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이동기 ‘현대사 몽타주’
지난 8월 독일 켐니츠 카를 마르크스 동상 앞에서 극우단체들이 '테러를 위한 접근에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반난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켐니츠 AP 연합뉴스

서양사 연구자인 저자에게 역사란, ‘성공적인 진보의 증거’가 아니라 ‘잔혹한 실패로 얼룩진 반면교사’다. 자부심보다 성찰을 내세운다. 그렇기에 저자의 눈에 20세기 현대사는 곧 ‘장기 폭력사’다.

가령, 1945년 5월 8일은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다. 동시에 독일 여성에 대한 미ㆍ소ㆍ영ㆍ프 4개 전승국 군인의 성폭행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동시에 프랑스는 아프리카 전선 승리를 도왔던 알제리의 독립요구를 잔인하게 짓밟기 시작했다. 전쟁이 없었다는 건, 서구 주요국들이 보시기에 없었다는 얘기다. 한국전쟁이 괜히 ‘잊힌 전쟁’이겠는가.

이런 서술에서 특이한 점은 저자가 ‘주체’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장기’란 말이 붙는 역사 서술은 ‘구조’로 ‘주체’를 지운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원인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이라는 구조적 모순의 누적된 결과로, 어차피 한번은 터졌을 일로 여긴다. 저자는 “이런 식의 역사 이해는 당시 행위자들의 전쟁 정당화 논거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런 요인도 있지만, 그보다 더 직접적인 원인은 전쟁 회피 노력을 게을리한 각국 지도자의 우유부단과 무능력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를 뒤집은,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라는 외침이다.

나치 문제도 그렇다. 2015년 오스카어 그뢰닝 유죄 판결이 중요하다. 아우슈비츠의 하사관이었던 그뢰닝은 전후 ‘참상의 증언자’였다. 증언하되 처벌은 피했다. 지시를 단순 이행한 하급 직원이었으니까. 그런데 21세기 들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 ‘작은 나치’들이 실제 현장에선 상당한 재량권을 쥐고 있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안 할 수 있었던 일들을 그냥 했거나, 오히려 더 열심히 했다는 얘기다. ‘작은 나치’가 적지 않은 한국이, 일본과 비교되는 독일의 과거사 청산을 진심으로 칭송할 수 있을지, 묘한 웃음이 나는 대목이다.

현대사 몽타주
이동기 지음
돌베개 발행ㆍ422쪽ㆍ2만원

흥미로운 대목은 독일의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가 난민, 테러 문제 등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한 ‘영웅적 초연함’ 혹은 ‘뚱한 무관심’ 개념이다. 따지고 보면 폭력을 정당화하는 건 공포다. 너무 자세하고 세부적인 혐오와 범죄 묘사가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확산되는 이 시대에, 그렇게나 공포를 부채질하는 소식들에 가장 굳건히 맞설 수 있는 방법은, 끊임없는 검색과 비교 분석을 통한 송곳같이 날카로운 팩트 체크가 아니라 오히려 초연한 무관심이 아닐까. 의인(義人)은 대개 초인(超人)이기보다 우직한 범인(凡人)이니까.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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