소 가능한 그 모든 시작들’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마흔의 밝음을 썼다. ‘육체의 젊음과 영혼의 지혜를 동시에 간직할 수 있는 우리 인생의 마지막 시기.’ 정 작가가 내린 마흔의 정의다. 마흔을 통과해 40대로 사는 게 기쁘다는 정 작가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마흔론이 왜 새삼 뜨는 걸까요. 

“40대부터 은퇴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요. 돈은 좀 없어도 원하는 삶을 살려는 거죠. 은퇴하고 치킨집 하는 거 되게 위험하다, 통장 털어 세계일주 한다고 자아가 저절로 찾아지지 않는다… 그걸 알게 된 사람들이 인생 2막을 지혜롭게 준비할 길을 찾기 시작한 거예요. 부모 세대와는 다른 40대를 살고 싶어하기도 하고요. 정신없이 일해서 스스로를 더 나은 노동의 주체로 개발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아요. 삶을 향유하는 걸 중요하게 여겨요.”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고 하는데, 마흔 이후 삶을 다시 쓸 수 있나요. 

“40대까지는 삶이 찰흙이에요. 대리석이 아니고요. 20, 30대엔 뭐가 될지 모르는 찰흙이었다면, 어떤 도자기가 돼야 할지를 아는 게 40대예요. 깨지지 않는 도자기가 되려면 더 센 불에 나를 던져야 해요. 20대의 객기가 아니라, 정당한 용기로요. 마흔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게 칼 융이 말한 ‘개성화’예요.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의 모습을 찾는 거죠. ‘사회화’는 나이를 먹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저절로 되지만, 개성화는 마음 먹어야 가능해요.”

정여울 작가는 몇 년째 첼로를 배운다. “모든 사람이 전문가의 세계에서 기뻐할 필요는 없어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소중해요.” 김혜윤 인턴기자
정여울 작가는 몇 년째 첼로를 배운다. “모든 사람이 전문가의 세계에서 기뻐할 필요는 없어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소중해요.” 김혜윤 인턴기자


 -책에 ‘찬란한 마흔’이라고 썼어요. 정말 그런가요. 

“마흔 이후의 삶이 설레요. 제가 저를 알고, 믿고, 좋아하게 돼서 그래요. 나를 좋아한다는 건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하는 거예요. 부모님, 선생님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기 시작하고부터 달라졌어요. 나이 들어 성격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원래 말도 안 되게 예민한 사람이었거든요(웃음). 글쓰기의 간절함을 믿게 된 덕분이기도 해요. 글을 쓰는 게 대답 없는 세상을 향해 손에 피가 나도록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막막할 때가 있었어요. 이제는 문을 오래도록 두드리며 기다리면 누군가는 문을 열어 줄 거라고 믿게 됐어요.”

 -마흔이 그렇게 빛나기만 하는 건가요. 

“책에 별로 못 썼는데, 어두운 면도 많죠. 체력은 달리고 감성은 무뎌져요. 무엇보다 ‘꼰대’가 되기가 굉장히 쉬운 나이이고요. 권력, 돈으로 뭘 보여 주겠다, 나도 고생했으니 너도 고생해 봐라, 같은 생각에 빠지기도 쉽고요. 마흔 이후 자기 관리에 너무 열심이라면, 스스로를 상품 취급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어요.”

 -마흔이 됐으니 ‘불혹’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 않나요. 

“자극이 무한에 가깝게 많은 시대에 그게 되나요. 재미있게 혹하는 마흔이 좋은 거예요. 나를 풍성하게 해 주는 유혹, 삶을 고여 있지 않게 해 주는 유혹이라면 즐겨야 해요. 좋은 말로 하면 매혹이겠죠. 불륜 말고요(웃음). 중년을 지나 더 행복해진 분들이 주위에 많아요.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서가 아니라, 자기를 발견한 덕분에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살아도 흔들리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선 불혹이라는 말이 맞겠어요.”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마흔 타령이냐는 반응은 없나요. 

“책 쓰면서 그걸 걱정하긴 했어요. 그런데 생활이 안정됐든 아니든, 마흔 이후엔 사람이 달라져야 해요. 살던 대로 계속 살면 영영 떠밀려 살게 돼요. 마흔을 ‘두 번째 스무 살’ ‘두 번째 사춘기’라고 부르는 게 좋더라고요. 제대로 어른이 돼 보자는 뜻이죠. 40대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요. ‘블리스를 찾아라(Follow your Bliss)’는 말을 해드려요. 블리스는 누가 뭐래도 내가 좋은 내 안의 희열이에요. 그걸 꼭 찾으세요.”

최문선 기자 moosun@hankookilbo.com 김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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