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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지구촌 인물] 난간 매달린 아이 구조, 프랑스 시민권 얻었지만... 정치권 ‘反이민’ 시각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입력
2018.12.26 04:40
수정
2018.12.26 12:2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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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리의 ‘스파이더맨’ 불법체류자 마무드 가사마

5세 남자아이를 구한 마무드 가사마(오른쪽)이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자료사진
5세 남자아이를 구한 마무드 가사마(오른쪽)이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하자 용기가 샘솟았다. 아이를 구하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신이 우리를 도왔다.”

지난 5월 26일(현지시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중계를 시청하기 위해 여자친구와 함께 길을 걷던 말리 청년 마무드 가사마(26). 귀가길 발걸음을 재촉하던 가사마가 파리 18구의 막스 도모이 거리를 지날 때, 갑자기 수백명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길이 닿은 곳은 인근 아파트 5층. 그곳에는 작은 남자아이가 발코니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이는 7층에서 떨어지다 천우신조로 5층 난간을 붙잡은 상황. 가사마는 지체 없이 아파트 난간을 밟으며 외벽을 타고 올라갔다. “빨리, 더 빨리”라는 사람들의 외침 속에 침착하게 5층에 도착한 그는 오른팔을 뻗어 아이를 붙잡아 아파트 안쪽으로 옮겼고, 지상에선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가사마가 아이를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30여초의 동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는 하루 아침에 명사가 됐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마크롱 대통령은 그를 엘리제궁으로 불러 용기를 치하한 뒤, 불법체류자인 그에게 프랑스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의 영웅적 행동은 3년 전 풍자잡지 샤를르 에브도 테러범들이 슈퍼마켓에서 인질극을 벌일 때 기지를 발휘, 수십명의 손님들을 지하 냉장고에 숨겨준 말리 출신 점원 라싸나 바실 리(27)의 사연과 함께 노래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가사마는 15세 때 고국 말리를 탈출해 니제르, 리비아를 전전하다 지중해를 건너 지난해 9월 프랑스로 들어온 뒤 건설노동자로 불법체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는 파리시장의 약속에 따라 이번달부터 한 소방서에서 월 462유로(약 60만원)를 받으며 10개월 간의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형편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저소득층 밀집지역에서 벗어나 아파트를 구할 수 있게 됐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집값을 치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가사마의 이런‘행운’은 역설적으로 유럽행을 택했다가 목숨을 잃고 실종되거나, 유럽땅을 밟더라도 차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현실을 환기시켰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를 만나 “프랑스는 이런 용기를 바란다”면서도 “이런 특별한 행위가 난민정책을 바꾸지는 못한다”면서 반(反)이민 정책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세계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유럽으로 향하던 이민자ㆍ난민 중 지중해에서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사람은 2,200명을 넘었다. 반(反)이민 기조를 자극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유럽의 정치세력도 날로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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