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지원인력의 월권

지금은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아들이 일반학교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면 제일 많이 생각나는 사람이 실무사다. ‘지원사’라 불리는 실무사는 학교 현장에서 특수교사를 보조하기 위한 특수교육 지원인력으로, 공익근무요원도 이에 속한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특수교사보다 실무사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눴던 게 기억에 남는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이라 아들의 학교생활은 교육보다 생활지도 쪽에 무게가 실려 있었고, 그러다 보니 특수교사는 ‘교육’이 절실한 고학년에 더 집중을 했다. 상대적으로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이동하고 등 생활지원의 비중이 높은 아들은 실무사가 담당하다시피 했다.

그분은 좋은 실무사였다. 스스로가 장애인 자식을 둔 엄마이기도 해서인지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아들을 ‘일거리’가 아닌 자신의 막내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실무사와는 주로 아들의 학교생활에 관해 얘기를 나눴지만 어쩌다 사적인 대화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그는 실무사의 권한이 높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

당시의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아들을 학교와 치료실만 데리고 다니며 세상과는 단절돼 살던 시기였기에 학교라는 시스템을 잘 몰랐고, 특수교육에 관한 이해도 부족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특수교사와 실무사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기류는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인 내 눈에도 ‘뭔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보이긴 했다.

특히 특수교사가 실무사와 엄마들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으면서 둘 사이의 ‘기묘한 기류’가 점차 두드러졌는데, 특수교사는 자신이 부모들에게 전달하지 않은 내용이 실무사를 통해 전달되는 걸 경계했다. 엄마인 내 입장에서는 특수교사의 얘기도 듣고 싶지만 아들과 온종일 붙어서 사는 실무사의 얘기가 더 궁금하기도 했는데, 실무사의 의견도 특수교사를 통해 한 번 걸러서 전달이 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아들의 일상이 자세히 알고 싶을 때면 특수교사의 눈을 피해 복도에 숨어 실무사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 자연스럽게 심정적으로도 특수교사보단 실무사를 더 의지하게 되었다.

당시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특수교사보다 내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실무사가 더 중요한 존재였고, 무슨 권한인지도 모르면서 그가 강조한 대로 실무사의 권한이 확대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무사에 대한 최초의 경험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특수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단기 방안으로 실무사 충원을 주장했다. 아무래도 임의로 뽑혀 온 공익근무요원보다야 장애 학생을 지원하는 게 직업인 실무사가 낫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실무사 확충을 주장하자 엄청난 후폭풍이 불어왔다. 특수교사들이 나서서 반대한 것이다. 처음엔 이해가 안 갔다. 특수교사 수를 늘려서 1인당 맡는 학생 수를 줄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건 내년부터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장기과제로 추진하고, 일단 실무사 충원을 단기과제로 설정하면 교사들한테도 좋은 일일 텐데 왜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지금은 안다. 왜 그들이 반대했는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기묘한 기류’라 표현했던 부분. 실무사의 권한 강화와도 연결될 수 있는 그 부분이 문제였던 것이다.

특수교사와 실무사 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선 이들의 관계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확실한 건 특수학급에서의 선장은 특수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특수교사가 선장이라면 실무사는 선원이다. 그건 당연한 명제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는 이 부분에 있어 생각보다 많은 마찰이 일어나고 있었다. 선원이 선장의 뜻을 거스르고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젓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곤 했다는 뜻이다.

모든 교육엔 일관성이 중요한 요소인데 장애 학생의 경우엔 더 그렇다. 비장애 학생이 서너 번이면 배울 것도 장애 학생의 경우엔 수십, 수백 번에 걸쳐 배우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한 가지 사안이라도 일관성 있게 가는 게 중요한데 일부 실무사가 자신의 권한으로 특수교사와 다른 방식으로 지도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학생은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문제는 실무사가 특수교사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 이를 제지할 제도적 장치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었다. 실무사는 교육공무직으로 무기계약직이다. 업무 평가 대상도 아니고, 초기 임용 때를 제외하곤 연수의 의무가 없으며, 고등학교 졸업만 하면 누구에게나 자격이 부여되고, 노조가 탄탄해서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돼 있다. 직업적 안정성은 있으되 이들에 대한 중간 관리와 평가 체계는 없다 보니 특수교사와 실무사 간 문제가 발생하면 그건 ‘교육의 문제’가 아닌 개인 간 ‘감정의 문제’가 되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특수교사 중에선 골치 아픈(?) 실무사 배치를 스스로 거부하고 혼자서 6명의 학생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공익근무요원을 가르쳐가면서 함께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진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실무사들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실무사 역시 교육공무원이지 허드렛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다만 권리를 찾기 위해 본래 자신들의 직업적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어느덧 실무사의 권한 강화 요구가 학생들과도 상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일부 실무사들이 정규수업 이후에 진행되는 방과후수업은 자기들의 업무 범위가 아니라며 빠지겠다는 요구를 해 온 것이다. 통상 업무시간(하루 8시간)도 지나지 않았고 학생은 아직 학교에 있는데 그들을 지원할 실무사는 퇴근하겠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국 교육부가 방과후 지원도 실무사의 영역이 맞는지 법제처에 해석을 요구했고, 법제처는 방과후교실도 교육활동이 맞으므로 학생 지원에 참여하는 게 당연하다고 결정했다. 하루 8시간 근무시간 내에선 수당 없이 당연히 참여하고 혹시라도 8시간 이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으면 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 같은 역학관계, 권한 강화를 요구하는 실무사와 교실 안에서 자꾸 부딪히는 특수교사 사이의 미묘한 기류, 그 사이에서 낭비되는 에너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무것도 모르던 내 눈에도 뭔가 이상해 보였던 특수교육 현장에 숨겨진 민낯이었다.

물론 모든 관계가 다 이렇다는 건 아니다. 특수교사와 실무사가 서로를 의지하며 학급을 꾸려나가는 좋은 사례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두 집단 간 갈등은 일부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많은 특수교사들이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나는 학교 밖에 있는 엄마였기 때문에 그동안 이 같은 학교 내부의 속사정을 자세히 몰랐던 것이다.

특수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한다. 누구나 하는 말이다. 어떻게 해야 특수교육이 정상화될까? 학교 현장의 어려움부터 풀려야 공교육이 정상화된다.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면 그게 바로 정상화로 가는 첫걸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무사와 특수교사 간의 불필요한 긴장 관계도 해소될 필요가 있다. 이는 실무사들이 교사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정해진 범위에서만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본다. 만약 이들이 월권을 행한다면 제재할 수 있는 체계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최근 나의 깨달음이다.

물론 애초에 주장했던 것처럼 실무사 인력 충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인원 충원과 함께 이 같은 규칙과 견제 시스템도 함께 만들어져야 특수학급에서 교사가 제대로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교실에서의 선장은 교사가 되어야 한다. 지원인력이 상전이 되어버리거나, 학생이 아닌 지원인력을 지원하느라 교사의 에너지가 빠져나가면 안 된다.

교사에게 교실의 주도권을 찾아줘야만 교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여건이 갖춰진 후에야 무능력한 교사, 인권 감수성 낮은 교사에게 장애 학생을 잘못된 방향으로 교육하고 있는 책임을 ‘당당히’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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