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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간 일해도 휴식시간이란 말 못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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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간 일해도 휴식시간이란 말 못들었어요”

입력
2018.12.17 04:40
수정
2018.12.17 08:1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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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18 세계이주노동자의 날 맞이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에 핫팩을 들고 몸을 녹이고 있다. 류효진 기자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18 세계이주노동자의 날 맞이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에 핫팩을 들고 몸을 녹이고 있다. 류효진 기자

“돈도 제대로 안 주면서 월급날이 되면 욕부터 합니다.“

경기 수원시 한 순대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네팔인 A(25)씨는 반년 넘게 일하고 있는 공장 사장 얘기가 나오면 ‘밉다’는 말부터 한다. 오전 4시30분, 꼭두새벽부터 시작한 일은 해가 다 진 오후 7시가 돼서야 끝나는데, 일하는 동안 “휴식 시간”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식사 시간도 제멋대로다. 오전 10시에 점심을 먹을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퇴근 시간까지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다.

꾹 참고 일을 하지만 월급은 박하다. 곰곰이 따져보니 지난 7개월 동안 잔업만 100시간. 수당까지 더하면 월급으로 290만원 정도는 받아야 하나 매달 손에 들어오는 돈은 190만씩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체불된 임금이 700만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이주노동자의 날(18일)을 앞두고 이집트, 네팔 등 세계 각지에서 온 노동자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허술하나마 있는 법도 사장들이 각종 편법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게 주장의 요지. 국내 이주노동자가 100만 명을 넘어간 현 시점에서 이들의 노동권을 지킬 수 있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주공동행동 등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국사회 내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권리가 밑바닥 수준”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억압과 착취는 계속되고 있다”거나 “단 한 번도 이주민을 향해 ‘존중’을 얘기하는 걸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는 등의 불만과 비판이 이날 광장을 가득 메웠다.

휴일 미보장과 임금 체불은 빠지지 않는 핵심 사안이다. 네팔인 B(39)씨는 2013년부터 경기 파주시 한 채소농장에서 4년 10개월 동안 일했다. 문제는 B씨가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는 점이다. 농축산어업에서는 휴일 관련 규정에서 제외한 근로기준법 제63조와 고용허가제 상 나이제한(만 40세) 탓에 B씨는 문제제기도 못하고 ‘노예처럼’ 일해야 했다. 비자 만기를 채우고 네팔로 돌아간 B씨는 농장주로부터 법에 보장된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일부 이주 노동자는 구직 과정에서부터 겪는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대표적으로 이주노동자의 한 축인 난민신청자의 경우, 난민 인정을 받기 전까지 취업 허가를 받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실제 구직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다. 이집트 출신 난민신청자 C씨는 “정부 취업 알선마저 없어 개인 브로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비자를 3개월에 한 번씩 갱신해야 해 일자리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2004년부터 시행 중인 고용허가제도 성토 대상이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횟수를 3회로 제한하고, 각종 부당한 대우에 대한 입증 책임을 이주노동자에게 지워 일자리를 함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최저임금을 이주노동자들에게 차등 적용하려는 움직임까지 일면서 박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명숙 세계인권선언70주년 인권주관 조직위원회 조직위원은 “여기에 국내 이주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뺏는다는 혐오, 인종과 종교에 대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정확한 현실 파악과 법적인 대안 마련을 고심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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