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정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한국사업단장(왼쪽)은 장인철 논설위원과의 대담에서 “다국적 핵융합 ‘인공태양’ 연구개발에서 우리나라가 주요 기술을 담당하는 선도적 위상을 갖게 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최근 원자력과 관련해 기분 좋은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답답한 사회적 갈등을 잠시 잊을만한 소식이다.

인류 궁극의 에너지원이 될 것으로 꼽히는 ‘인공태양’이라는 말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다국적 프로젝트 개발로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 그 거대 장치가 건설 중인데, 한 국내 기업이 중요 부속장치를 공급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더 놀라운 건 기업 한 개 정도가 아니라, 국내 핵융합 관련 기술력이 인공태양 개발을 위한 국제협업에서 이미 중추적 역할을 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공태양 개발 프로젝트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다. ITER 프로젝트는 1988년 미국과 유럽연합(EU, EU 출범 전 ‘유럽원자력공동체’ 자격), 구 소련, 일본 등 4개국 참여로 출범했다. 이후 중국, 인도, 한국이 합류했다.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모두 원자력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후발 참여국인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ITER 조직의 2인자인 이경수 사무차장 등이 핵심 기술책임자로 다수 포진해 있고, ITER 핵심장치 대부분에 국내 제품과 장치가 쓰이고 있다. ITER 프로젝트와 인공태양 연구현황, 실용화 가능성, 우리 기술력 등을 정기정 ITER 한국사업단 단장(공학박사)에게 들었다.

-ITER 프로젝트 내용과, 그게 인공태양 개발사업으로 지칭되는 배경이 무엇인지.

“태양에서는 1초 동안 6억 5,700만 톤의 수소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6억 5,300만 톤의 헬륨을 생성하고, 태양계 전체에 빛과 열을 공급할 정도의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핵융합 전 수소와 생성된 헬륨 간에는 400만 톤의 질량 차이가 생기는데, 이걸 핵물리학에선 핵반응 전후의 ‘질량결손’이라고 한다. 이 차이 나는 질량이 빛과 열, 곧 에너지로 바뀐 것이고, 그걸 원자력이라고 한다. 발생한 에너지의 양은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물리학 공식 ‘E=mc²(에너지=질량×빛의 속도의 제곱)’에 따라 측정되는데, 질량결손이 아무리 적어도 거기에 빛의 속도(초당 약 30만㎞)가 제곱되어 곱해지니까 에너지의 양은 상상 이상으로 막대해지는 것이다. ITER 프로젝트는 태양과 유사한 수소 동위원소들의 핵융합 반응을 인공적으로 일으켜 막대한 에너지를 얻는 원자력발전 방식이다. 그래서 인공태양 개발이라고도 한다. 기존 원전이 우라늄의 핵분열 반응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과 달리, ITER 프로젝트는 수소 동위원소의 핵융합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인공태양이 궁극의 미래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이유는 뭔가.

“현재 인공태양 개발 프로젝트인 ITER에서 핵융합 반응에 쓰는 수소 동위원소는 중수소(D2)와 삼중수소(T2)다. D2는 바닷물에 거의 무한정으로 녹아 있다. T2 역시 리튬을 이용해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다. 기존 원전과 달리, 핵융합 인공태양은 골치 아픈 핵폐기물 문제도 없고, 핵융합로가 사고로 파손될 경우도 즉시 반응이 중단되기 때문에 원전사고 같은 위험도 없다. 따라서 실용화만 된다면 기존 원전은 물론,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같은 어떤 친환경 발전방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 싸고, 안전하며, 무한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ITER를 비롯한 국제 인공태양 개발 현황과 실용화 가능성을 평가한다면.

“인공태양 개발 연구는 ITER 같은 다국적 프로젝트와 각국별 독자 연구개발이 공존, 혼재하는 양상이다. 핵융합 공간 개발만 봐도 미국은 ITER를 통해 도넛형 융합로인 ‘토카막’ 개발에 참여하면서도, 레이저 핵융합 방식도 별도 개발 중이다. 반면 독일은 ‘스텔러레이터’라는 독자적 핵융합로를 개발해왔다. 인공태양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도 독자 연구개발을 통해 최근 핵융합 플라즈마 온도를 1억도까지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국제 협력과 경쟁이 병존하는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 실용화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높은 산들이 많다. ITER 프로젝트는 2025년까지 융합로 건설을 마치고 2026년부터 시험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중국은 2030년대 전력 생산을 선언했다. 일반적으로 핵융합에너지 실용화 시점은 2050년대로 보고 있다”

-인공태양 실용화를 위해 남은 주요 기술적 과제는 어떤 것들인가.

“태양에서는 엄청난 중력 때문에 중심부 온도 1,500만 도에서도 핵의 반발력을 이기고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반면 중력이 약한 지구에서는 적어도 태양 온도의 10배인 1억5,000만 도까지 핵의 온도를 올려야만 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핵융합이 시작될 정도로 외부 가열을 통해 융합로 내부 온도를 1억5,0000만 도로 4초 이상 유지되도록 올리는 일이 핵심 과제다. 지금은 0.3초 내외 유지한다. 초고온 유지를 위해서도 융합로 내 불덩어리에 해당하는 플라즈마의 난기류를 적절히 제어하는 기술이 절실하다. 끝없는 반복실험을 통해 제어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융합로에 자기력을 생성하는 초전도 코일의 개량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후발주자인 셈인데, 어떻게 ITER에서 중추적 역할을 할 정도로 기술적 도약을 이뤘나.

“(웃음) 국운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계기가 있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 때인데, 국내외 학자들의 의견을 과감히 수용해 한국형 핵융합실험로 건설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지금 여기, 국가핵융합연구소 내에 있는 ‘케이스타(KSTAR)가 그것이다. 50~60년대에 핵융합 발전 개발에 들어간 선진국들에 비해 30년 이상 늦게 시작한 한국이 다짜고짜 핵융합실험로를 짓겠다고 하자 해외 연구자들이 웃었다. ITER 설계를 벤치마킹했다. 이른바 ‘중간진입전략’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최초로 핵융합로의 자기력 발생을 위해 초전도코일을 활용해 장치 안정성을 높였고, 2008년 첫 운전에서 단 번에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KSTAR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한 기술력과 연구인력이 지금 ITER 프로젝트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 원동력이다”

-ITER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력 및 기술 참여 현황은.

“KSTAR를 통해 양성된 인력이 ITER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경수 사무차장 외에 최창호 박사가 융합로 내부 진공용기 총괄 제작 책임역을 맡고 있다. 오영국 박사는 장치 운영 책임자이고, 양형렬 박사는 앞서 말한 도넛형 융합로 토카막 장치 조립 제2 책임자를 맡았다. 책임자급 연구인력은 그 외에도 더 있다. 이번에 국내 기업 비츠로테크가 공급키로 한 ‘IVC BUSBAR’ 장치는 국내 제품 공급의 일부일 뿐이다. 융합로 내 안정적 자기장 생성을 위한 초전도체 케이블, 진공용기 본체, 진공용기 포트(진공용기와 외부 저온용기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 ITER 주장치 조립 장비류 등에도 국내 제품이 20~70% 정도 쓰이고 있다. ITER 내부에서는 ITER가 한국 프로젝트라는 말까지 할 정도다”

-우리나라의 핵융합 기술력을 평가한다면.

“KSTAR를 통해 국내 핵융합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한 건 사실이다. 플라즈마 형성 및 제어 기술은 KSTAR 실험을 통해 미국, EU, 일본 등의 기술을 거의 따라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삼중수소(T2) 증식 기술이나 디버터 열추출 기술 등은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 냉정히 말해 KSTAR를 통해 좋은 실험결과를 많이 내거나, ITER 기여도가 높다고 해서 우리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ITER 회원국 중에서 최고 수준의 기여국이 됐다는 건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 중요한 건 지금의 기술적 수월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핵융합 관련 인력의 양성이 절실하다. 인공태양 연구개발은 파생 기술력의 성장만 감안해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공태양 역시 원자력발전의 일종이기 때문에 묻는다. 지금 원전 정책을 둘러싸고 정부와 원자력 학계 간에 벌어지는 갈등과 논란을 어떻게 보는가.

“사실 핵융합 발전과 에너지정책 전반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정책 갈등에 관해 잘 모른다. 다만 에너지가 국가발전의 핵심 인프라라고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풍부하면서도 안전하고 값싼 에너지가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낭비적 논란보다는 정말 열린 마음으로 마주앉아 소모적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ITER 사업단으로서는 불안 없이 핵융합이 빨리 개발될 수 있게 나름의 노력을 경주한다는 각오다.

-ITER 프로젝트나 인공태양 개발 지원과 관련해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KSTAR를 가동 중인 국가핵융합연구소든 ITER 한국사업단이든 더 많은 인력양성이 필요하다. 막연히 인력을 늘려달라는 게 아니다. ITER 참여국별 파견인력 규모만 봐도 EU가 594명, 중국이 81명이다. 반면 우리는 중추 기여국이면서도 33명에 불과하다.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보낼 인력이 없어서다. 적어도 우리가 분담금을 내는 만큼 기술을 파견할 수 있으면, 그것 역시 고용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께서 11월8일 포항 포스텍 4세대 방사광 가속기 연구소 방문 때, ITER를 예로 들며 연구가 곧 산업이며 비즈니스인 시대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맥락에서 핵융합 인력 양성이 신규 고용과 맞닿은 일자리로 인식되기를 희망한다”

인터뷰=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사원)

□용어설명

질량결손: 질량결손이란 핵분열과 핵융합 등 다양한 핵반응에서 반응 전과 후의 원자질량에 차이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 때 질량 차이는 아인슈타인의 에너지-질량 등가 공식인 ‘E=MC²’에 따라 전환 에너지량으로 산정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의 토대가 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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