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삼성화재배 준우승 안국현 9단
칭찬 인색한 中 커제도 인정
“늦은 입대 공백도 이겨낼 것”
21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난 안국현 9단은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에서 비록 커제 9단에게 패했지만 후회는 없다”며 “’25세 이전에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어렵다’는 불문율을 깼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불문율을 깼다는 데 만족합니다.”

소문대로 낙천적인 성격은 인터뷰 초반부터 묻어났다.거의 손에 들어왔던 세계대회 우승컵을 일보 직전에서 놓쳤기에 아쉬움이 남아 있을 법도 했지만 기우였다.오히려 ‘혈기 왕성한 25세 이전에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어렵다’는 바둑계 정설을 넘어선 데 만족했다.이달 5일 막을 내린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대회에서 중국 바둑의 간판 스타인 커제(21) 9단에 1승2패로 아깝게 준우승에 그친 안국현(26)9단이 전한 올해 반상(盤上) 복기는 그랬다. 21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난 안 9단은 “이번 삼성화재배에서 패했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바둑 내용도 나쁘지 않았다.3번기(3판2선승제)로 진행된 올해 삼성화재배에서 첫 판을 가져가면서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던 안 9단은 결승국인 세 번째 대국에서도 이길 기회는 충분했다. “좀 더 침착하게 뒀으면 우승도 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제가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어요.그렇지만 그것도 제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제가 부족한 거죠.더 노력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성격으로 잘 알려진 안 9단이었지만 자신에 대한 냉철한 진단 또한 빼놓지 않았다.

안국현(맨 오른쪽) 9단이 이달 8일 경기 고양시의 삼성화재 글로벌캠퍼스에서 커제 9단과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3국을 두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하지만 안 9단의 기력은 이미 초일류급에 올라섰다는 평이다. “안 9단은 한국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는 선수입니다.실제로 강한 기사입니다.비록 이번엔 이겼지만 후반에 위험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제가 안국현 9단 보다 낫다고 할 순 없습니다.중국의 어떤 선수도 안국현 9단을 쉽게 보진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기로 소문난 천하의 커제 9단조차 대국 직후 안 9단을 치켜 세웠다.

커제 9단과 세계대회 맞대결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안 9단은 무명에 가까운 기사다.안 9단의세계대회 결승 진출은 올해 삼성화재배가 처음이다.우승도 지난해 국내대회인 ‘제22기 GS칼텍스배’의 타이틀 획득이 유일하다.이 또한 입단 이후 7년5개월 만에 얻어낸 기록이다.안 9단은 바둑 애기가였던 부친의 권유로 초등학교 2학년 당시,반상(盤上)에 입문한 시기까지 고려하면 24세 10개월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린 셈이다.안 9단은 덕분에 GS칼텍스배의 최고령 우승자로 등극했다.

이처럼 대기만성형 기사로 성장한 안 9단의 기력 향상엔 인공지능(AI)의 도움이 컸다. “AI는 기존 정석을 포함해 그 동안 굳어졌던 바둑계 패러다임까지 완전히 바꿔 놓았어요.충격이었죠.그렇지만누구나 정상에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도 심어줬어요.” 평범했던 안 9단에게 AI는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해 준 셈이었다. 2016년 구글 AI로 깜짝 등장한 알파고는 당초 예상을 뒤엎고 세계 최정상의 이세돌(35) 9단에게 4승1패로 완승하면서 세계 바둑계에 충격을 던진 바 있다.

21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난 안국현 9단이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에서 중국 커제 9단과 벌였던 결승 3국을 복기하고 있다.

하지만 안 9단은 AI 출몰로 인해 바둑계에 불어 닥칠 위기감도 드러냈다.AI가 바둑계에 판도변화를 가져온 건 사실이지만프로바둑기사들에게도 현실적인 과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프로바둑기사들이 현역 은퇴 이후 가장 많이 하는 게 바둑학원 같은 곳에서 후진 양성하는 겁니다.그런데 AI가 나오면서 어려워진 게 사실입니다.” AI로 인해 은퇴한 프로바둑기사들의 주요 일자리인 바둑학원의 입지가 크게 줄었다는 설명이었다.요즘엔 현역 프로바둑 기사는 물론이고 연구생들까지 모두 AI로 공부하는 게 국내외 바둑계의 기본 흐름이다.

내년 입대를 앞둔 안 9단은 인터뷰 말미에선 또 다른 목표도 제시했다. “10대들이 주력인 바둑계에서 군 복무로 2년여 동안의 공백기가 불가피한 예비역들이 성적을 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거든요.그래도 제가 돌아와서 그 하늘에서 별을 꼭 따보고 싶습니다.” 예비역으로 돌아온 훗날 세계대회 우승컵을 반드시 가져오겠다는 안 9단의 포부에선 강한 자신감이 전해졌다.

글·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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