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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캔버라 버블

입력
2018.12.18 18:00
수정
2018.12.18 18: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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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정치권에는 ‘캔버라 버블(Canberra Bubble)’이라는 용어가 있다. 누가 처음 만들어 낸 용어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자주 인용해 유행어가 됐다.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서 벌어지는 연방 정치가 현실과 국민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다는 비아냥이다. 정치에 대한 가십성 소문, 유언비어, 가짜뉴스 등을 퍼트리는 호주의 정치인, 혹은 그들의 행태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래서 호주 한편에는 사람들이 살면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는 ‘현실 세계’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캔버라 버블’이 있다고 할 정도다.

▦ 올 한 해 동안 호주 정가에 가짜뉴스와 정치가십 등이 횡행했고 국민은 정치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그래서 최근 호주국립대(ANU) 국립사전센터는 올해의 단어로 ‘캔버라 버블’을 선정했다. 이 용어는 또 정치개혁의 당위성을 요구할 때 척결 대상으로 쓰이기도 한다. 정부가 낭비적 지출로 인해 수천억 달러의 빚에 시달리고, 총리가 계속 교체되는 악순환이 진행되는 동안, 정치인들은 캔버라 버블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과 고위 관료의 임금 동결, 임기 제한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 그래서 정치인들의 발언이 수시로 팩트 체크(Fact Check)의 대상에 오른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봅 캐터 하원의원의 발언이다. 그는 호주 하원이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킨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질문에 “사람들은 나름의 성적 취향을 갖고 태어나고 수천 개의 꽃이 피기 마련”이라며 “퀸즐랜드주 북쪽에서 3개월마다 1명이 악어에게 물려서 죽어 가고 있어서, 동성 결혼 문제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비아냥거렸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그는 악어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사냥을 허용하자는 강경파 인물이다.

▦ 급기야 호주 공영 ABC방송 전문 팩트체커 팀이 나섰다. 시드니 본사에서 만난 팩트체커의 한 팀원은 “사안 별로 확인까지 하루에서 수개월까지 걸린다”고 했다. 이 팀은 각종 연구소와 지자체 자료 등을 토대로 방대한 조사를 한 끝에, 그 결과를 웹사이트에 싣고 방송에 내보냈다. 결론은 ‘그의 발언이 틀렸다(wrong)’였다. 악어에 물려 사망한 경우가 증가 추세인 것은 맞지만, 34년간 11명이 사망하는데 그쳤다고 한다. 정치인의 무책임한 발언의 진위 확인을 위해 이처럼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언론의 사명감이 돋보였다.

조재우 논설위원

※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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