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고 김용균 씨의 분향소. 김씨는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 점검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사망한 그의 가방에는 끼니를 때우기 위한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배우한 기자

청소년에게 면허가 없어도 된다고 꼬드겨 오토바이 배달을 시켰다가 아이가 사망했다. 그 업주는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고작 벌금 30만원만 냈다. ‘배달 소년들의 비극(본보 11월22일자 1ㆍ6ㆍ7면)’을 보도한 후, 답답한 마음에 법 조항들을 뒤져봤다. 그럴 듯한 조항은 찾았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66조의2에는 안전ㆍ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아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안전조치 기준에 오토바이 면허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래도 이 조항을 믿었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1,957명(사고 964명, 질병 993명). 매년 2,000명 가량이 사망하고 있으니 기소되는 사람도 꽤 되지 않겠나. 대법원에 2년간 이 조항이 적용된 판결문 전체를 요청했다. 대법원은 사건이 별로 없다고 2014년부터 5년치를 뒤져서 달랑 6건을 보내왔다. 한해 2,000명이 죽는 동안, 단 1건 정도만 재판에 넘겨진다고? 상급심으로 올라가지 않고 1ㆍ2심에서 확정된 사건 등은 제대로 취합이 안된 것인가.

법원 내부 시스템에서 판결문이 자세히 검색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결과를 믿을 수 없어서 고용노동부에 산안법 66조의2 위반으로 조사해 검찰에 이첩한 사건들, 대검찰청에 그 조항으로 기소한 사건들을 요구했다. 두 기관 모두 그런 자료는 관리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받아 놓은 6건의 판결문을 읽어봤다. 다른 법 위반까지 합쳐 최고 많이 받은 사람이 징역 1년,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 100만~1,000만원, 혹은 무죄였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조항은 이렇게 무력했다.

지난 10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산안법 개정안에는 이 조항이 ‘징역 10년 이하’로, 벌금도 ‘10억원 이하’로 상향돼 현재 국회 심의 중이다. 사안을 알고 보면, 이 개정이 무슨 소용 있나.

‘무면허 배달 소년’이 사망해도 부추겼던 업주는 벌금 30만원만 내면 되니, 아이가 죽든 말든 100만원 어치를 배달 시켰다면 업주는 이익이다. 한국서부발전은 고 김용균(24)씨와 같은 하청 노동자가 죽든 말든, 28차례에 걸친 설비 개선 요구를 거부하고 3억원을 아꼈으니 이익이다.

예전 한 세미나에서 어떤 교수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기득권은 스스로 내놓지 않는다, 위협을 받아야 무서워해야 내놓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저임금제가 도입되고 복지정책이 확대된 이유는, 초기 사회주의 체제와 경쟁하면서 자본가들이 노동자 혁명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서부발전 일터에서는 매년 1명 꼴로 하청 노동자가 죽었다(2012~2017년 8명 사망). 노동자가 죽고 죽고 또 죽어도 직ㆍ간접 책임이 있는 업주의 안락한 삶은 위협받지 않으니, 죽고 죽고 또 죽도록 내버려 둔다. 남의 자식이 몸이 잘리고 검은 탄을 뒤집어 쓴 채 사망했지만 그 원청의 임원들은 자기 자식 성적을 걱정하고 집값 오르는 것을 즐기는, 소위 ‘좋은 인생’을 방해 받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한국이 산재 사망률 1위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일련의 산재 사망사고에 분노가 큰 이유는, 그 저변에 ‘고의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차 하는 한번의 실수가 아니라, 반복 되고 반복 되는데도 바꾸지 않는 그 ‘고의’가 우리의 심장을 아프게 한다. ‘임원들 고액연봉은 안 아깝지만 안전 설비 비용 3억원은 아까워서’ ‘어차피 처벌 안받으니까’ ‘내 자식 아니니까’ ‘재계가 꽉 쥐고 있으니 강력한 법이 통과될 리 없으니까’. 칼로 누군가를 직접 찌르지 않아도, 사람이라는 것은 이렇게 잔인하다.

답은 나와 있고, 너무나 간단하다. 영국은 ‘기업살인법’을 제정하고 안전보건법령 위반에 막대한 벌금을 부과(2016년 한해 약 7,000만 파운드로 약 1,000억원)하면서 산재 사망자(지난해 144명)가 크게 줄었다. 답이 간단해서, 그 간단한 것 하나 못하는 우리가 더 절망스럽다.

이진희 기획취재부 차장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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