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치면서 누구나 올 한 해는 어쨌는지 돌아보겠지요? 송년유감(送年有感)이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그런데 만약 한 해를 보내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그래서 아무런 느낌 없이 한 해를 보낸다면 그것은 한 해를 잘못 살았거나, 잘 살았다고 아무리 자신이 생각해도 그것은 열심히 산 것인지는 몰라도 잘 산 것은 아닐 겁니다. 잘 산 것은 행복을 느껴야 잘 산 거지 아무런 느낌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산 것은 결코 잘 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느낌이 없는 삶은 그 얼마나 삭막하고 윤기가 없는 삶입니까? 그러니 돌아보고 드는 느낌이 비록 상실감이나 허무감과 같은 부정적 느낌일지라도 한 해를 돌아보는 삶이라야 잘 사는 삶이고 그래야 지난 한 해 잘못 살았더라도 새해에는 잘 살 수 있을 겁니다.

이래야 되는데 그런데 만일 한 해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으면 어떤 감정이 남겠습니까?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부정확하고, 막연하며, 부정적이기만 한 감정 아닐까요? 그리고 이 다사다난하다는 표현이 얼마나 상투적이고 무성의한 표현입니까? 연말이 되면 너도 나도 올 한 해 참으로 다사다난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면 이런 얘기가 없었던 해가 한 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일이 참 많았다고 하는데 죽을 때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 해 동안 당연히 많은 일이 있었을 거고, 그 많은 일 중에는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었을 텐데 어찌 어려운 일만 많았다고 하는 것입니까? 왜 안 좋은 기억만 남기고 새해를 맞이하는 겁니까?

여기에는 틀림없이 안 좋은 것만 기억에 남기는 무의식이 작용할 것입니다. 전에 이미 얘기한 적이 있지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 중에 ‘전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 수도원에 들어온 초심자들 중에 입회 첫해에 떠나려는 사람이 꼭 있는데 그때 왜 떠나려 하느냐고 물으면 ‘우리 집에는 사랑이 전혀 없습니다.’는 식으로 답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전혀 사랑이 없냐고 물으면 깜짝 놀라며 자기가 ‘전혀’ 없다고 얘기했냐고 되묻습니다.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그 말을 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확하지 않은 ‘부정적 무의식’ 때문에 수도원을 떠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프로 기사들이 바둑을 다 두고 복기(復棋)를 하듯 그동안 수도원 안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사랑들을 그와 함께 하나하나 복기(復記)를 합니다. 그렇게 복기를 하면 사랑이 없었던 것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많은 사랑을 나누고 살았음을 알 수 있게 되고, 공동체를 떠나게 했던 부정적 마음이 공동체에 대한 사랑, 감사와 같은 긍정적 마음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부정적 무의식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왜입니까? 제 생각에 그것은 좋은 것만 있고 나쁜 것은 하나도 없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입니다. 100% 완벽하게 좋기만을 바라면 90만큼 좋아도 안 좋은 10만 보이고 안 좋은 것만 무의식에 남기는 거지요. 그런데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 0에서부터 하나하나 따져 가면 안 좋은 10보다 훨씬 더 많은 90의 좋은 것들이 보이지요. 이것이 좋은 것의 복기이고, 긍정적인 한 해 돌아보기이며, 이렇게 복기를 하는 것이 행복 비결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한 해가 한 주일도 남지 않은 지금,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을 소개할까 합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데 그냥 돌아보면 나이 먹어서인지 뭔 일이 있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일기장을 훑어봤는데 지금은 일기장이 드문드문하니 저의 1년 일정이 담긴 지난 달력을 훑어보면서 우선 있었던 일들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그중에서 참으로 좋았던 일들을 추려내고 감사의 목록을 다시 작성하고 감사드려야 할 사람의 목록도 작성을 합니다. 그러면 자연 감사가 송년유감이 됩니다.

김찬선 신부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