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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6급 공무원에 쩔쩔매는 아마추어 정부

입력
2018.12.23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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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T11_3439445] 최교열 자유한국당 의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특별감찰반 정권 실세 사찰 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첩보보고서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2018-12-20T11_3439445] 최교열 자유한국당 의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특별감찰반 정권 실세 사찰 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첩보보고서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불법사찰이 세상에 드러난 계기는 이른바 김종익 사건이다. 국민은행 자회사 KB한마음 사장이었던 김씨가 2008년 정부를 비판한 쥐코 동영상을 무심코 자신의 블로그에 링크한 게 발단이었다. 국민은행은 당시에도 공기업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윤리지원관실 점검1팀 직원들은 국민은행에 블로그를 폐쇄하고 김씨를 사임시키라고 압력을 넣었다. 말을 안 들으면 은행장이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겁도 줬다.

얘기를 전해 들은 김씨는 대표이사에서 사임하고 회사 이름을 바꾼 뒤 도망치듯 일본으로 출국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윤리지원관실은 김씨가 회사 지분도 내놔야 한다고 압박했다.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회사 경리 서류를 가져갔고, 석 달 뒤 김씨를 공금 횡령 등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나중에 MBC ‘PD수첩’ 보도로 김씨가 명예를 회복하고 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사법 처리된 결과는 알려진 바와 같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근무 시절 비위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태우 수사관이 민간인 동향 첩보를 작성했으며, 여권 인사 비위 첩보를 작성했다가 미움을 받아 쫓겨났다고 연일 폭로전을 벌이고 있다. 김 수사관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 이어 3연속 청와대 파견 근무를 할 정도로 잘 나가는 직원이었다. 그가 낸 첩보 보고서 20여건이 관련 기관에 이첩된 것만 봐도 부정부패 감시 업무에 능통한 베테랑 수사관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김 수사관 폭로 내용에는 팩트를 교묘하게 비틀거나 논리를 비약한 부분이 적지 않다. 현장 특감반원이 자의로 직무 범위 외 정보를 수집한 것과 특감반 상관이 조직적으로 탈법적 지시를 내린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김 수사관은 지난해 7월 특감반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과거에 했던 대로 코리아나 호텔 사장 배우자 동향 등을 보고했다가 “앞으로 이런 첩보를 수집하지 마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 후 1년 동안 민간인 동향은 보고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 수사관은 이런 사실은 교묘히 빼놓고 얘기하고 있다.

청와대가 비리 의혹이 제기된 여권 인사를 감쌌다는 주장도 아직은 가설 수준으로 봐야 한다. 증거에 기반한 수사로 확인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 수사관이 현 정부에선 부당한 관행(민간인 동향 수집 또는 찍어내기 감찰)을 요구하지 않아 근무하기 편하다고 말했다는 주변 특감반 동료들의 반대되는 증언이 공개됐다. 검찰 수사에서 시시비비가 밝혀지겠지만, 이번 사태가 10년 전 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벌인 민간인 사찰이나, 박근혜 정부 시절 문고리 3인방의 국정농단을 담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청와대의 책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먼저 특감반원이 민간인 동향을 알아봐도 이를 감시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미비했다. 개인의 일탈이라면서 초유의 특감반 전원교체로 일을 키우고, 그 배경에 대해선 함구한 조치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 바람에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대통령의 입에 이목이 쏠렸고, 하필 “국내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철벽을 쳤다가 불통의 대명사가 돼버렸다.

적폐청산의 칼날을 휘두른 현 집권세력은 훨씬 더 엄격한 도덕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특감반을 지휘하는 반부패비서관이 뒤늦게 수습에 나서며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이지만, 사태 초기 팩트에 대한 반박 없이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흐리고 있다”는 식의 수사적 대응은 반감을 키우는 역할만 했다.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 표명도 오만한 태도로 비칠 수 있었다. 지난 주말 갤럽 여론조사에서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지르는 ‘데드 크로스’가 처음 발생했다. 어쩌면 불법사찰보다 6급 공무원의 폭로에 쩔쩔매는 아마추어 정부에 실망한 여론이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영화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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