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주경철의 ‘대항해시대’ 
서양사학자 주경철. 땅이 아닌 바다의 관점, 사건이 아닌 구조의 관점을 역사에 도입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학문에는 본디 국경이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한다. 인문ㆍ사회과학에서 일차적 분석 대상은 자기 나라와 사회이지만, 동시에 다른 나라와 사회 역시 또 하나의 중요한 분석 대상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다른 국가와 문명에 대한 탐구가 갖는 의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100년 우리 지성사에 다른 국가와 문명을 다룬 훌륭한 저작들이 적지 않다. 오늘 주목하려는 것은 주경철의 ‘대항해시대’다. 이 저작은 두 가지 점에서 이채롭다. 첫째, 우리나라 학자가 쓴 본격적인 근대 문명 연구다. 둘째, 수준 높은 전문서인 동시에 흥미로운 교양서다. ‘대항해시대’를 읽고 사회학 연구자인 나는 곧바로 미국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 세계체제’를 떠올렸다. ‘근대 세계체제’에 견주어도 결코 손색 없는 저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기획에서 주목하는 역사가들은 신채호, 이기백, 김용섭, 강만길이다. 이들의 전공은 한국사다. 주경철의 전공은 서양사다. ‘대항해시대’ 외에도 그는 서양 역사에 관한 다수의 책들을 발표해 왔다. 주경철은 우리 사회에 서양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는, 전문적 독자와 대중적 독자를 모두 아우르는 역사가다. 여기서 그를 다루는 까닭이다.

 ◇역사가로서의 정체성 

주경철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경제학과 서양사학을 공부한 다음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전공은 서양 중세 말과 근대 초의 사회경제사다. 귀국한 후 그는 서울대에서 서양사학을 가르쳐 왔고,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쳐 왔다.

주경철이 1999년에 내놓은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은 그의 활동을 예감하게 하는 저작이었다. 이 길지 않은 책에서 그는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을 위시해 주목할 역사학자들의 대표 저작을 소개하고 그 의의를 설명한다. 역사의 표층을 이루는 정치적 사건이 아닌 그 심층에 놓인 문명과 일상의 유장한 흐름에 대한 분석이 역사학의 또 하나의 본령임을 일깨워준 저작이다.

주경철의 지적 활동에서 주목할 것은 서양 역사학 고전의 번역이다. 그는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우리말로 옮겼고, 동료들과 함께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를 번역했다. 서양 역사를 다룬 저작들을 우리말로 제대로 옮기는 것은 창작 못지않은 수고를 더해야 한다는 점에서 총 6권으로 이뤄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번역은 중요한 학문적 업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주경철이 가진 미덕은 전문서는 물론 교양서를 통해 일반 시민들이 역사에 더욱 친숙하게 접근하게 했다는 데 있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 ‘모험과 교류의 문명사’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ㆍ2ㆍ3’ 등 이제까지 그가 내놓은 적지 않은 입문서와 교양서들은 독서하는 즐거움을 안겨주며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학자’인 동시에 ‘이야기꾼’이라는 역사가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한 이가 바로 주경철이다.

 ◇주경철의 세계사 해석 

2008년 출간된 ‘대항해시대’는 주경철의 대표적인 연구서다.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 저작의 첫 구절을 그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이 책은 근대 세계사를 해양 세계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려는 하나의 시론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서는 대륙 문명의 관점, 그것도 주로 농경 문화권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 드넓은 대지 위에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초원, 사막과 대삼림 지대, 더 나아가서 연안 지역과 섬, 바다 사이에서 사람들의 활기찬 삶이 펼쳐지는 해양 세계 또한 인류 역사의 중요한 무대였다.”

주경철이 주목하는 것은 근대 해양 세계의 형성과 발전이다. 바다를 통해 문명권들이 교류하고 갈등했으며, 그 결과 세계 각 지역들이 위계 구조로 재편됐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근대의 역사를 그는 새롭게 서술하고 해석한다.

이 저작에서 주경철은 특히 근대 문명의 폭력적 성격을 강조한다. 그는 근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폭력의 세계화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유럽이 세계의 위계 구조에서 상층을 차지한 까닭도 폭력을 유효하게 사용했다는 데 있다. 노예무역은 근대 세계사에서 가장 대규모적이고 비극적인 폭력의 사례라고 그는 주장한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유럽산 폭력이 최고의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최대의 폭력을 집중시키는 ‘합리적’ 폭력이었다는 점이다. 합리적 폭력이었기에 유럽산 폭력의 힘이 더욱 위력적이었고 결국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는 그의 논리는 경청할 만하다.

주경철이 겨냥한 목표 중 하나는 유럽중심주의의 극복이다. 그가 말하는 유럽중심주의란 유럽을 절대적 보편성을 가진 ‘기준’으로 삼아 다른 지역의 역사를 그 기준에 따라 해석하는 것을 뜻한다. 이 유럽중심주의를 그는 ‘신화적인 인식틀’로 파악하고, 이러한 잘못된 인식틀을 수정하려 한다.

주경철이 중시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에 따르면, 15~18세기에 유럽은 아직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지구적 네트워크는 유럽의 힘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전세계 문명권들이 참여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그는 이 시기에 유럽은 공세적이고 다른 지역은 수세적이었기에 결국 19~20세기 유럽이 제국주의적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유럽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문명권들의 역할을 온당하게 평가할 때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균형 잡힌 시각을 그는 제시하는 셈이다.

‘대항해시대’를 읽어본 이들은 종교와 과학에서 음식과 전염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종횡무진 다루는 주경철의 폭넓은 지식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식을 근대 세계의 형성이라는 하나의 역사 해석으로 일관되게 꿰는 그의 깊이 있는 통찰에 수긍하게 된다. 이렇듯 주경철은 ‘대항해시대’를 통해 역사학의 진면목을 선보인다.

그동안 ‘대항해시대’에서 세세한 나무들에 대한 주경철의 분석은 재고돼야 한다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15~18세기의 세계사라는 숲을 우리나라 학자가 이렇게 독자적으로 조망했다는 것은 광복 이후 우리 학문의 발전을 증거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향후 연구에 관심을 두는 이가 결코 나만은 아닐 것이다.

 ◇문명의 미래 

주경철이 반복해 강조하듯, 근대 세계는 어느 한 문명이 주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여기에는 많은 문명들이 참여했고 결합돼 있다. 2009년에 출간한 ‘문명과 바다’에서 그는 말한다.

“중국과 인도 문명의 심원한 지혜가 세계의 지성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아메리카 대륙의 놀랍도록 다양한 식물자원이 세계의 식탁을 풍요롭게 해주었으며, 아프리카의 음악이 세계인의 감성에 호소하지 않는가. 세계화 혹은 지구화를 촉진시킨 뇌관 역할을 한 것은 서구 문명이고 또 제국주의 시대에 그들이 지구의 패권을 차지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이 세상을 홀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21세기가 열린 지 20년이 가까워지는 현재, 인류 문명의 미래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알기 어렵다. 월러스틴은 일찍이 자본주의 미래 문명의 세 가지 전망을 제시한 바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신봉건주의다. 이는 혼란의 시대에 나타나는 분할된 주권, 자급자족적 지역, 지역적 위계제로 이뤄진 세계가 매우 안정된 형태로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 번째 유형은 민주주의적 파시즘이다. 이는 카스트 제도처럼 세계를 두 개의 계층으로 나누고 5분의 1 정도의 세계 인구가 그 상위계층에 편입되는 체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 번째 유형은 탈중심화하고 평등주의적인 세계질서다. 이는 우리 인간의 집합의지가 구현된 유토피아적 전망이다.

월러스틴이 제시하는 신봉건주의, 민주주의적 파시즘, 탈중심의 평등한 세계질서 가운데 어떤 것이 인류의 미래가 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문명의 미래는 우리와 우리 후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경철은 역설한다.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의 도전과 세습 자본주의 경향의 부활에서 볼 수 있듯, 21세기 인류의 미래에는 낙관과 비관이 공존한다. 역사는 구조에 강제돼 있지만 그 구조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의지다. 어떤 문명을 일궈나갈지는 바로 그 문명을 만들어가는 우리 인간의 집합의지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김수환의 ‘김수환 추기경의 신앙과 사랑’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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