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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도 현실도 '막장'으로 얼룩진 '황후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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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도 현실도 '막장'으로 얼룩진 '황후의 품격'

입력
2018.12.19 04:40
수정
2018.12.19 09: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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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첫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에서의 한 장면. 민유라(이엘리야)가 친엄마처럼 자신을 길러준 백도희(황영희)를 돌로 쳐 살해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방송화면 캡처
지난달 21일 첫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에서의 한 장면. 민유라(이엘리야)가 친엄마처럼 자신을 길러준 백도희(황영희)를 돌로 쳐 살해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방송화면 캡처

죽어 나가는 사람이 넘쳐난다.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은 지난달 21일 첫 회부터 지난 13일 8회(변칙 중간광고인 일명 ‘프리미엄CM’으로 나누었을 때는 16회)까지 방영되는 동안 6명이 극 중에서 목숨을 잃었다. 더욱 끔찍한 건 사망 원인. 6명 모두 살해됐다. 제목을 ‘황후의 공포’로 해도 무방할 정도다. 공포 영화도 아니고, 지상파 방송에서, 게다가 평일에 15세 이상 관람가로 버젓이 방영되는 드라마치고는 세도 너무 센 설정이다. ‘막장’ 수식이 따르고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다.

‘황후의 품격’은 화면 밖에서도 문제적 드라마다. 스태프들이 20시간이 넘게 연속적으로 일하며 고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드라마도 현실도 ‘막장’으로 얼룩지는 모양새다. ‘황후의 품격’은 한국이 입헌군주제 국가라는 설정으로 왕실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암투를 그린다.

 지상파 방송이 전하는 살인의 추억? 

지난 13일 8회 마지막 장면은 특히나 충격적이었다. 가슴에 비녀가 꽂힌 채 죽어 있는 태황태후(박원숙)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얼굴은 회색빛을 띠고 주검으로 등장한 배우의 모습은 시청자를 경악하게 할 만했다. ‘막장의 대가’로 불리는 김순옥 작가의 ‘명성’이 새삼 확인되는 장면이었다. 김 작가의 ‘막장’ 필력은 첫 회부터 발동됐다. 세 명이 의문의 죽음을 맞거나 살해됐다. 죽음의 방식도 끔찍하다. 황제 이혁(신성록)의 첫째 부인 소현황후(신고은)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으로 드러나고, 이혁을 해하려던 테러범이 태후(신은경)에 의해 독극물로 사망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패륜적 살인 장면도 등장했다. 민유라(이엘리야)가 자신을 길러준 친엄마 같은 존재 백도희(황영희)를 큰 돌로 내리쳐 살해했다. 피를 흘리며 도망치던 백도희는 이혁이 운전하던 차에 치여 죽음을 맞이한다. ‘황후의 품격’ 제작진은 백도희 캐릭터를 두 번 죽인 것도 모자라, 민유라와 이혁이 사체를 유기하는 장면까지 넣었다. 그 뒤로도 나왕식(태항호)과 황후(장나라)를 낭떠러지에서 밀어 살해(나중에 부활)하고, 태황태후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13일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은 가슴에 비녀가 꽂힌 채 죽음을 맞은 태황태후(박원숙)의 주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냈다. 방송화면 캡처
13일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은 가슴에 비녀가 꽂힌 채 죽음을 맞은 태황태후(박원숙)의 주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냈다. 방송화면 캡처

제작진이 살인에 이어 공들이는 부분은 불륜과 침실 장면이다. 이혁은 새 황후를 들인 후에도 민유라와 애정 행각을 벌인다. 한 욕조에서 나란히 샤워를 하기도 하는 등 낯 뜨거운 장면이 계속된다. 시청자들은 “15세 이상 관람가가 맞나? 아이들이 볼 수도 있다” “김 작가의 드라마를 주말도 아닌 평일 미니시리즈로 편성한 SBS는 생각이 있나?”라는 반응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관련 기사 댓글에 남기고 있다.

SBS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김 작가의 드라마를 평일 미니시리즈로 편성한 것을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김 작가가 평일 편성을 강하게 주장했다”는 설과 함께 “SBS도 광고 매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한 지상파 방송의 고위관계자는 “현재 지상파 방송 3사가 방영하는 평일 오후 7~8시대 막장 소재 드라마는 광고 수익에서 중요한 창구”라며 “그 영역을 평일 미니시리즈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귀띔했다. KBS도 내년 1월 또다른 ‘막장 대가’인 문영남 작가의 ‘왜그래 풍상씨’를 수목드라마로 편성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 등은 1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SBS ‘황후의 품격’이 스태프들의 장시간 근로를 이어갔다며 방송사와 제작사 SM라이프디자인그룹, 연출자 주동민 PD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 등은 1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SBS ‘황후의 품격’이 스태프들의 장시간 근로를 이어갔다며 방송사와 제작사 SM라이프디자인그룹, 연출자 주동민 PD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살인이 난무하더니… 촬영현장도 살인적” 

‘황후의 품격’은 하루 2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은 18일 ‘황후의 품격’ 방송사인 SBS와 제작사 SM라이프디자인그룹, 연출자 주동민 PD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근로기준법 제17조(근로조건의 명시) 제50조(근로시간) 제53조(연장근로의 제한) 제56조(연장 야간 및 휴일근로) 제70조(야간근로와 휴일근로의 제한) 등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황후의 품격’ 스태프들이 “지난 10월 10일 장장 29시간30분 연속 촬영을 했고, 10월 17~23일 일주일간 117시간20분 촬영, 11월 9~17일과 11월 21~30일 휴차 없이 열흘간 연속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의 촬영 시작 시간과 마감 시간이 표기된 ‘황후의 품격’ 촬영일지도 공개했다. 총 50회 촬영 회차 중 노동시간이 20시간을 훌쩍 넘긴 건 수는 33회 차에 이른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세찬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황후의 품격’ 스태프들은 촬영 스태프들의 모바일 채팅방에서 ‘잠 좀 자고 싶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며 “20시간 이상 연속 촬영으로 스태프들은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업은 올초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1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받는다. 그전까지는 방송업계 업무 특수성에 따라 주 68시간으로 제한된다.

촬영 일지를 보면, 지난달 13일 오전 7시~익일 5시40분까지 일했고, 이튿날에는 오전 6시부터 촬영에 나섰다. 불과 20분 쉬고 현장에 복귀한 셈이다. 스태프들은 이런 식으로 새벽에 촬영을 끝내면 잠깐 쉬고 곧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 스태프는 “‘황후의 품격’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많은데 촬영 현장은 더 살인적”이라며 씁쓸해했다.

SBS는 이에 “10월 10일은 이동 시간과 휴게 시간까지 적용하면 총 21시간38분의 근로 시간이었다”며 “1인당 4만원 별도 출장비도 지급했고 다음날은 휴차도 가졌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현행법상 하루 20시간을 넘기면 위법이다. SBS가 위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자인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글ㆍ사진=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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