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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역사의식 갖고 작품 선택하지 않아... 상식을 따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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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역사의식 갖고 작품 선택하지 않아... 상식을 따를 뿐”

입력
2018.12.18 04:40
수정
2018.12.1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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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약왕’에 출연한 배우들은 작품 선택 이유 1순위로 ‘송강호’를 꼽는다. 동료들의 믿음에 송강호는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다”며 “동료들의 뛰어난 연기에 굉장한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영화 ‘마약왕’에 출연한 배우들은 작품 선택 이유 1순위로 ‘송강호’를 꼽는다. 동료들의 믿음에 송강호는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다”며 “동료들의 뛰어난 연기에 굉장한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배우 송강호(51)는 시대의 격랑에 휩쓸린 소시민을 대변할 때 유독 크게 공명했다. 군사독재의 야만성을 목격자의 시선으로 실어 나른 ‘택시운전사’(2017)가 그랬고, 폭압의 시대에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꾼 ‘변호인’(2013)이 그랬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 ‘밀정’(2016)에선 신념의 회색지대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그렸다. ‘택시운전사’와 ‘변호인’은 1,000만 관객에게, ‘밀정’은 750만 관객에게 호응을 얻었다.

송강호의 다음 선택도 시대극이다. 영화 ‘마약왕’(19일 개봉)은 1972년부터 1980년까지 유신시대를 정확하게 관통한다. 이 영화에서 그는 악인이 되어 시대의 어둠을 드러낸다. 1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송강호는 “일부러 시대극을 택하거나 악역으로 연기 변신을 꾀한 건 아니었다”면서도 “지난 작품에서 선량한 소시민의 각성을 연기했던 터라 ‘마약왕’ 시나리오가 반갑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마약왕’은 생계를 위해 필로폰 밀수에 가담했다가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단숨에 아시아 마약업계를 장악한 마약왕 이두삼의 흥망성쇠를 그린다. 집에 필로폰 제조 공장까지 차려 두고 마약을 유통시키다 경찰과 총격전 끝에 검거된 ‘이황순 사건’을 비롯해 1970년대에 만연했던 여러 마약 유통사건을 취합해 이두삼이 창조됐다. 송강호는 “인간이 지닌 욕망과 집착, 파멸을 그린 인생 드라마”라며 “마약이라는 소재로 적나라하게 표현했을 뿐 마약 세계를 해부한 작품은 아니다”라고 소개했다. “그 시대 부모들은 자식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 열심히 일했어요. 이두삼도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권력과 돈의 맛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변질되죠. 그게 인간 욕망의 본질이 아닌가 싶어요. 욕망에 눈이 멀어 파멸하는 이두삼이 조금 불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비호할 생각은 없어요(웃음).”

‘마약왕’에선 송강호의 해학적인 연기를 오랜만에 만날 수 있다. 쇼박스 제공
‘마약왕’에선 송강호의 해학적인 연기를 오랜만에 만날 수 있다. 쇼박스 제공

“일본에 뽕 팔면 그게 바로 애국인기라.” “이 나라는 내가 다 먹여 살렸다 아이가.” 이두삼의 대사는 마약도 수출하면 애국이 되는 성장제일주의 시대의 그늘을 비춘다. 돈으로 권력을 사 사회지도층이 된 이두삼의 인생역전 뒷편으로 1970년대 사회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두삼이 유신시대의 몰락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송강호는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중요 사건이 시대상과 자연스럽게 결부되긴 하지만 그 시대를 비판하기 위한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마지막 장면은 우민호 감독의 발언이 될 수는 있겠지요. 개인의 파멸로 거대한 사회악도 끝난 것일까, 질문을 던지니까요. 딱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어둠의 세계를 다루지만 영화가 비장하게 흐르지는 않는다. 풍자와 해학이 곳곳에 녹아 있어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송강호도 그 점이 반가웠다고 한다. “지난 20년간 제가 영화에서 보여 준 여러 모습들이 많이 담길 것 같았어요. ‘송강호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지’ 하면서 반가워하지 않을까 싶었죠. 후반부에는 저도 처음 표현하는 감정들이라 새로웠고요. 예전 저의 재미있는 모습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신선한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영화로 관객에게 다가갔으면 합니다.”

이두삼이 필로폰에 취해 환각에 빠지는 장면은 송강호의 무한한 연기 폭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그는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을 상상력을 동원해 혼자서 연기해 내야 했기 때문에 힘들었다”며 “배우가 참 외로운 존재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소시민 이두삼이 마약왕으로 성장하는 배경에는 1970년대 암울한 사회상이 드리워 있다. 쇼박스 제공
소시민 이두삼이 마약왕으로 성장하는 배경에는 1970년대 암울한 사회상이 드리워 있다. 쇼박스 제공

홀로 고독하게 싸워야 하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 길을 그는 30년 가까이 묵묵하게 걸어 왔다. “관객과 소통하는 즐거움”이 기꺼이 외로움을 감내하게 했다. 송강호는 “연기 세계를 구축하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껄껄 웃으며 “관객과 호흡을 주고받을 때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겸손한 그의 말과 달리 송강호 없이 2000년대 한국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선택이 한국 영화에 새로운 길을 냈다. 예컨대 지난 정부 당시 기획된 ‘변호인’과 ‘택시운전사’는 그가 선택하지 않았다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작품이다. 송강호는 “작품을 고를 때는 역사의식에서 자유로워져서 가장 상식적인 판단을 하려고 한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이더라도 명확한 가치관과 철학이 있는 작품에 끌린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가치관은 “새로운 시각”과 “용기”라는 단어로 변주할 수 있다. 그는 “늘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눈앞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안전하고 검증된 이야기에만 안주하면 발전하기 어려워요. 조금은 낯설더라도 용기 있게 시도하면 언젠가는 익숙한 양식으로 자리잡을 겁니다. ‘마약왕’도 그런 작품이 될 거라 자신합니다.”

올해를 ‘마약왕’으로 마무리한 그는 내년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조철현 감독의 ‘나랏말싸미’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특별한 욕심은 없어요. 좋은 작품으로 관객께 인사드리는 것이 언제나 저의 유일한 바람이죠.”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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