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식 돼지 농장에서 사육되던 비육돈의 눈빛이 애처롭다. '사랑할까, 먹을까' 저자 황윤 감독 제공

2019년은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의 해라고도 한다. ‘기’(己)가 땅을 뜻하는 황(黃)을 의미해 황금돼지띠가 된다는 설명이다. 돼지가 재물과 행운을 상징한다며 사람들은 황금돼지의 해를 반기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 돼지의 삶은 처참하다. 돼지의 자연 수명은 최소 10년이지만 대부분의 돼지들은 태어나자마자 6개월 만에 도축된다. 짧은 삶이지만 그 시간 마저 돼지들에게는 녹록지 않다. 삼겹살을 즐기는 우리나라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는 1,000만 마리 이상이다.

◇농장동물 도태 규정ㆍ가이드라인 전무

최근 경남 사천에 있는 한 돼지 농장이 새끼 돼지를 ‘도태’시키는 영상이 동물단체에 의해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영상에는 농장 직원이 어린 돼지 수십 마리를 좁은 공간에 몰아 넣고 둔기로 머리를 내려쳐 죽이는 모습과 고통 속에서 새끼들이 발버둥을 치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해당 농장은 ‘병이 있는 새끼 돼지들을 도태시킨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동물자유연대와 카라는 동물보호법 상 같은 종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것을 근거로 해당 농장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또 동물보호법상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는 타격법, 전살법, 가스법 등을 이용해 고통을 최소화하고,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되어있는데 영상 속 새끼돼지들은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 팀장은 “농장에서 아프거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동물을 도태시키는 건 흔하지만 이에 대한 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어미돼지는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공간에서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스톨'이라는 쇠틀에 갇혀 새끼를 낳는 일을 반복하다 생을 마감한다. '사랑할까, 먹을까' 저자 황윤 감독 제공

정부와 농장동물 수의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사천 농장 사태가 모든 돼지 농장에서 행해지는 일반적 행태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농장이 인도적으로 도태되고 있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돼지 농장을 다녀온 황윤 감독은 “나름 윤리적으로 돼지를 사육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농장이었음에도 1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새끼 돼지가 눈을 깜빡이며 분뇨와 퇴비 속에 버려져 있었다”며 “과수원에 썩은 과일처럼 쓸모 없다는 이유로 솎아낸 것이 잔인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가축전염예방법에 보면 도태권고 대상 가축의 범위와 기준 등이 나와있다. 이는 가축의 전염병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기준일뿐 어느 정도 증상을 보일 때 도태 대상으로 삼을지, 사육두수가 얼마나 과다할 때 도태시킬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규정은 아예 없다. 위의 사천 농장 사례처럼 농장 종사자들이 임의대로 도태 대상을 선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농장 종사자들이 제일 먼저 해당 동물이 도태 대상인지 제대로 판단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도태시킬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축산컨설팅 업체인 한별팜텍의 김동욱 돼지전문 수의사는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양돈협회나 양돈수의사협회 등이 제작한 도태 대상 선정과 인도적 도살법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교육프로그램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마저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농장동물의 사육기준을 비롯해 관행적으로 해오던 도태 행태에 대해 재점검하고 있다. 이승환 농식품부 동물복지팀 사무관은 “동물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사육과 도축 시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이천에 있는 한 동물복지 농장의 새끼돼지. 꼬리와 이빨을 잘리는 대신 소금블록, 체인 등 장난감을 받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픈 돼지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

사실 돼지들이 건강하면 농장주 입장에서는 애써 도태시킬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열악한 사육환경에 의해 돼지들은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 새끼돼지는 태어나자마자 송곳니가 갈리고 꼬리가 잘린다. 돼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돼지의 꼬리를 씹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미돼지는 ‘스톨’이라고 불리는 좁은 쇠틀에 갇힌 채 발정유도제와 항생제 등 약물에 의존해 6~7번 새끼를 낳다 3, 4년 만에 생을 마감한다. 대부분 돼지들은 몸조차 제대로 돌릴 수 없는 좁은 공간(비육돈의 경우 마리당 0.8㎡)에서 햇빛조차 보지 못하고 살다 도축장으로 끌려 간다.

경기 이천에 있는 한 동물복지 돼지 농장에서 돼지들이 깔짚 위에서 쉬고 있다. 이렇게 사는 돼지들은 우리나라에서 0.02%에 불과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꼬리 자르기나 송곳니 뽑기 등을 하지 않는 동물복지 돼지농장 인증제도가 2013년부터 시작됐지만 지금까지 인증 받은 농가는 겨우 12곳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농장이 4,500여개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99.8%가 밀집 사육되고 있는 것이다.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전환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에 비해 수익성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도축단계에서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도록 몰이용 전기봉 등을 사용하지 않고, 축종별 적절한 기절방법을 준수하는 동물복지 도축장은 더욱 찾기 어렵다. 전국에 포유류 3곳, 가금류 2곳뿐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농장동물은 상품이다 보니 사육과 도축 시 비용과 시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며 “동물뿐 아니라 이를 먹는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도 농장동물의 복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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